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오바마’를 만든건 연설의 힘

김남중 2022. 12. 1.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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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정치적 말의 힘
박상훈 지음
후마니타스, 400쪽, 2만1000원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월 사카고에서 임기를 마치는 고별 연설을 하고 있다. 10여년에 걸쳐 오바마 연설을 공부해온 정치학자 박상훈은 오바마를 “정치적 말의 가치를 잘 활용한 현대적 모델”로 평가한다. AP뉴시스


정치학자 박상훈(58)은 정치를 불신하고 혐오하는 분위기에 맞서 정치의 가치, 정당과 의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를 내왔다. ‘청와대 정부’ ‘정당의 발견’ 등의 책을 썼고, 시민 대상 정치 학교인 정치발전소 학교장과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부터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과 함께 오바마의 연설을 공부해왔다. 젊은 정치인 오바마를 전국적 스타로 만들고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까지 이르게 한 힘이 그의 말에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오바마 연설 공부는 정치 연설 전반에 대한 공부로 이어졌고 10여년의 공부가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정치에서 말이 가진 힘을 탐구하는 ‘정치적 말의 힘’이란 책이다.

이 책은 마지막 3부 ‘현대 정치 연설의 모델: 버락 오바마’부터 읽어도 좋다. 저자는 오바마의 연설문 7편을 해설하면서 오바마를 “정치적 말의 가치를 잘 활용한 현대적 모델”로 평가한다. 그리고 “정치라는 인간 활동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추상적인 내용의 정치학 책보다는 오바마 연설을 참고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인다.

오바마는 2017년 1월 시카고에서 한 대통령 고별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청중들의 외침이 시작되자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그건 아니다”라며 “부시 대통령이 나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에게 최선을 다해 가능한 한 가장 친절한 권력 이양을 보장할 것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획일성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고,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지켜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낙심한 지지자들을 향해 그는 우리는 할 수 있고, 해냈고, 앞으로도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나는 여러분이 믿음을 갖기를 간청한다.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분의 능력이라는 것을 믿어 달라.”

저자는 이 연설에 대해 “원치 않는 결과라 할지라도 민주주의 원칙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대목은 참으로 인상적”이라며 “선거에서 패배한 시민들의 품위를 높이는 데도 정치 지도자의 태도는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책은 오바마를 스타로 만든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비롯해 비교적 덜 알려진 2009년 가톨릭 계열 노트르담대학에서 한 ‘종교적 신념과 정치의 화해’에 대한 연설, 오바마의 첫 공식 연설인 2002년 시카고 반전 집회 연설 등을 다룬다.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오바마의 연설들도 눈길을 끄는데, 사회가 참사를 딛고 나아가는 데 정치 지도자의 말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잘 보여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노래를 부른 것으로 유명한 2015년 흑인 교회 총기 난사 사건 희생자 추도식 연설과 연설 도중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해 ‘51초의 침묵’이라는 별명이 붙은 2011년 애리조나 총기 사건 희생자 추모 연설에서 오바마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했다. 이 슬픔을 미국 전체가 함께 하고 있다고 가족들을 위로했고, 사고 수습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국민들에게는 적대와 혐오에서 비롯된 이 끔찍한 비극이 미국을 절망케 하고 분열시키는 게 아니라 더 열리고 더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야 하는 이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2부에서는 정치 연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12편의 연설문을 분석한다. 기원전 431년 페리클레스의 “우리는 민주주의자다” 연설, 에이브러햄 링컨의 그 유명한 게티즈버그 연설, 전시 내각의 총리로 취임하며 “나는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밖에는 드릴 것이 없다”고 한 윈스턴 처칠의 연설,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은 존 F 케네디의 대통령 취임 연설 등이다.

1부는 정치학과 수사학의 고전들을 통해 정치에서 말이 왜 중요한지, 정치적 말이 어떠해야 하는지 논의한다.

흔히 정치 언어는 세고 강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박상훈은 위대한 정치 연설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건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 갈등을 다루는 사려깊은 표현, 그리고 정치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또 “상대방에 대한 야유와 조롱, 모욕의 언어는 정치가 아니다” “자신과 견해가 다른 상대 파당을 최대한 비난하고 욕보이는 것을 정치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견을 야유의 대상으로 만들거나 이적시하는 것은 정치적 범죄행위다”라고 비판한다.

이 책은 “정치란 곧 말”이고 “정치가란 말로 변화를 일궈 가는 사람”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정치와 국회, 민주주의 변화를 정치 언어의 변화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박상훈은 “지금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좋은 정치 언어를 가진 정치가를 배출하지 못한 데 있다”며 “정치 양극화, 진영 양극화의 악순환을 끊고 우리 민주주의를 달라지게 만드는 말, 그 말을 시작하는 정치가만이 우리 사회의 민주적 열망을 다시 발현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정치적이되, 그래서 아름다웠으면 한다.” 박상훈이 책 마지막에 적은 문장이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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