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백리 해안선을 따라 아름다운 구릉이 이어지는 거제도. 억새풀 사이로 어민의 삶을 실은 작은 고깃배가 오가는 소박한 어촌 마을에 자리한 아그네스 파크는 1970년대부터 이곳 견내량 바닷가에서 만선의 꿈을 일궈온 아그네스 수산의 또 다른 도전이다. 한산대첩 승전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 이곳엔 미술가 최정화의 ‘과일나무’를 비롯한 예술 작품들과 이 땅을 빛낸 영웅들의 조각상이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색다른 조각공원을 형성하고 있다. 평화로운 산책로와 한국의 사계를 담은 자연스러운 생태 정원은 제주 ‘여미지식물원’과 ‘베케’의 정원을 만든 조경 디자이너 김봉찬의 솜씨다.
이제 막 자리를 잡고 있는 풀과 나무들처럼 공간의 정체성 역시 조금씩 드러나는 중이다. 동심원을 이루는 물결처럼 둥근 여섯 개의 객실동과 수영장, 아트 스페이스, 카페 등이 있는 이곳은 원래 굴을 양식하고 참치를 가공하던 수산물 가공 공장이었다. 그 흔적은 지금도 아그네스 파크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와 함께 일해온 건축가 문형석은 옛 건물을 그냥 헐어버리는 대신 용도에 맞게 개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기에 오징어잡이 배의 조명이나 어선 형태, 그물 등을 닮은 장식을 더했다. 그룹 ‘여행스케치’의 일원이기도 한 그는 풀벌레 소리, 노을과 바람, 밤하늘의 별 같은 자연을 고스란히 공간에 담았다.
특히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야외 수영장은 마치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신비롭다. 삼각 돛을 단 배를 연상시키는 순백의 벽과 구름의 그림자를 띄운 물, 여기에 네덜란드 아티스트 그룹 MVRDV의 알록달록한 조각 작품이 초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현재 야외 공원과 아트 스페이스, 객실동은 가오픈한 상태로 하룻밤 머물고 싶다면 아그네스 파크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이 가능하다. 아그네스 파크는 아직 완성돼 가는 단계다. 토탈미술관이 전시와 예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한국적인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꽃술(Kkotssul)이 한국 디자이너들과 함께 공간을 채워 나가는 중이다. 먼바다로 나간 배가 한가득 희망을 싣고 돌아오는 것처럼 아그네스 파크는 보다 큰 꿈을 꾼다. 식물과 사람, 예술이 자라는 아트 & 컬처 팜. 지금 거제도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