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옴시티, 망상일까 혁신일까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문지민 매경이코노미 기자(moon.jimin@mk.co.kr) 2022. 12. 1. 21: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환상의 유토피아?…실현성 갑론을박
빈 살만 향한 평가, 5년 만에 뒤집혔다
네옴시티 ‘더 라인’ 프로젝트는 폭 200m, 높이 500m, 길이 170㎞의 초대형 유리 장벽을 만들 계획이다. (네옴 제공)
황량한 사막 위에 거울 외벽을 가진 직선 도시가 만들어진다. 거울 외벽의 폭은 200m, 높이는 500m. 롯데타워(550m)만 한 건물이 170㎞로 이어진다. 벽과 벽 사이에는 주거 공간이 생긴다. 쇼핑몰도 만들어진다. 이게 끝이 아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8각형 첨단 산업단지 ‘옥사곤’, 친환경 산악관광단지 ‘트로제나’도 만들어진다. 7㎞ 너비의 옥사곤에는 다양한 글로벌 기업의 연구소와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더 라인 주민들의 일터로 삼고 미래 사우디 첨단 과학 기술을 책임지는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네옴 측은 2030년까지 옥사곤에 7만여개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보고 있다. 옥사곤에 위치한 기업은 100% 친환경 에너지를 쓰게 된다. 트로제나는 사우디·이집트·요르단 국경이 모이는 홍해 아카바만(灣)에서 50㎞ 떨어진 산악지대에 만들어진다. 2026년까지 인공호수, 고급 호텔, 스키 리조트 등 시설 건설을 목표로 한다. 트로제나에서 열리는 동계 아시안게임도 계획하고 있다. 이미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는 지난 10월 네옴시티를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선정했다. 말만 들어서는 상상조차 안 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초대형 프로젝트 ‘네옴’ 뒤에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미스터 에브리싱’ 별명이 붙은 그의 재산은 2500조원. 이마저도 추정치다. 빈 살만은 686조원을 투입, 2030년까지 프로젝트를 끝낼 계획이다. 상상이 현실로 바뀌기까지 8년 남았다.

네옴시티 ‘더 라인’ 속 도시 모습. (네옴 제공)
▶Mr. 에브리싱, 왜 네옴 꽂혔나

▷“권력 망상, 네옴 DNA에 박혀 있다”

빈 살만과 사우디는 왜 네옴 프로젝트를 선택했을까. 2017년 사우디에서 대규모 국제 투자회의가 열렸다. 단상에 오른 빈 살만은 주머니에서 두 대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구형 2G폰과 신형 스마트폰이었다. 빈 살만은 “현재 사우디와 우리가 열망하는 네옴의 차이는 두 휴대전화의 차이와 같다”고 말했다.

석유 부국 그 이상을 꿈꾸는 빈 살만의 야심이 네옴 프로젝트에 담겨 있다. 다만 이를 향한 긍정적 시선만 있는 건 아니다. 빈 살만의 불안한 입지가 만들어낸 허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8월 “네옴의 문제는 비용, 규모가 아닌 권력을 향한 망상(Grandiosity)이 네옴 DNA에 박혀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왜 이런 평가가 나올까. 빈 살만이 왕세자가 된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빈 살만은 힘으로 왕위 계승권을 빼앗았다. 2017년. 당시 왕세자였던 무함마드 빈나예프가 메카 왕궁으로 소환됐다. 그는 왕위 승계를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빈나예프는 결국 왕위 승계를 포기한다. 이를 주도한 인물이 빈 살만이다. 살만 국왕은 빈 살만을 제1왕위 계승자로 격상한다. 형제 세습 전통이 깨지고 부자 세습이 이뤄진 순간이다. 이를 두고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는 “왕위 승계 교체가 순탄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은 살만 국왕과 빈 살만의 치밀한 계획으로 빈나예프가 축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빈 살만의 왕위 찬탈은 반발로 이어졌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빈 살만은 또 한 번의 의혹에 휩싸인다. 사우디 반정부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사우디 왕실 비판 기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는 2018년 10월 튀르키예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가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살해된 것이다. 현지 언론과 미 정보당국은 살해 배후로 빈 살만 왕세자를 꼽았다. 논란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카슈끄지 암살 사건 관련 소송에서 빈 살만의 면책 특권을 인정하며 끝났다.

