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일한다는 건? 콘텐츠 디렉터 임나리의 생각

2022. 11. 30.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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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나만의 온전한 오피스를 세우는 방법.
unsplash

집 안에 나만의 온전한 오피스를 세우는 방법

회사를 그만두고 오랫동안 집에서 일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잠들면 새벽에 어렵사리 몸을 곧추세워 컴퓨터 앞에서 늘어진 시루떡처럼 앉아 일하곤 했다. 당연히 체력적으로 피곤했다. 좀 더 큰 집으로 이사 오면서 큰 방이 하나 남았고, 그곳을 작업실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원래 출근이란 체제에 맞지 않은 인간이고, 두 아이를 돌보며 일하려면 집과 작업실이 공존하는 구성이 맞다. 하지만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 위해 집 안에 작업실을 둔 건 아니다. 아이가 없더라도 나는 이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성향의 문제다.

나는 상황에 따라 선택적 고립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숨어 있기 좋아하는 장소가 집이고, 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편안하게, 유동적으로, 하고 싶었다. 작업실을 위한 별도의 인테리어 공사는 하지 않았지만 공간에 놓일 가구는 공간디자인 사무소인 플랏엠에 의뢰했다. 오랫동안 그 공간에 머물려면 정신을 거슬리게 하는 게 없어야 하기 때문에 밝은 톤에 심심한 공간이길 바랐다. 무엇보다 조용하고 편안하고 쾌적한 공간이었으면 했다. 컴퓨터나 프린터의 선 정리 같은 건 지금도 거슬린다. 언젠가 제대로 된 공사를 한다면 전선 관리, 환기 시스템 정비, 좋은 마감재에 적극 투자할 것이다. 공간이란 하드웨어를 제대로 갖춘 후 그 안의 소프트웨어를 천천히 채우고 싶다.

아이들이 등교하고 난 뒤인 오전 8시 30분이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오늘 할 일을 체크하고, 메일을 확인하며 커피를 마신다. 운동하는 날에는 오전 10시에 외출하고, 컴퓨터 앞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시 업무를 본다. 일이 많을 때는 밤낮없이 앉아 있지만, 한가할 때는 인터넷 서핑도 하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낸다. 콘텐츠 기획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주로 자료 정리를 한다. 업무가 많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짧은 휴식을 가진다. 데이 베드에 잠깐 누워 있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좋아하는 영상을 보며 마음을 재정비하기도 한다. 내 컨디션에 따라 활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이 나만의 공간을 가진 장점 중 하나다. 나만의 오피스에서 도전해 보고 싶은 이유는 콘텐츠가 공간화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최근 DDP 살림터에서 열린 전시 〈집의 대화: 조병수×최욱〉 기획자로 참여했는데, 여러 창작자와 협업하면서 콘텐츠가 영상과 공간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책이나 홈페이지 같은 평면적인 콘텐츠를 기획했으나 공간 콘텐츠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이 필요했고, 공간을 좋아하는 내겐 무척 흥분되는 프로젝트였다. 평소에 집을 포함해 어떤 공간이라도 밀도 높은 작은 곳보다 여유롭게 넓은 곳을 선호하는 편이다. 집은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현실과 타협해야 했고, 따라서 동네 선택이 중요해졌다. 비싼 동네의 작은 집보다 중심에서 조금 멀어져도 적당히 널찍한 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쉽게 시내로 갈 수 있는 위치지만 아직 덜 개발된 지역. 그래서 지금의 홍은동에 자리 잡았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부암동에 살아보고 싶다. 대부분 고요한 산속에 있지만, 내가 원할 때 언제든 빵이나 커피를 사러 갈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먼 미래에는 좀 더 넓고,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업실을 꿈꾸고 있다.

코로나19로 원격 수업이 많은 시기라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자잘한 요청을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고립된 곳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그러려면 집 옆에 오두막처럼 작은 작업실이 있는 구성이면 좋겠는데, 역시 서울에서는 어려울 듯하다. 여성이 집에서 일할 때는 가사와 경계가 흐려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자신만의 일을 하는 엄마와 아내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하고 구분한다는 건 어려운 문제다. 나만의 공간이라는 구역 표시는 어쩌면 가장 강력하게 가족에게 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온전한 한 사람이라는 모습을 표출하는 일이기도 하다.

전화와 메일, 카카오톡 등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을 쉬지 않고 하는 모습, 책을 쌓아놓고 자료를 정리하는 모습, 사람들과 미팅하는 모습 등을 은연중에 옆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제 아이는 하교할 때 당연하다는 듯이 엄마의 미팅 일정과 퇴근 시간을 묻는다. 야근하는 날이면 겨드랑이 속을 파고들며 같이 자자고 보채기도 하지만, 엄마가 오늘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도 한다. 일터이든 작업실이든 혹은 그냥 명상 공간이든 나만의 공간을 만든다는 건 나를 존중하는 가장 효과적인 선언이다. 누구든지 이 선언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 어서 내 책상 하나 들여놓을 자투리 공간을 찾길 바란다.

임나리, 콘텐츠 디렉터

단정한 홈 오피스에서 일하는 ‘워드 앤 뷰’ 대표. 콘텐츠를 공간화하는 작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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