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예술] 미술관 밖으로 뛰쳐나온 미술

2022. 11. 30.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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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1941년 마르셀 뒤샹은 30여㎝ 크기의 가죽 상자 안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샘(남성용 변기)’ 등 자신의 대표작을 미니어처로 제작해 넣었다. ‘가방 속의 상자’로 불리는 이 작품은 ‘화이트 큐브(전시 공간)’라는 정태적 전시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세일즈맨처럼 가방에 자신의 작품을 담고 이를 펼치는 장소가 미술관이 되도록 한 일종의 ‘배달형 미술관’이었다. 이후 한 세기가 지나 갑작스레 찾아온 팬데믹으로 미술관은 관객에게 미술품을 전달할 다양한 방식을 모색하게 됐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전시 배달부’전(내년 1월 29일까지)은 ‘집에서 만나는 미술관’ ‘삼청로 30. 미술관 앞’ 등 관객과 소통을 위해 미술관이 행했던 공공프로젝트 관련 아카이브 80여 점과 작품의 이동(배달)을 주제로 한 영상, 설치 작업 등 50여 점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배달의 의미를 미술의 관점에서 되짚어 본다. 이 가운데 1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은 폭발적으로 퍼진 배달 문화와 이로 야기된 삶의 질적 변화를 작품으로 드러냈다.

「 청주 현대미술관의 ‘전시배달부’
배달·이동 주제로 한 다양한 시도
팬데믹 시대, 관객들과 직접 소통
남북이 함께한 자수 작품도 눈길

함경아의 ‘미안합니다’, 2009~2010, 천에 북한 손자수.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뒤샹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전시장이라는 틀에 박힌 공간을 뛰어넘어 관객에게 직접 작품을 배달하려는 작가의 열망은 팬데믹 이전부터 우리에게도 존재했다. 손끝의 지문을 컴퓨터가 모방할 수 없는 인간 고유 영역으로 파악했던 전위 미술가 김구림과 김차섭은 이미 1969년에 자신의 지장이 찍힌 종이를 봉투에 넣어 80명의 화가와 20개의 신문사에 발송했고, 이튿날 동일인들에게 “귀하는 ‘매스 미디어의 유물’을 1일 전에 감상하였습니다”라는 문구의 명함을 발송했다. 예고도 없이 작가의 지장을 배달받았던 관객은 다음날이 돼서야 이것이 작가의 퍼포먼스였음을 인지하게 된다. 편지라는 매체를 컴퓨터 시대에는 사라지게 될 ‘유물’로 유추했던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통신예술(메일 아트)’로 손꼽힌다.

작품의 이동 과정 자체가 미술품이 되기도 한다. 왈리드 베쉬티(미국)의 ‘페덱스 시리즈’는 대표적 물류 배송 회사인 페덱스의 종이 상자 위에, 이 상자에 꼭 맞게 제작된 유리 상자를 올려놓은 설치 작품이다. 그러나 작가는 작품(유리상자)을 LA에서 청주까지 ‘파손주의(fragile)’ 표식이 없는 일반 배송으로 발송했고 운송 도중 생긴 무수한 균열과 파손을 그대로 전시한다. 함께 전시된 종이 상자 위에는 청주로 도착하기까지의 운송장 번호와 컨테이너 선적 날짜, 국경을 통과하며 붙여진 각종 라벨이 붙어 있어, 이동 과정을 고스란히 시각화하며 작품에 시간의 의미를 덧씌운다.

자수를 이용해 이를 수 없는 곳과 소통을 시도하는 작가 함경아는 어느 날 현관문 틈에 낀 북한 삐라(전단)를 발견하고, 갈 수 없는 지역인 북한으로 자신이 삐라(자수의 밑그림)를 보내보기로 한다. 칼을 들고 싸우는 중세의 기사들과 전투기·미사일 등 전쟁을 상징하는 자수 밑그림은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북한의 이름 모를 자수장인에게 전달되고, 얼마 후 아름다운 자수작품이 되어 작가에게 배달된다. 남쪽 아이디어와 북쪽 기술이 결합한 이 작업의 하단에 수 놓인 ‘미안합니다(I’M SORRY)’는 작가가 북녘에 전하는 화해의 메시지다.

방역을 위해 전시장 문이 닫혔던 2020년 12월, 국립현대미술관은 온라인에서 신청자를 접수한 후 편지지와 우표가 든 봉투를 이들에게 보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미술관에 ‘배달’해 줄 것을 의뢰했다. 한 통, 두 통 도착하기 시작한 손편지는 이듬해 1월 22일까지 245통, 600페이지에 달했고, 그 안에는 불안과 회한 혹은 그리움과 안도 속에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는 개인의 엄숙하고 절절한 서사가 가득했다.

역사에 기록될 2020년을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언어로 증언한 이 편지들은 인터넷 사이트 ‘삼청로 30, 미술관 앞’에 업로드되어 일반에 공유됐으며, 책으로도 묶여 발신자에게 보내졌다. 이로써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은 공적 전시 공간으로 변하고, 편지의 발신자는 작가이자 관객이며 ‘전시의 배달자’로 탈바꿈된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배달이란 상품 순환을 극대화한 유통방식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전시는 ‘소통과 교류’라는 배달 본래 의미를 소환함으로써 유통 경쟁의 굴레 속에 함몰된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한다. 미술관이 자본의 논리로부터 독립되어 작가·작품·관객의 경험을 공유하고 매개하는 ‘예술 배달의 플랫폼’으로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주현 미술사학자·명지대 문화예술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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