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꼰대가 넘치는 한국 정치

2022. 12. 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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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혹시 나를 ‘꼰대’로 여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한다. 학생들이 안타깝고 안쓰러울 때 뭔가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직업적 의무감이 발현된다. 꼰대질로 보이지 않으려 최대한 절제해 진심 어린 조언을 한다. 그렇지만 내가 꼰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권한은 온전히 학생에게 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내 마음속에서 반항심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꼰대여서 느끼는 자격지심일 수 있다. “그래서, 꼰대가 뭐가 나쁜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데. 내 진심을 몰라주는 너희가 오히려 꼴통이라고 생각하련다.”

꼰대의 특징을 찾아보면 ‘자기 생각에 대한 강한 확신’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 ‘반지성주의와 흑백논리’ 등이 나온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학교와 직장에서 드문드문 보이는 꼰대질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오랫동안 흔히 나타나는 일상의 모습이다. 학교와 직장의 꼰대는 나이 든 사람 혹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지만, 정치에서는 우리가 모두 꼰대질을 하고 있다. 내가 그리고 우리 진영이 옳고 선한 세력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상대 진영이 왜 그런 생각과 주장을 하는지 알려 하지 않는다. 양 진영을 모두 비판하는 양비론은 비겁하고 기회주의적 행태다.

인간의 본능, 디지털 기술, 정치문화 이 세 가지가 우리 사회에 정치적 꼰대를 양산하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 성향을 갖고 있다. 어떤 사안을 판단할 때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만을 들이려고 한다. 이런저런 정보를 찾고 나와 다른 의견을 듣고 고민하는 수고를 감내하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제한된 경험과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쉽고 빠르게 결정한다. 그러다 보니 논리와 이성이 아닌 편견과 고정관념이 우리 사고를 지배한다.

디지털 기술의 알고리즘이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알고리즘은 내 관심사와 성향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다. 내 유튜브 화면에 대통령실과 MBC 간 갈등에 관한 영상이 여러 편 올라와 있다. 내가 평소 정치 관련 영상을 자주 시청하기 때문이다. 내 판단을 바꿀만한 영상은 없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미 내 정치적 성향을 파악하고 있다. 인지적 구두쇠가 되지 않으려 더 많은 정보를 얻는 수고를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더 편협한 사고에 빠진다. 실제 많은 연구가 정치 관련 정보를 많이 습득할수록 극단적인 정치 태도를 보일 확률이 높다고 주장한다. 과거에는 정보를 많이 가질수록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이성적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 관련 뉴스를 보지 말아야 할 상황이 되었다.

농경문화의 전통을 가진 한국 사회는 강한 집단의식을 형성한다. ‘나’보다는 ‘우리’가 더 중요하다. 오랜 군사정권을 겪으면서 획일화된 집단의식은 더 견고하게 뿌리 내렸다. 군사문화는 흑백논리를 확산시켰다. 세상은 나와 생각과 이익을 같이하는 아군과 나를 반대하는 적군으로 구성된다. 갈등을 조정하고자 하면 양쪽으로부터 기회주의자로 배척된다.

애국심이 강할수록,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할수록 반대 세력과의 타협은 용납할 수 없다. 타협은 곧 국가에 대한 배신이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다. 베풀 수 있는 최대의 아량은 진실을 외면하는 반지성주의자들을 계몽하고 복종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탈진실(post truth)의 시대를 살고 있다. 가짜 뉴스가 흘러넘친다. 그렇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보고 믿는 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다른 생각은 거짓이고 이를 주장하는 자들은 악의 무리다. 그렇지만 탈진실이란 용어가 일상화된 이면에는 불확실성과 불예측성이라는 4차산업혁명 사회의 특성이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진 논리와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숱하게 발생한다. 세상은 더 복잡해지고 미래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렵다. 그러니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기준도 예전과 다르다.

나의 진심 어린 충고가 학생들에게는 얼마든지 꼰대질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들과 나는 가치와 규범이 형성된 시대가 다른 동시대의 비(非)동시대인이기 때문이다. 상대의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꼰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윤성이(경희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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