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클래식의 실체... "너무 열심히 연습해 영감 잃기도"

선채경 2022. 11. 30.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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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 KBS1TV <시사기획 창> 'K클래식은 없다' 편

[선채경 기자]

'갓기'라는 신조어가 있다. 신을 뜻하는 영어 단어 '갓(God)'과 아기를 합친 말인데, 처음에는 주로 나이가 어린 아이돌에게 붙이는 별명으로 쓰였다. 열넷, 열다섯 살, 아주 어린 나이에 데뷔한 아이돌이 뛰어난 기량과 매력을 보여줄 때 팬은 그들을 '갓기'라 부르곤 한다.

이 말은 연예계를 중심으로 쓰이다가 스포츠, 클래식 음악 등 예체능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추세다. 다른 분야와 달리 예술가과 운동선수는 10대에 최전성기를 달릴 수 있다.

11월 29일 방송된 시사기획 창 〈K클래식은 없다〉는 이렇게 어린 한국 학생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K클래식' 잔칫집에 흥 깨는 질문을 던졌다. "순위를 향한 선망이 과연 클래식 음악 열풍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인가? 더 빨리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이 음악의 목표일 수 있나?"의 문제다.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최연소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
ⓒ KBS
 
피아니스트 임윤찬, 첼리스트 최하영, 한재민,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이들은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뿐 아니라 '최연소'로 입상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또한 비슷한 교육과정을 밟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모두 한국예술영재교육원에서 국내 최고 교수들에게 지도받았고, 그 과정에서 '금호영재'로 선발돼 무대 경험을 가졌다.

학생들 사이에선 이 과정을 경험하는 시기가 빠를수록 유리하고, 반대로 더디거나 낙오하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하루 8~10시간에 달하는 한국 학생들의 연습량은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피터 콜 카인라드 국제콩쿠르세계연맹 의장은 "한국의 영재들은 그 어떠한 타협도 없이 최선을 다한다"고 평한다.

더 빨리, 더 많이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일까?
 
 독일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 콘라드 마리아 엥겔 교수
ⓒ KBS
 
<시사기획 창> 제작진은 독일의 명문 음악학교인 한스 아이슬러 음악대학을 찾았다. 콘라드 마리아 엥겔 교수는 "학생들이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한 나머지 영감을 잃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관객들은 연습실에서 연주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연습만이 정도(正道)가 아니라 바깥세상에 나가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대학에서 조교로 일하는 강수연씨는 "결국엔 누군가를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게 음악가로서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예술은 다양하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내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저변을 갖춘 국가를 한국과 병렬 비교해서는 답을 찾을 수 없다. "K클래식의 실체는 무엇이고, 이 현상은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가?"는 유럽에 물을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찾아야 했다.

빠르게 성공하지 않으면 빠르게 낙오되는 현실

한국의 음악 영재들은 차고 넘치지만, 설 수 있는 무대는 턱없이 부족하다. 일찍 신의 경지에 달하지 않으면, '갓기'가 되지 않으면, 무대 바깥으로 낙오되는 구조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다양한 예술세계를 탐구한다는 건 사치스러운 말로 들린다.

빠르게 성공하는 사람만큼 빠르게 좌절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진다. 그 좌절과 실패를 들여다 보아야 한다. '어린 나이에 실패를 겪은 음악인들이 어떻게 악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국 음악계에 남은 고민이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인터뷰에 답하고 있다.
ⓒ KBS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관객은 한 명의 스타를 원하지만, 예술교육은 그 한 명이 아니라 나머지를 위한 시스템이 되어야 한다"며 "예술을 잘 이해하고, 건강하게 교육받은 재원들이 사회로 나가 그것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교육관을 밝혔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지난 11월 28일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돈이 아니라 음악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외된 분들에게 음악이라는 우주를 열어드리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한다.

언론과 대중은 신동, 영재, '갓기' 등 최연소를 일컫는 타이틀에 주목한다. 그러나 음악에 있어 중요한 건, 연주자의 어린 나이에 대한 칭송보다 그 음악을 더 많은 이들에게 널리 퍼뜨릴 무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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