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보안군이 월드컵 16강 좌절에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총을 갈겼고, 한 명이 죽었다

라효진 2022. 12. 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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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란에서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전 세계 모든 국가들이 참가할 수 있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원칙적으로 정치적 표현은 금지됩니다. 이념 갈등의 방해 없이 온전히 스포츠 정신으로만 승부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죠. 하지만 우리 삶의 모든 것과 정치를 떼어 놓을 순 없습니다.

이번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 참가한 이란은 대표팀의 모든 행보가 정치적으로 해석됐습니다. 이란 현지에선 22세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 경찰에게 체포됐다가 숨을 거둔 사건으로 전국에 대규모 시위가 촉발된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이란 선수들은 지난달 열린 B조 1차전 경기에 앞서 국가 제창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반정부 시위를 향한 지지 표명이었는데요. 이란 정부는 즉시 혁명수비대 요원들을 소집해 선수들을 압박했습니다. 혁명수비대는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에서 자국 선수들의 외부 활동이나 외국인과의 접촉 여부를 감시하고 있어요. CNN은 혁명수비대가 국가 제창을 하지 않은 대표팀의 가족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을 했다고 알렸습니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당국은 조별 리그 전 선수들에게 승리의 대가를 약속했지만, 국가 제창 거부 이후엔 강경 대응 기조로 나섰습니다. 대표팀이 귀국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올 정도였어요. 그래서인지 선수들은 2차전과 3차전 국가 제창 시간에는 소극적으로 국가를 부르기도 했어요. 이란 국가대표 출신 유명 축구 선수 몇몇은 시위대를 응원했다며 정권 비판 혐의로 체포됐고요.

대표팀 스트라이커 사르다르 아즈문은 인스타그램에 대놓고 이란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며 '히잡을 강요하는 것이 무슬림이라면 나는 이단이 되겠다'라고 선언한 그는 시위 중인 이란 여성 사진과 함께 "내 조국의 소녀들, 내 조국의 용감한 여성들, 당신들의 날을 축하한다. 언젠가 온 세상이 당신들을 존경하길 바란다"라고 적었어요. 대부분의 대표팀 소속 선수들이 이에 동의한다는 뜻을 표했습니다.

이란 내부 분위기는 어떨까요? 선수들의 고충과는 달리, 그들이 정부의 편이라고 믿는 일부 여론도 포착됩니다. 시위 이후 경기에서 검은 표식으로 정부에 항의를 전했던 선수들이었지만, 경기 전 이란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 촬영되자 '변절자'라는 오해를 받게 된 거죠. 그만큼 이란의 시위 열기는 뜨겁습니다.

조별 리그에서 미국과 맞붙었을 때는 양국 간 정말 복잡한 감정들이 오고 갔습니다. 미국과 이란은 오랜 정치적 앙숙이기 때문에 스포츠 대회에서라도 서로를 꺾고 싶어 해왔는데요. 결과는 이란의 패배였습니다. 이란의 상황을 알고 있는 미국 선수들도 그라운드 위에서 상대 팀에 대한 존중을 보였고요. 그런데, 이란에서는 미국이 골을 넣을 때마다 환호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미국의 승리가 결정나자 자국의 패배를 축하하는 폭죽이 터졌고요. 이는 미국에게 이겨야 한다며 대표팀을 압박한 정부에 대한 시위대의 반감을 드러낸 모습입니다. 축제 아닌 축제 분위기 속에서 27세의 메헤란 사마크가 이란 보안군에게 사살 당하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카타르에서는 지금도 이란의 반정부 시위와 그 의미를 알리기 위한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여성, 생명, 자유'와 마흐사 아미니의 얼굴을 피켓으로 만들어 흔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란과 카타르의 우호적 관계 때문에 이 시위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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