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찬스·학연 있어야 성공" MZ이 최다…국민 86% "나는 을"

홍지유 입력 2022. 12. 1. 02:00 수정 2022. 12. 1.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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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려면 학연이나 지연, ‘부모 찬스’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난 4년 새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와 부동산 가격 급등, 기득권층의 비리 사건 등이 겹치면서 나타난 변화로 풀이된다. 자녀를 더 오래 지원해줘야 한다는 부모 세대가 늘었고, 사회가 공정하다는 인식은 낮아졌다.

지난 28일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매물 정보가 붙어있다. 연합뉴스


중앙일보가 입수한 한국직업능력연구원(직능연)의 ‘2022 한국인의 직업의식 및 직업윤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85.9%는 자신을 ‘을’이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학력이 낮을수록 을이라는 인식이 두드러졌다. 직능연은 4년마다 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10대~60대 국민 4501명을 대상으로 했다.


부모 찬스 없으면 ‘을’


갑·을이 나뉘는 이유가 학연·지연·부모 때문이라는 응답은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높은 자리에 있으려면 학연이나 지연, 부모덕이 있어야 한다”는 문항에 동의하는 정도가 2018년 2.76점(4점 만점)에서 2022점 2.84점으로 올랐다. 특히 MZ세대가 2.89점으로 가장 높았고, X세대(2.86점), 베이비붐세대(2.76점) 순이었다.

MZ세대는 사회지도층의 비리 사건을 겪으며 ‘부모 찬스’에 더 민감해진 것으로 보인다. 취업준비생인 김민영(24)씨는 “대학 3학년 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가 터졌다”며 “사회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화가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도 저런 부모가 있었다면’하고 생각했다”고 했다. 직능연은 “고위공직자 자녀의 대학입시 부정을 목격하며 ‘부모 찬스’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결혼한 자녀도 경제적 지원해야” 응답 3배 증가


부모 세대는 자녀를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원해줘야 한다는 인식이 커졌다. “자녀에게 언제까지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학교 졸업까지”란 응답은 2018년 52.3%에서 45.8%로 줄었다. 반면 “취업할 때까지”는 23.3%에서 25.8%로 늘었고, “결혼해도 계속 지원”한다는 응답은 1.8%에서 6.5%로 세배 넘게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퇴직 교사 이재완(62)씨는 서울에 집을 갖고 있지만 수년 내 강원도로 이주할 계획이다. 아들이 결혼하면 서울 집을 물려주기 위해서다. 이씨는 “아들이 대기업에 다니는데도 월급으로 서울 전셋집 마련이 어렵다”며 “번듯한 직장이 있어도 어려우니 도와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직장생활 25년 차인 금융사 간부 박모(50)씨도 “자녀에게 최소한 전세금은 보태줘야 한다”며 “젊은 사람들이 돈을 모으기 힘들어졌으니 그 정도는 도와줘야 하지 않겠나”고 했다.

직능연은 “팬데믹 이후의 부동산 급등과 경제 불황이 부모 세대의 인식을 바꿨다”며 “부모 세대보다 자산 축적이 어렵다는 현실을 반영해 성년 자녀라도 더 오랜 기간 지원하겠다는 부모들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사회와 직장에서의 공정성도 낮아지는 추세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이 지켜지고 있다”는 응답은 2018년 2.93점(5점 만점)에서 2022년 2.79점으로 떨어졌다. “업무성과에 대해 공정한 평가가 이뤄진다”는 답변도 2018년 3.14점에서 2022년 2.91점으로 낮아졌다.

직장에서 승진을 위해서도 능력보다는 외부 요인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승진 장애 요인이 ‘능력 부족’ 때문이란 응답은 2018년 40.8%에서 2022년 30.4%로 떨어졌다. 반면 ‘지연과 학연’을 꼽은 응답은 20.1%에서 24%로 늘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공정성을 평가할 때 남에게는 엄격하고 본인에게는 후한 경향이 두드러졌다. “주변 사람들이 직장에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느냐”는 문항의 긍정 점수는 2018년 4.41점(7점 만점)에서 2022년 4.17점으로 떨어졌다. 반면 “자신은 공정하게 일을 처리한다”는 문항은 4.81점에서 5.11점으로 높아졌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시기 부동산값이 크게 올라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회 전반의 신뢰 수준이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수저 계급론’이 공정성 인식, 부모의 자녀 부양 수준, 노동 가치 인식 변화에 두루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교육 격차가 취업과 미래 소득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유·초등 단계부터 국가가 조기 개입해 사교육을 받는 아이들과 그렇지 못한 아이들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보정해야 한다”고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정윤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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