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로 100억원대 이자 아낀 SK지오센트릭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2. 12. 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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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전략 존재감 과시…‘순환경제’ 가속

경기 침체 우려가 확산하면서 재계를 휩쓸던 ESG 열풍도 한풀 꺾였다. 특히 최근 단기 자금 시장 경색으로 자본 조달 금리가 급등하면서 ESG 경영의 정당성이 힘을 잃은 분위기가 확산됐다. ‘흑자 도산’ 우려가 팽배한 마당에 ESG는 우선순위에서 뒷전에 밀린 듯했다.

이런 분위기 속 SK이노베이션의 석유화학 부문 자회사인 SK지오센트릭이 주목받는다. SK지오센트릭은 옛 SK종합화학으로, 친환경 기업으로 변신을 위해 사명을 바꿨다. 지오센트릭은 ‘지구와 중심’이라는 뜻을 담았다. 최근 이 회사는 꽁꽁 얼어붙은 자금 시장에서 친환경 사업 전략과 연계해 5000억원에 가까운 ESG 기반 자금을 금리를 낮춰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ESG 무용론이 확산하던 중 ESG로 진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는 점에서 SK지오센트릭의 사례가 회자됐다는 평가다.

SK지오센트릭은 SLL로 조달한 자금을 울산 콤플렉스(CLX) 리사이클 클러스터 구축에 쓰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5000억원 규모 SLL 조달

▷외부 기관 검증받은 첫 사례

최근 SK지오센트릭은 BNP파리바, 중국농업은행, 중국은행,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 크레디아그리콜 CIB 등 5개 금융 회사로 구성된 대주단과 만기 3년 4750억원 규모의 ‘지속가능연계차입(Sustainability-Linked Loan·SLL)’을 조달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재계에서는 첫 사례라는 게 SK 측 설명이다. 조달 자금은 폐플라스틱을 재가공해 화학제품으로 생산하는 울산 CLX 리사이클 클러스터 구축에 쓰인다.

SLL은 기존 ESG 관련 자금 조달 수단과는 명확히 구분된다. 무엇보다 조달 조건이 까다롭다. 기존의 그린본드 같은 채권은 조달 자금 용처만 확인한다. 반면, SLL은 발행 회사의 ESG 계획과 성취도·진척도 등을 깐깐하게 비교한 뒤 돈을 빌려준다. 조달 조건이 까다롭지만 요건에 맞으면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할 수 있다. 자금 조달 과정에서 글로벌 외부 인증기관인 DNV(Det Norske Veritas)의 검증을 받았다는 점도 눈에 띈다. SLL을 포함한 글로벌 ESG 파이낸싱 규모는 2018년 2385억달러에서 지난해 1조5706억달러에 달하는 등 성장 속도가 가파르다. 글로벌 기업 중에는 헨켈이 지난 9월 탄소 감축과 제품 포장재 비중 확대 같은 KPI(핵심성과지표)와 연계해 제3자 검증을 받아 약 6억5000만유로 규모의 SLL을 발행했다. 곡물 기업 루이드레퓌스도 올해 8월 4억5000만달러어치 SLL을 찍었다.

눈에 띄는 대목은 금리와 조달 규모다. 이번 SLL 조달 금리는 5% 초반 수준이다. SK지오센트릭 측은 변동금리인 CD금리를 고정금리(Swap Fixed Rate)로 교환하는 이자율파생상품(IRS) 계약을 맺어 SLL 금리를 고정금리로 전환했다. 최근 SK지오센트릭의 회사채 신용등급 ‘AA-’의 3년물 금리는 연 5.4% 수준이지만, 자금 시장 경색으로 동일 등급 회사채는 연 8% 금리로도 발행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비춰, 조달 금리를 약 2~3%가량 낮춘 것이다. 많게는 140억원대 이자비용을 아낀 것과 다르지 않다. ESG 진척도와 경영 성과에 따라 금리를 지금보다 더 낮출 수도 있다.

