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말기암 상태"... '스웨이츠 빙하' 인류 종말의 방아쇠
[이준목 기자]
'기후 위기'는 현재 전 세계에 닥친 심각한 현안이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최근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 "인류는 기후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며 그 심각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계속 증가하는 만큼 지구 온도도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 현재 지구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회복 불가능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평가다. 인류를 진보시켜줄 것으로 믿었던 문명의 발전이, 한편으로는 급속한 자연환경 파괴로 인하여 오히려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지름길을 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0.2도 차이가 불러온 '소빙하기'
▲ tvN <벌거벗은 세계사>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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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2000년간 측정된 지구온도변화 그래프에 따르면 문명이 시작된 이래 인류의 발전은 항상 기후의 영향을 받았다. 인류는 온화한 기후 속에서 농업 생산량 증대와 인구 증가, 도시의 발달을 이뤄낼 수 있었다. 하지만 14세기에서 18세기 사이에 추운 날씨가 오래 지속되는 '소빙하기'에 접어들며 인류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조선 역사상 최악의 기근으로 꼽히는 경신대기근(1670년대)를 비롯하여 전 세계에 닥친 대기근, 그리고 유럽 인구의 30%를 몰살시킨 흑사병같은 큰 전염병들도 모두 이 시기에 도래했다.
소빙하기 당시에 내려간 지구의 온도는 고작 0.2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극히 미세해보이는 이 작은 온도의 차이만으로 지구의 기후를 바꾸고 인류의 생존과 세계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런데 19세기에는 지구의 온도가 갑자기 급상승한 것으로 드러난다. 바로 산업혁명이 일어났던 시기다. 공장, 기차, 자동차, 발전소 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면서 불과 백 년 만에 지구의 온도가 1.1도 가까이 올라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2차대전 당시 일본에 투하됐던 원자폭탄처럼 핵폭발은 한 번의 폭발만으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현재 지구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폭같은 규모의 폭발이 1초에 4~5개에, 하루로 치면 43만 2000개의 핵폭탄 위력에 버금가는 규모로 열에너지를 매년 흡수하고 있는 상황이며, 심지어 이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의 온도 상승으로 기후가 점점 더워지는 현상이 바로 '지구 온난화'이며 그 주범이 바로 인간이 배출해낸 '온실가스'다.
온실효과는 지구 표면에서 나온 복사열이 우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잡아두어 지구 표면이 더워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2021년 기준 전세계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400억 톤에 이른다.
환경 전문가들은 놀랍게도 현재 지구의 상태가 사람에 비유하면 말기암 환자와 같다는 충격적인 진단을 내린다. 급격한 산업화와 육식 등의 생활변화에서 기인한 지구온난화는 2019년에 이르러 지구 시스템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초래했다.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의 온도 격차가 무려 2도 벌어졌는데 이는 지구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대이변이었다. 좀처럼 변화하기 힘든 바다의 수온이 바뀌었다는 것은 그만큼 엄청난 열이 공급 혹은 이탈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그 뒤에 이어질 기상 이변의 전조에 불과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부하던 호주는 2019년 9월 동부 퀸즐랜드주에서 시작된 '대화재'로 충격에 휩싸였다. 건조한 산에 마른 번개가 내리쳐 불씨가 붙으면서 비롯된 산불은 한 달 사이에서 호주 동부 전역을 휩쓴 대재앙으로 번졌다. 호주 정부는 25만 명이 넘는 소방관과 700대가 넘는 소방차량을 투입했고 해외에서도 대대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초유의 산불을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화재 현장에서 발생한 화염 토네이도, 이른바 악마의 불(Fire devil)이라 불리는 현상은 산불 진압을 더욱 어렵게 했다. 화재가 발생하면 불이 대기를 가열하면서 뜨거워진 공기가 하늘로 치솟고 주변의 공기가 덩달아 빨려들어가면서 회오리가 발생한다. 여기서 곳곳에 구름을 타고 벼락이 내리는 '마른 번개' 현상까지 속출하면서 또다른 곳까지 불이 옮겨붙었다.
첫 산불 이후 약 3개월이 흐른 2019년 12월에 이르러 호주 산불은 끝내 국토 전역까지 번지고 말았다. 통제불가능한 상황에 놓친 호주 정부는 앤드루 콘스턴스 교통장관이 "이것은 산불이 아니라 원자폭탄"이라고 표현할 만큼 사태가 심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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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상가상 2020년 1월에는 산불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호주 남부 캔버라에 우박 폭풍이라는 또다른 재난이 발생했다. 골프공 크기의 우박들이 엄청난 규모로 쏟아지며 도시 전체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산불의 영향으로 뜨거워진 공기가 위로 상승하여 재과 먼지, 수증기 등을 흡수하여 대기권에서 응고되어 그대로 대규모의 우박이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 것.
