[김성탁의 시선] 여야만 바뀐 데칼코마니 대립

김성탁 2022. 12. 2.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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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탁 논설위원

“민생이 어려울 때 야당이 전혀 책임지지 않는 자세,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모습은 굉장히 국민에게 염치없고 무책임하다.” 이듬해 예산안 처리와 관련한 정치인의 발언이다. 누구일까. 윤석열 정부의 첫 예산안을 처리할 법정 기한이 도래했는데, 여당인 국민의힘과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충돌하고 있다. 그러니 현 여권에서 나왔을 법하다.

1일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의사진행 발언 허용 문제로 여야 의원들이 언쟁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해당 발언은 2017년 12월 7일 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여당이던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했다. 당시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이 예산안에 반대하며 표결에 불참했다. 여당이 국민의당과 손잡고 법정 처리 시한을 나흘 넘겨 처리했다. 민주당은 야당을 비난하고, 한국당은 ‘밀실 야합 예산 심판’ 피켓을 들고 여당을 성토하다 본회의장을 나왔었다.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닥치는 대로 물어뜯기 시작했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다.” 사법기관의 수사와 관련해 거칠게 비난하는 이 발언은 누가 했을까. 이재명 민주당 대표 주변과 문재인 정부 당시 사건 등에 대한 수사가 집중되고 있으니 현 야당인 민주당에서 나왔을 것 같겠지만 아니다.

2018년 3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이 김포로 가는 항공기를 탑승하는 과정에서 보안 검색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며, 울산 경찰이 울산공항 직원들에 대해 수사에 나선 적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이른바 ‘적폐 청산’이 진행되던 시기였는데, 장제원 당시 한국당 수석대변인이 ‘야당 탄압’이라며 반발한 내용이다.

「 민주 여당 때 "민생 예산에 반대"
국힘 야당 때 "정권 사냥개 수사"
서로 입장 알 테니 타협 보여달라

정치권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옳다면서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일은 다반사다. 그런데 여야가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뒤집는 경우가 속출한다. 사안별로 대립하는 양상을 살펴보면 여당일 때와 야당일 때 서로를 대하는 태도가 마치 ‘데칼코마니’ 같다. 입장을 뒤집어 서로를 비판하는 논리나 표현조차 별로 다르지 않다.

경제 위기 경고음이 요란한데도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두고 여야 충돌이 이어지고 있다. 김진표 국회의장 주재로 어제 국민의힘과 민주당 원내대표가 회동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예산결산위원회 양당 간사들이 견해차를 좁히고 '윤석열표'와 '이재명표' 예산의 규모 조정에 합의해야 법정 기한인 2일 처리가 가능하다. 정권교체 이후 첫 예산안을 두고 대립하는 양당은 과거를 돌아봤으면 한다.

민주당은 여당으로서 2020년도 예산안을 다룰 당시 단독 과반 의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당시 야당인 한국당이 예결위 예산 심사를 방해했다며 ‘국정 발목잡기’라고 비난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국가 예산은 경제와 국민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경기 회복에 속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신속한 예산안 처리에 국회가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했었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 신속한 예산안 처리를 당부한 취지도 이와 차이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 국정의 책임을 지는 여당을 해봤으면서 거대 야당이 됐다고 힘만 과시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여권을 견제하더라도 관련 예산안을 통과시켜 새 정부가 일은 하게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과거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수사를 겪으며 극렬 반발했던 기억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과거 자신들이라면, 대선 후보였던 당 대표를 겨냥한 수사가 집중되고 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여권의 국정 운영에 순순히 협조했겠나. 진행되는 수사와 별개로 야당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접촉을 강화하고, 예산안 역시 양보할 것과 지킬 것을 주고받는 전략도 선제적으로 펴야할 것 아닌가. 여소야대가 현실인데, 여권마저 강 대 강 대립을 하겠다면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갈등하고 있지만, 정치권이 예산안 합의를 마냥 미루기는 어렵다. 2024년 4월 22대 총선이 치러지기 때문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지역구 의원들은 내년도 예산에 관심이 클 것이다. 의원들은 지역구 관련 예산을 최대한 많이 끼워 넣어 치적이라고 광고해 왔다.

이번 대립 와중에도 결국 예산 심사는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만 참여하는 ‘소(小)소위’로 넘어갔다. 속기록도 없는 ‘밀실 심사’에서 민원성 ‘쪽지 예산’이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싸우면서도 잇속 챙기기엔 한 몸일 것이다. 민주화 이후 여러 차례 정권 교체를 거치면서 거대 정당들은 여야를 모두 경험했다. 어떤 입장인지 서로 잘 알 테니 이제 적절한 협상과 타협의 선을 보여줄 때도 되지 않았나.

김성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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