통상 SK그룹 전반의 ESG 정책은 수펙스추구협의회 SV위원회가 챙기지만 이번 건은 나경수 사장이 직접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 사장이 친환경 사업에 걸맞은 자금 조달 수단을 물색하던 중 SLL 수요를 포착했고 조달 구조를 제안한 BNP파리바 등이 합심해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후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오센트릭 측에서 처음에는 국내 금융권을 중심으로 태핑을 했는데 대부분 반응이 시큰둥했던 것으로 안다”며 “국내에서는 SLL이 무엇인지, 어떤 구조로 설계를 해야 하는지, 기본 개념조차 없는 곳이 태반이어서 결국 외국계로 방향을 틀었던 것”이라고 귀띔했다.

산업계에서도 이번 거래에 적잖은 관심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단기 자금 시장이 사실상 마비된 작금의 시장 상황에서 5%대 금리로 5000억원 가까운 자금을 조달한 것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ESG=비용’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재무부서에서는 연간 100억원대 이자비용을 아낀 것에 ‘ESG로 진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한 것으로 알려진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 등 국제 금융 시장에서 톱티어 수준의 크레디트가 가능한 그룹에서도 이번 거래 구조에 대한 문의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SK지오센트릭
▶울산 CLX에 대규모 설비 투자

▷글로벌 협력 강화

이번 SLL을 통한 자금 조달로 SK지오센트릭의 그룹 내 존재감이 더욱 부각됐다는 평가다. SK그룹 ‘넷제로 성장’의 주도적 역할을 맡을 계열사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보였다는 것이 그룹 안팎의 평가다. 탄소중립이 현재 탄소 배출량을 더 늘리지 않고 유지하는 것이라면, 넷제로는 아예 탄소 순배출량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에너지 사업 부문 계열사에 탄소중립 중심 사업 전환이 자본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진정한 ‘파이낸셜 스토리’를 만들라고 강조해왔다. 이에, SK지오센트릭을 비롯한 SK이노베이션 계열사들은 분사와 사명 변경 등을 거쳐 탄소중립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왔던 터다.

SLL 조달 자금을 투입해 SK지오센트릭은 2025년 하반기까지 울산 CLX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한다. SK이노베이션의 핵심 생산기지인 울산 CLX의 면적은 여의도 세 배에 달하는 826만㎡에 이른다. 여기에 조성되는 폐플라스틱 재활용 클러스터 또한 축구장 22개 크기인 21만5000㎡에 달한다. SK이노베이션은 울산 CLX에서 2030년까지 탄소 50% 감축, 2050년 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생산 과정과 제품의 그린화를 추진 중이다. 이 과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계열사가 SK지오센트릭이다.

폐플라스틱 재활용은 지속 가능 경영의 일환으로 주목받는 ‘순환경제’의 주요 사업군으로 최근 각광받는다. 폐플라스틱에서 추출 가능한 글로벌 열분해유 생산량은 연평균 17% 이상 성장해 지난 2020년 70만t 규모에서 오는 2030년 330만t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열분해유란 폐플라스틱을 300~500도의 고온으로 가열해 만든 원유를 말한다. 후처리 과정을 거쳐 나프타, 경유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 기존에 소각하던 폐플라스틱을 다시 정제유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플라스틱 순환경제의 핵심 기술로 주목받는다.

정부도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시장 활성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관련 제도 개선·지원을 다각도로 추진 중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는 지난해 ‘한국형 순환경제 이행계획’을 발표하며 전체 폐플라스틱 처리 현황 중 0.1%에 불과한 화학적 재활용 비중을 2030년 10%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내놨다.

SK지오센트릭은 이를 위해 미국 퓨어사이클테크놀로지와 합작법인 계약을 하는 등 글로벌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폐플라스틱을 녹여 이물질을 제거한 뒤 깨끗한 페트(PET)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등 플라스틱으로 재활용하는 공장을 건설 중”이라며 “폐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플라스틱을 매립·소각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탄소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6호 (2022.11.30~2022.1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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