또한 기상 이변으로 입은 피해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주의 상징인 코알라는 8만 마리에 이르던 규모가 대화재 기간 동안 6만 마리 이상이 희생되며 '멸종 위기종'에 처했다. 이밖에도 산불로 죽거나 다친 각종 야생동물의 숫자는 약 30억 마리에 이른다.
그런데 호주를 패닉과 절망감으로 몰아넣은 산불이 2020년 2월에 들어 화재가 갑자기 진화됐다. 바로 호주 전역을 강타한 폭우 때문이었다. 호주 중남부 해안에 하루동안 내린 물폭탄의 양만 350mm에 이르렀고, 이는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1300mm)의 약 1/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호주 정부는 비 덕분에 겨우 6개월 만에 산불 사태 종식을 선언했다. 인간이 만든 자연재해를 해결한 것도 인간이 아닌 자연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산불은 종식되었지만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산불로 불탄 면적만 약 12만 제곱킬로미터로 이는 대한민국 전체 면적(10만 제곱킬로미터)을 넘어서는 수준이었고, 산불 피해규모 총액은 약 80조 원에 이르렀다. 산불만으로도 이미 호주 역사상 최대규모의 재난으로 기록되었는데, 곧이어 내린 폭우는 산불이 꺼진 뒤에는 축복에서 또다른 재난의 시작으로 바뀌었다. 엄청난 폭우로 홍수가 발생해 또다시 호주 국토를 뒤흔드는 새로운 피해를 초래했다.
이러한 호주의 기후 대재난의 비밀은, 바로 인도양의 동서 수온차에서 비롯됐다. 지구 온난화로 발생한 열의 90% 이상을 바다가 흡수한다. 바다가 지구가 내뿜는 엄청난 열에너지를 감당하지 못 하면서 대기순환 구조에도 각종 이변이 발생한 것이다. 실제로 2019년은 지구의 온도가 역사상 두 번째로 높았던 해로 측정됐다. 대화재 이전에 호주의 국토는 가뭄과 폭염으로 이미 뜨거워진 대지가 화재앞에서 불쏘시개처럼 취약한 시한폭탄같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지구순환 시스템상 물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한쪽에 가뭄이 발생했다면 다른 쪽에는 홍수가 발생하는 구조다. 동쪽과 서쪽의 극심한 온도차이로 거대한 비구름이 형성되면서 그 비가 내린 곳은 인도양의 서쪽인 아프리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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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도 기상 이변을 피하지 못했다. 2020년 7월, 한국과 중국, 일본이 연이어 비슷한 시기에 장마권에 접어들며 폭우와 홍수, 태풍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는 '동아시아 대홍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한국은 최대 약 1000mm가 넘는 폭우가 내렸고, 장마는 역대 관측역사상 최장기간인 54일간이나 이어졌다. 2년이 흘러 2022년인 올해도 폭우로 인한 강남역 침수사태 등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한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심해질수록,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홍수는 더 빈번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으며, 한국도 더 이상 기후 재앙에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처럼 수온의 작은 변화도 지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한편으로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열대성 저기압'은 홍수와 화재 못지않게 인류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2020년 8월부터 11월까지 미국에서는 관측 사상 초유의 대형 허리케인들이 잇달아 속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남부에 발생한 쌍둥이 허리케인 마르코와 로라, 샐리가 연속으로 미국을 강타하며 5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하고 80만 가구가 정전으로 피해를 입거나 건물이 파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태풍은 그 강도에 따라 중간 등급 정도만 되어도 건물의 지붕을 날릴 수 있고, 최고단계인 초강력 등급(194km/s)에 이르면 콘크리트 건물도 붕괴시킬 수 있는 수준이다. 올가을 한국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돌연변이 태풍 힌남노가 바로 초강력 태풍에 해당한다.
