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이럴 수 있나요? [은밀하고 친밀하게 SF]

심완선 입력 2022. 12. 1. 18:21 수정 2022. 12. 13. 14: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꽃님 작가의 SF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독자가 SF를 친밀하게 느끼도록, 은밀하게 접근해 진입장벽을 슬그머니 무너뜨립니다. 이를 위해 SF 읽는 모습을 생활밀착형으로 전달합니다. <편집자말>

[심완선 SF 평론가]

얼마 전 크리스마스 카드를 새로 샀다. 순전히 내가 갖고 싶은 마음으로 사는 물건이므로 가장 갖고 싶은 디자인을 골랐다. 고르느라 며칠을 갈등했더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어릴 때부터 엽서 세트를 사면 가장 아끼는 몇 장은 누구에게도 보내지 못했다. 손에서 놓아버릴 줄 알아야 하는데 그걸 잘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고스란히 버린 적도 여러 번이다. 평소엔 쓰지 않는 서랍 맨 아래 칸을 열면 아무 말도 쓰이지 않은 종이 무더기가 나왔다. 그걸 한참을 들여다보다, 더는 의미가 없다 싶으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옆에는 남에게 받은 편지나 카드 묶음이 있었다. 상대와 더는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된 후에도 무게와 촉감과 글자를 그대로 지닌 종이들이었다. 열어봐야 유치하고 치기 어린 말투성이인 애물단지였다. 이쪽 무더기는 버리지 못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고 상대가 무슨 답을 했는지 적혀 있기 때문이었다.

관계와 감정은 차차 말랐는데 그놈의 편지는 뚝 하니 떨어져 나와 자기 존재를 주장했다. 그러니까 편지는 종이에 우글우글하게 남은 물 자국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가끔 한 번씩 보기에는 썩 못 볼 꼴도 아닌 거였다. 끄덕끄덕 혼잣말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그랬지. 아, 그랬네. 그래? 세상에. 이땐 그랬으니까.

정말이지 서신 왕래는 지금의 일상에 비하면 느리고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소통 방식이었다. 거추장스럽기까지 했다. 덤으로 함부로 버리지도 못할 부산물을 잔뜩 남겼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산물을 만들기 위해 거추장스럽게도 매번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고 담고 부쳤다.

상대방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 나의 종이 무더기에 한두 장을 얹었다. 그래서 이쪽 무더기는 한참 들여다보다가도 못내 버리지 못하고 다시 맨 아래 칸 깊은 곳에 넣어두곤 했다. 일기장을 버리기보다 어려웠다. 제각각의 글씨체로 쓰인 말들이 웃기고 무거웠다.

30여년을 건너 가는 편지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문학동네
이꽃님의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편지로 쓰인 소설이다(2018년에 나온 소설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주인공 은유는 편지를 넣으면 1년 후의 자신에게 배달된다는 '느리게 가는 우체통'에 넣을 편지를 쓴다. 아빠에게 억지로 끌려온 은유는 분노로 가득 차서 마구 혼잣말을 적는다.

아빠가 재혼하겠다고 실실거리는 거 짜증 나. 재혼하겠다는 그 여자가 친한 척하는 것도 짜증 나. 이런 편지 왜 쓰는지 모르겠어. 쓰라고 하니까 쓰긴 하는데, 1년 뒤의 은유 너, 정신 차려. 아빠나 그 여자가 아무리 꼬드겨도 넘어가지 말고 그때는 계획대로 독립하는 거야. 알았지?

그런데 편지는 2017년의 은유가 아니라 1982년의 은유에게 전달된다. 두 은유는 이름이 같을 뿐 서로 모르는 사이다. 편지를 받은 은유는 또랑또랑한 국민학교 3학년이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학제 이름이 국민학교였다. 오백 원짜리 동전도, 수능시험도, 인터넷도 그때는 없었다.

1980년대의 어린 은유는 차라리 간첩과 암호문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그런 은유에게 언니 은유가 쏟아붓는 유행어는 암호나 미친 소리처럼 보인다. 코스프레? 사이코패스? 캐러멜마키아토? 어린 은유는 '-읍니다'로 끝나는 당시 맞춤법에 맞춰 또박또박 답장을 적는다. 그게 뭐예요? 언니는 미친 사람인가요?

둘은 서로 상대가 이상하다고 펄쩍 뛴다. 그런 게 어디 있냐고, 그럴 리가 없다고 화를 낸다. 하지만 언니 은유가 검색해보니 어린 은유의 말이 맞다. 그리고 어린 은유가 기다려보니 언니 은유가 하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진다. 둘은 결국 서로 진실하다고 수긍한다. 서로에게 특별한 편지를 쓰는 특별한 상대가 된다.

미래의 은유는 이런저런 미래 정보를 제공한다. '성수대교 근처에는 가지 마',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라고 알아?', '내가 학력고사 문제 구해줄게' 과거의 은유는 은유 아빠의 젊은 시절을 관찰한다. '내가 너희 아빠 보고 올게', '너희 아빠 예쁜 사람이랑 연애해!', '내가 잘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다행히 시험 문제를 유출하겠다는 야심 찬 범죄 행위는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아빠의 연애를 지켜보는 계획도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소설에서 미래의 은유, 그러니까 처음엔 언니였던 중학생 은유가 1살을 먹을 동안 과거의 은유는 20년을 겪는다. 미래에서는 겨우 몇 주 정도의 시간이 과거에서는 몇 년에 달하는 시간이다. 편지는 둘에게 다른 속도로 도착한다.

은유들이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편지는 원래 즉시 도착하지 못하는 물건이다. 언젠가 오겠거니 하며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과거의 은유는 몇 년씩 성큼성큼 자라서 현재의 시간을 따라잡는다. 그리고 다른 속도로 어른이 된, 혹은 어른이 되어가는 은유들은 상대의 위치를 눈치챈다. 너구나. 거기 있었구나.

우리는 이만큼 진심이었어

처음 은유가 보낸 편지가 잘못 배달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마법처럼 3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었다고 밖에 할 수가 없다(이런 점에서 이 소설을 SF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설은 대신 둘의 교류가 낳는 의미에 집중한다.

내가 개인적으로 편지를 쓸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은유들도 거추장스러운 과정을 감수하며 오랫동안 살아남을 부산물을 만들었다. 수신자만이 확인할 수 있는 자리에 솔직한 마음을 담았다. 너를 만난 건 기적이야. 너를 아끼고 사랑해. 너를 만나지 못해도 이 마음은 진심이야. 우리가 진심이었다는 걸 기억해.

남에게 넘어간 내 편지들이 쓰레기통에 있을지 서랍에 있을지 나는 모른다. 그게 기억되고 있는지 애저녁에 사라졌는지 어떤지도 모른다. 누구는 이십 년 전 날짜가 적힌 종이를 들고 가끔씩 한참 들여다볼지도 모른다. 모두 내 손을 떠난 일이다. 그리고 편지가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편지를 보내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나는 그저 내 손에 들어온 것들에 감탄하고 감사하기로 했다. 내가 서랍을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는 기쁜 일을 축하하고, 구구절절 일상을 공유하고, 예쁘게 정성 들여 캘리그라피를 했다. 우리가 적어도 이만큼은 진심이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나는 여전히 가장 아끼는 종이들의 옆자리에 남이 준 종이들을 넣고 서랍을 닫는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