역사적으로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인물들은 입지 확보, 이미지 쇄신을 위해 큰 이슈를 벌여왔다. 올림픽, 월드컵 개최 등 스포츠 워싱이 대표적이다. 스포츠 정신·경기가 주는 감동을 이용해 국민과 외부 시선을 돌리는 움직임을 말한다. 일각에서는 네옴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사우디 반체제 인사 칼리드 알자브리는 지난 7월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주의를 돌리기 위해 허영심 가득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며 “서구 지도자들은 그걸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판의 목소리에도 실제 빈 살만을 향한 평가는 5년 새 달라졌다. 2017년 사촌 형을 밀어낸 ‘냉혈한’으로 불리던 빈 살만은 최근 ‘미스터 에브리싱’으로 불린다.

▶실현 가능성 두고 갑론을박

▷바람직하다 vs 우울한 디스토피아

영화 속에서나 가능해 보이는 초대형 프로젝트를 두고 실현 가능성을 점치는 전문가들 의견은 사뭇 다르다.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 연구원장을 맡고 있는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대학 학장은 가능성이 충분한 바람직한 프로젝트라고 강조한다.

안 전 학장은 “초고층 건축 시스템이 갖춰가고 있고, 100~150층 건물 건설도 자연스러운 시대다. 첨단 기술과 자본력이 동원되면 충분히 가능하다”며 “높낮이에 따른 거주 환경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난방·공기 정화 시스템 등으로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안 전 학장은 “지구 면적이 한정돼 있는데, 수평적 건축보다 수직적 형태 건축이 친환경적이고 바람직한 구조”라고 덧붙였다.

정부도 이번 프로젝트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사우디 수주전에 제가 왜 갔냐고요? 다 이유가 있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서 원 장관은 “어떤 분들은 ‘17㎞만 가도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사우디는 왕정이고 돈이 많기 때문에 정말 손에 장을 지져야 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실현 가능성을 높게 봤다.

대통령실도 지난 23일 우리나라와 사우디 간 체결된 26건의 계약, MOU 관련 “내용이 구체적이고 사우디 의지가 강해 실현 가능성도 매우 높다”고 밝혔다.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최소 5000억달러 규모의 네옴시티가 구체화하면 추가 성과가 더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의구심이 큰 것도 사실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7월 네옴 설계안이 공개된 뒤 “호화로운 초고층 빌딩에 푸른 정원이 펼쳐진 이 지상낙원에는 대기오염 대신 녹지와 편의시설, 초고속 대중교통이 있지만 홍보용 영상으로만 존재해 실제 갈 수는 없다”고 비꼬았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부 교수는 공개된 내용만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고 평가했다. 네옴이 공개한 홍보 영상에는 나무로 가득한 장면, 햇빛이 바닥까지 드리우는 장면이 나온다. 이를 두고 유 교수는 “500m 높이면 해가 직사광선으로 떨어지는 게 하루 중 30분도 안 될 것”이라며 “그 나머지 시간대는 거의 햇빛도 안 들고 우울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말했다.

디스토피아적 모습이 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유 교수는 “500m 높이 건물 두 개가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거의 안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상층부 몇십 층은 잘 사는 사람, 저층부는 우울한 공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 계급이 수직으로 나눠지는 도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의견이 다소 엇갈린 가운데 공사는 진행 중이다. 지난 10월에는 사우디 드론 업체를 통해 네옴 핵심인 ‘더 라인’ 프로젝트 터파기 공사 진행 모습이 공개됐다. 터파기 작업은 사우디 현지 건설사 위주로 진행 중이다. 더 라인 프로젝트 터널 공사를 수주한 삼성물산과 현대건설도 최근 발파를 시작, 본격 공사에 돌입했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국제통상학 교수는 “사업 타당성이 제대로 검토된 프로젝트인지 알 수 없다”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업 규모를 보면 기업들이 안 뛰어들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네옴시티 ‘더 라인’ 속 도시 모습. (네옴 제공)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6호 (2022.11.30~2022.12.06일자)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경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