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이태원 참사' 현장에 추모 공간 만들자
추모하고 기억하며 다짐하는 공간으로
[아시아경제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이태원 참사(이하 10.29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다. 글로벌도시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압사당한 초유의 사태였지만 지금까지 책임진 이는 없다. 왜 사고가 발생했는지, 사전에 위험 징후가 포착됐음에도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 사후 대처가 늦어진 원인은 무엇인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유가족들의 슬픔은 깊어가고 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292명 사망), 1994년 성수대교 붕괴(32명 사망),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502명 사망),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192명 사망), 2014년 세월호 참사(304명 사망) 등 계속된 대형 사고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운 것일까. 우리 사회는 이런 일들을 겪으며 진정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어쩔 수 없었다’며 그때그때 국면을 넘기기에 급급했던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주는 것은 참사를 기억하는 우리의 방식이다. 한마디로 ‘기억보다 회피’다. 여기 상징적인 두 장면이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 234 양재시민의숲(최근 매헌시민의숲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는 ‘삼풍참사위령탑’이 있다. 양재시민의숲은 구역이 남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북측에는 매헌윤봉길기념관과 운동시설 등이 있다. 1998년 세워진 ‘삼풍참사위령탑’은 남측 구역 끝부분 구석진 곳에 있다. 지난달 27일 현장을 찾았다. ‘우리들 눈과 눈에는 잃어버린 사랑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실과 모순과 부정의 분출로 희생된 이제는 가족사진 속의 미소로만 남은 잃어버린 사랑들이 생생하다~.’ 추모시를 읽고 돌아서니 유가족들이 갖다 놓은 화환들이 눈에 띄었다. ‘사랑하는 사위, 딸아.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거라~.’ 27년이 지났지만 ‘삼풍참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삼풍백화점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1685-3번지에 있었다. 지금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서초 아크로비스타가 들어서 있는 자리다. 양재시민의숲은 삼풍 참사와 아무 관련이 없다. 그런데 찾는 이도 많지 않은 이곳에 왜 ‘삼풍참사위령탑’이 세워지게 된 것일까. 원래 유가족들은 사고 현장에 추모비나 위령탑을 세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땅을 팔아 보상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런 ‘혐오시설’이 들어오면 누가 사겠느냐는 당국의 입장에 밀려 관련도 없고 찾기도 힘든 이곳에 위령탑이 세워졌다. 참사는 기억해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빨리 잊혀야 하는 일이었다.
성수대교 붕괴 희생자 위령비는 더 심하다. 아예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있다. 추모하려고 해도 추모하기 힘든 위치다. 성수대교 북단에 있는데 2차선 도로를 건너고 다시 1차선 도로를 건너야 갈 수 있다. 인도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으니 걸어서는 갈 수 없다. 서울숲 수도박물관 쪽을 통해 돌아서 갈 수 있지만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새벽 일찍 자동차를 이용해서 현장에 가봤다. 건립기에 이렇게 기록돼 있었다. ‘~이 사고의 원인이었던 우리 사회의 부실 관행을 반성하면서 희생된 영령을 추모하고 안전관리에 대한 의식을 높여나갈 산 교육장으로 활용코자 사고 3주기를 맞아 위령비와 추모 조형물을 세운다. 1997년 10월21’ 접근하기도 힘든 곳에 만들어놓고 ‘산 교육장’을 운운하니 공허했다.
‘10.29 참사’를 기억하는 우리의 자세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지기는 했지만 미흡하다. 우선 참사가 일어난 현장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해서 추모하고 기억하며 다짐하는 장소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혐오시설’이 아니라 기억의 공간이고 더 나은 대한민국으로 가는 배움의 터전이 될 것이다.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고 의식은 변화를 이끈다.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kumkang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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