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이 장면] 리멤버
이일형 감독의 ‘리멤버’는 첫 장면의 카 액션 장면처럼 거침없이 질주하는 영화다. 80대 노인인 한필주(이성민)의 복수극인 이 영화는 제거 리스트를 만들어 놓고 하나하나 그들을 없애는 주인공을 보여준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필주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과 누이는 친일파와 일본인에 의해 죽고 미쳐가고 끌려갔다. 그는 평생 그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왔고, 이제 때가 왔고 시간이 많이 남진 않았다. 죽여야 할 자들 역시 고령이며, 필주는 기억을 점점 잃어가기 때문이다.
‘리멤버’는 잊지 말아야 할, 하지만 점점 사람들이 잊어가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필주의 알츠하이머 병은 ‘망각의 역사’에 대한 메타포인 셈인데, 여기서 그는 필사적으로 기억하려 한다. 그 절박함은 손가락에 새긴, 척살해야 할 자들의 이름을 새긴 문신으로 잘 나타난다. 그는 한 사람을 죽일 때마다 문신 위에 칼로 ‘一자’를 그어 나간다. 대기업 회장, 대학 교수, 자위대 퇴역 장성,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퇴역 장군까지, 부와 명성을 지녔지만 그 죄를 씻을 수 없는 자들의 리스트. 그리고 ‘필살’(必殺)이라는 두 글자. 그렇다면 네 명의 죽음으로 그의 복수는 완성되는 걸까.
하지만 그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복수는 이어진다. 필규의 총에 새겨진, 일본어로 ‘기요하라’인 ‘淸原’이라는 한자. 그는 누구일까. 어쩌면 가장 오랫동안 새겨져 있던, 이 영화의 숨겨진 비밀 같은 이름이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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