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중국읽기] 두려움 떨치고 거리로 나선 중국 인민
최근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만큼이나 세계의 주목을 받는 나라가 있다. 중국이다. 지난 10월 말 시진핑의 중국 공산당 총서기 3연임을 확정한 20차 당 대회 이후 연말까지는 중국에 큰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그로부터 한 달 만에 중국 대륙이 거대 시위로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 독일의 한 언론은 11월이 중국엔 ‘분노의 달’로 기억될 것이라고 보도할 정도다.
이번 사태를 촉발한 건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11월 24일 신장 우루무치 톈산(天山)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대형 화재다. 10명이 숨지고 9명이 상처를 입었다. 많은 중국인은 이번 참사의 원인이 제로 코로나 정책에 있다고 본다. 아파트 단지를 폐쇄하고 현관문을 쇠사슬로 잠그는 등의 무리한 봉쇄 정책 탓에 제때 화재 진압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엇비슷한 봉쇄 조치를 당하고 있는 대다수 중국인은 이를 남의 일이 아니라고 여긴다. 나에게도 언제고 닥칠 수 있는 불행이라고 본다. 거리로 뛰쳐나온 배경이다. 한데 경찰이 시위대에게 말한다. 집에 가서 월드컵이나 보라고. 이는 두 번째 이유로 이어진다. 월드컵 중계 TV 화면에 잡힌 카타르의 모습은 마스크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세계 각국 응원단의 생얼 축제 현장이다. “이들이 과연 중국인과 같은 행성에 사는 게 맞느냐”는 중국인의 탄식이 쏟아졌다.
중국의 11월 마지막 주 휴일은 시위로 얼룩졌다. 베이징과 상하이, 광저우, 시안, 우한 등 중국 곳곳에서 그리고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 등 중국 전역의 103개 대학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놀라운 건 19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때도 명확하게 외치지 못했던 ‘공산당 타도’ 목소리가 터졌다는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상하이에선 ‘시진핑 물러가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이번 시위는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첫 번째는 국지성 시위가 아닌 전국성 시위라는 점이다. 천안문 사태 이후 3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봄 상하이 봉쇄 당시만 해도 상하이를 제외한 나머지 중국은 관객 입장에 머물렀다. “안 됐다”는 동정심만 가졌을 뿐 상하이와 같이 행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은 다르다. 전국이 들고 일어난 상태다. 노동자에서 학생과 시민까지, 한족에서 소수민족까지, 일선 도시에서 변방의 도시까지 모두 시위에 가담하고 있다.
두 번째는 중앙정부, 공산당, 시진핑 등 권력의 핵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중국 역사상 거의 처음 있는 일이다. 과거 중국 시위는 지방에 국한된 경우가 전부였다. 2011년 광둥성 우칸(烏坎) 사태가 대표적이다. 촌장이 촌의 토지를 사적으로 팔아먹은 비위에 촌민이 들고일어난 사건 정도다. 중앙정부를 겨냥한 적은 없었다. 한데 이번엔 ‘공산당 타도’와 ‘시진핑 하야’를 외치고 있다.
세 번째는 한껏 움츠려있던 중국 인민이 행동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당의 전제에 눌려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는 중국 인민이 공권력을 상대로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충칭(重慶)에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의 문제점을 큰 소리로 꾸짖다 경찰에 붙들려 가던 남성을 시민들이 나서 직접 구출한 사건이다. 공안 앞에서 말할 자유를 달라며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는 모습은 예전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관심은 이번 시위가 과연 중국을 바꿀 수 있느냐 여부에 모인다. 일회성 해프닝으로 끝나고 말까? 비관론자들은 시위를 주도하는 ‘조직’의 부재를 지적하며 시위가 계속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 특히 중국 당국의 전형적인 시위 진압 방법이 얼마 후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것은 처음엔 유화적으로 시위대의 요구를 어느 정도 들어주는 제스처를 취하는 방식이다.
이어 감시 카메라 등을 이용해 시위의 주동자 색출과 체포에 나선다. 마지막 단계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에 대한 집중 분석을 통해 앞으로는 유사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감시와 단속의 손길을 강화하는 것이다. 또 제로 코로나 정책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가 많다. 봉쇄와 PCR 검사를 양대 축으로 하는 제로 코로나 정책이 시진핑 치적의 상징처럼 치부되기에 방역 완화 제스처는 있어도 근본적으론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번 시위가 예전에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여러 특징을 보였듯이 그렇게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를 중국의 공권력에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 중국 민중의 당당한 모습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제 정권의 압제와 폭정은 통상 민중의 공포와 복종을 기초로 한다. 한데 이번 시위에 나선 중국인의 모습에선 과거와 같은 두려움을 찾기 어렵다. “공산당 타도”나 “시진핑 하야” 등은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지만, 감히 외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공포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그 두려움을 이겨낸 것으로 보인다. 20차 당 대회가 있기 전인 지난 10월 중순 베이징 하이뎬(海淀)구의 쓰퉁(四通)교에 ‘시진핑 파면’을 적은 플래카드를 붙였던 이를 중국의 많은 이들이 이름 대신 ‘용사(勇士)’라고 부른다. 10월에 하나뿐이던 용사가 불과 한 달 만에 수만, 수십만으로 늘어난 모양새다. 앞으로 중국 인민이 그리 호락호락 공산당의 압제에 휘둘릴 것 같지 않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 73년 만에 큰 위기를 맞았다.
유상철 중국연구소장·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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