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이태원 ‘처벌’만 능사 아니다
158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한 달이 지났다. 유족을 포함한 국민은 충격과 혼란, 분노와 상실감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을까. 더 나아가 우린 해밀톤 호텔 옆 좁은 골목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이웃과 자녀와 동료들의 생명을 빼앗은 재앙의 장소가 된 건지 진실을 알게 됐나.
그 답이 ‘아니다’라는 걸 알뿐이다. 진상 규명은 경찰이 맡았다. 참사 이튿날 서울경찰청에 수사본부를 꾸려 바로 조사에 착수했고 사흘 뒤인 11월 1일부터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산하의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500여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경찰 조사 한 달의 결과는 참사 당일 현장에서 걸려 온 112신고 대응 등 직무를 소홀히 한 혐의로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류미진 전 서울청 상황관리관, 정모 전 서울청 112 상황 3팀장과 송병주 전 용산서 112 종합상황실장 등 6명을 수사 의뢰한 게 전부다. 이 중 2명은 참사 전 ‘핼러윈 안전사고 우려’ 내용이 담긴 보고서 삭제 의혹을 받는 박성민 전 서울청 정보부장과 김모 용산서 정보과장이다. 용산서 정보계장은 극단적 선택을 해 충격을 줬다.
경찰 조사가 현장 실무자들에 대한 책임 추궁과 형사 처벌을 위한 수사에 치중하면서 참사 원인 규명은 뒷전으로 밀렸다. 특수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으로부터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등 141개 영상을 포함해 현장의 인파 밀집도 등 객관적 자료에 근거한 3차원(3D) 시뮬레이션 결과를 지난 24일 넘겨받았지만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 여야는 지난 24일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45일간 국정조사 계획서를 통과시켜 놓고 첫 회의도 열지 못한 채 공전하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사 책임 추궁을 위해 대통령 고교·대학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카드를 꺼내 들면서다. 국정조사가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가 아니라 대통령 측근 제거용이란 정치적 용도란 점만 드러냈다. 조사 대상 기관에 참사 당일 경찰의 마약범죄 단속 인력 배치를 놓고 수사지휘권도 없는 대검찰청을 포함한 걸 두고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장동 비리 연루 의혹 검찰 수사에 대한 방탄용이란 지적을 받는 상황이다.
세월호 때 검·경 합수본, 국정조사, 특별조사위, 특수본·특검을 거쳐 책임 추궁을 위해 대통령 비서실장·안보실장, 해경 수뇌부를 재판에 넘겼고 대부분 무죄를 받았다. 응분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이대로 진상 규명과 과학적·체계적 대책 마련이 계속 뒷전이면, 이로써 반복될 미래가 무섭기 때문이다.
정효식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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