기후에 영향을 주는 것은 바다만이 아니다. 지구의 냉장고이자 빛과 얼음의 땅으로 불리는 '북극'은, 지구의 온도를 적절하게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 북극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북극을 덮친 이상기온 현상으로 빙하가 있었던 스발바르 제도는 갯벌로 바뀌었고, 원래라면 살 수 없었을 모기떼가 창궐하는 충격적인 모습이 공개됐다. 천적도 없는 모기떼는 북극 생태계에도 이변을 초래하며 많은 동물들이 생사의 위기까지 몰렸다. 동물의 개체수가 줄면 자연히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식량위기로도 이어진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1979년 9월에서 2011년 9월까지 북극해 해빙 부피의 약 4분의 3이 사라졌다. 현재 추세로 가면 2030년 정도만 되어도 북극 빙하가 소멸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린란드는 2021년 관측 최초로 비가 내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가 내린다는 것은 얼음이 녹는다는 것이다. 불과 3일간 내린 비로 대한민국 면적의 약 20배에 이르는 얼음이 소멸됐다. 올해는 과거 영하 10도였던 기온이 영상 6도까지 오르면서 60만 톤의 얼음이 또다시 증발됐다.
북극권 빙하는 태양열을 반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빙하는 얼음으로 바다를 덮어 수증기 증발을 억제한다. 빙하가 사라지면 바다는 열을 반사하지 못 하고 그대로 흡수하여 지구의 온도는 더 높아지고 또다른 기상이변을 초래하는 악순환이다.
북극권에는 약 1조 6000억 톤에 이르는 탄소가 저장된 '영구 동토층(일년 내내 얼어있는 땅)'이 있다. 온난화로 영구 동토층이 녹는다면 탄소가 밖으로 배출되어 지구 온난화와 온실효과가 더 가속화된다.
러시아에서는 최근 기상이변으로 영구동토층이 녹아 지반이 불안정해지면서 해당 지역에 건립된 유류 저장고가 파열되거나, 순록 등 현지 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영구 동토층이 녹으며 과거의 탄저균이 되살아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토층 내부에는 탄소 외에도 인류에게 어떤 위험한 바이러스가 잠들어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기에 지구 온난화는 시한폭탄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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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으로 꼽히는 텍사스는 2021년에 알래스카보다 더 추운 영하 23도의 대한파와 폭설이 몰아치며 각종 사고가 속출하여 중대재난지역으로 선포되기도 했다. 따뜻한 지역에 거주하는 거북이 등 야생동물들도 갑작스러운 추위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기상 이변은 항상 동전의 양면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이 대한파에 직면했을 무렵, 유럽은 정반대로 극단적인 폭염이 발생하여 고통을 겪었다. 2022년 영국은 한낮 기온이 무려 40도까지 치솟으며 역사상 최고 기록을 세웠다. 기록적 폭염은 유럽 각지에 가뭄과 화재 등 여러 사고를 초래했고, 큰 강이 말라붙었으며 인류의 식량이 되어야 할 농작물과 식수 생산에도 연쇄적인 타격을 미쳤다.
더 무서운 것은 극지방의 빙하가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하면 그 물이 바다로 유입되어 해수면 상승으로 해안가 도시들을 언제든 침수시킬수 있다는 것. 평균 두께 2000미터에 이르는 빙하로 이루어진 남극 대륙은 빙하가 모두 녹을 경우 해수면이 무려 57미터가 상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안도시는 물론이고 서울이나 뉴욕같은 내륙 대도시까지 침수시킬 수 있는 규모다. NASA의 발표에 따르면 2017년에 이미 한 해 동안 연간 2520억 톤의 남극 빙하가 녹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문가들은 남극의 서쪽에서 빙상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스웨이츠 빙하'를 이른바 '운명의 날 빙하'라고 일컬으며 인류 종말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빙하가 녹게 되면 그안에 있던 남극 빙하가 밖으로 흘러나며 지구 전체를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는 것.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해발고도가 낮은 몰디브나 쿠발루 등은 가장 먼저 바다밑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이탈리아도 최근 바다에 인접한 베네치아 지역 등이 매년 침수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최소 1억 명 이상이 해수면 상승으로 인하여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은 현재 1.1도가 상승한 지구 온도가 앞으로 3도까지만 상승해도 전 세계가 침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며 2030년경에 우리나라도 대홍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망이 현실이 될 경우 국토의 5% 이상이 물에 잠기고 300만 명 이상이 피해를 입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80년 뒤인 2100년에는 지구의 해수면이 약 1.1m 정도 상승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로 인한 더 많은 태풍과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앞으로 '1.5도', 인류 멸망을 막기 위한 마지막 저지선으로 꼽힌다. 현실적으로 지구 온난화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도와 규모는 조절할 수 있다. 온난화의 주범인 탄소 배출 줄이기와,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려는 노력은 당장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시작해야 할 시급한 숙제다. 이것은 우리를 지키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이후에도 이 땅 위에서 살아갈 다음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토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아이들로부터 빌려온 것'이라는 인디언 속담은, 기후 위기를 맞이한 인류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슴속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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