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오늘, 단편소설로 만나다
정세랑 외 지음, 홍은주 옮김
문학동네, 412쪽, 1만7000원
아시아 8개국 9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한 소설집이 출간됐다. 한·일 작가 소설집을 만들어 보자는 일본 출판사의 요구를 받은 소설가 정세랑(38)이 “우정의 범위를 살짝 더 넓혀보자”고 다시 제안해 아시아 작가 소설집으로 확장됐다.
소설집 ‘절연’에는 한국과 일본은 물론 중국, 티베트, 대만, 홍콩, 그리고 베트남, 태국, 싱가포르 작가까지 참여했다. 작가 9명이 ‘절연’이라는 공통의 주제로 쓴 단편소설을 모았다. 정세랑은 소설집 주제에 대해 “이 시대는 사람들이 서로 헤어지는 시대구나, 그럼 이것에 대해 아시아의 작가님들과 이야기를 해보자, 하고 정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중·일 작가들 사이의 공동 작업은 종종 있었지만 한·중·일에 동남아시아 작가들까지 참여한 소설집이 출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참여 작가들이 모두 30∼40대로 각국에서 동시대 문학을 주도하는 이들이라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은 형식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아시아 문학의 현재를 보여주는 기획이라고 하겠다.
소설집의 맨 앞에는 일본 작가 무라타 사야카(43)의 단편 ‘무(無)’가 배치됐다. ‘편의점 인간’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무라타는 국내에도 많이 알려진 작가다. ‘무(無)’는 첫 문장부터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딸애가 장래에 ‘무(無)’가 되고 싶대서, 난처하네요.” 무라타가 창조해낸 ‘무 세대’는 현실과 절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세랑의 작품 ‘절연’은 맨 마지막에 수록됐다. 성적인 문제를 일으킨 지인에 대한 입장 차이로 오래된 친구들이 갈라서는 이야기다. “사적인 문제로 공적인 대가를 치르는 건 부당해. 나는 그 부당함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때가 왔다고 생각해.” “여섯 명을 건드렸는데 어디가 부당해? 여섯 명이라고.” 두 친구의 이런 논쟁이 작품의 갈등구조를 알려준다.
중국의 하오징팡(38)은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수상한 작가다. SF 독자들에게 그의 소설이 특히 반가울 듯 하다. 수록작 ‘긍정 벽돌’은 사람의 손발이 닿는 모든 곳이 ‘긍정 벽돌’로 만들어진 ‘긍정 시티’를 묘사한다.
이번 소설집은 생소한 아시아 작가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데 각별한 의미가 있다. 책 뒤에 실린 정세랑과 무라타의 대담에서 두 작가는 티베트 작가 라샴자(45)의 수록작 ‘구덩이 속에는 설련화가 피어 있다’를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았다. 라샴자는 티베트 청년 세대의 흔들리는 마음과 슬픈 일상을 그려내는 작품으로 유명하며 ‘청년층을 대변하는 작가’로 불린다. ‘구덩이 속에는…’에서도 이런 작품 경향이 드러난다. 티베트 산골에서 베이징으로 이주해 영세한 출판사에서 일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고향과 도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티베트 젊은이들의 현실을 그려낸다.
태국 작가 위왓 럿위왓웡사(44)의 ‘불사르다’와 홍콩 작가 홍라이추(44)의 ‘비밀경찰’은 민주화 시위가 실패한 이후 두 나라 젊은이들이 경험하는 상실감과 비탄이 짙게 묻어나는 작품들이다. 조국과의 절연과 접속을 되풀이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기사로는 알 수 없었던 그들의 속마음을 보여준다.
홍라이추는 두 권의 일기체 산문집 ‘불길한 날’과 ‘반식’에서 오늘날 홍콩에 사는 심정을 기록했다. 그의 단편 ‘비밀경찰’은 비밀경찰이 도시를 장악한 근미래를 묘사한 작품으로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 이후 시민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전해준다. “그쪽이나 나나 숨은 붙어 있지만, 멀지 않았어요.”
이밖에도 싱가포르 알피안 사아트(45)의 ‘아내’, 베트남 응우옌 응옥 뚜(46)의 ‘도피’, 대만 롄밍웨이(39)의 ‘셰리스 아주머니의 애프터눈 티’가 실렸다. 수록작들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각 작품에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 붙어 있어 이해를 돕는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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