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값 뛰니 경기 회복 신호? 공급 감소 탓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2. 11. 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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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코퍼’ 구리로 경기 예측해보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인 펑크서토니에서는 매년 2월 2일 그라운드호그 데이가 열린다. 다람쥐과 설치류인 그라운드호그가 겨울잠을 자다 굴 밖으로 나왔을 때의 행동을 보고 그해 남은 겨울을 예측해왔다. 그라운드호그가 자신의 그림자를 못 보고 굴을 떠나면 이른 봄이 온다고 봤다. 그림자를 보고 놀라 굴로 다시 돌아가면 그곳에서 6주간 더 머무르기 때문에, 겨울이 6주간 더 길어질 것이라고 여겼다.

원자재 중에서도 ‘그라운드호그’와 같은 존재가 있다. 구리다. 비철금속인 아연, 납, 니켈, 알루미늄, 코발트, 리튬과 함께 대표적인 원자재로 꼽힌다. 건축 현장부터 반도체, 정보통신, 로봇, 자동차를 만드는 데까지 안 들어가는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태양광, 풍력, 전기차 등 신재생에너지로의 전환 흐름과 함께 수요는 더 가파르게 늘어났다. 구리가 경기와 주가의 대표적인 선행지표로 활용되는 이유도 이처럼 구리가 산업계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활용돼서다. 오랫동안 선행지표로 활용되며 구리에는 ‘닥터 코퍼(Dr.Copper)’라는 영예로운 별칭까지 붙었다.

▶중국 부동산 부양책 긍정적

▷전기차 시장 확대로 구리 수요 ‘쑥’

경제 전문가들은 2023년 경제가 올해보다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데 무게를 둔다. 그렇다면 구리 가격으로 본 경기 전망은 어떨까. 구리 가격이 오르기 시작할 때를 경기 회복의 신호로 봐도 좋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닥터 코퍼’는 더 이상의 큰 침체를 예고하지는 않는다. 바닥을 어느 정도 확인했고 점진적인 상승세를 점치는 듯 보인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구리값은 고공행진했다. 2021년 3월 t당 4000~5000달러 선에 머물렀으나 같은 해 5월 t당 1만724달러까지 올라가며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 세계 구리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 수요가 폭증했고 미국이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기 침체 우려가 짙어지면서 구리값은 고꾸라졌다. 특히 지난 6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자이언트스텝(0.75%)’ 금리 인상을 단행한 이후 낙폭이 컸다. 지난 5월 말 t당 9200~9500달러 선을 유지하던 구리값은 두 달도 채 안 돼 7000달러 선(7월 15일)까지 밀렸다. 2020년 11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지난해 고점 대비 30% 이상 떨어졌다. 세계 각국 인플레이션과 긴축 재정으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진 뒤 수요 감소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더는 폭락하지 않았다. 글로벌 원자재 거래업체인 트라피구라의 코스타스 빈타스 금속·광물 거래 책임자는 ‘FT 마이닝 서밋’ 연설에서 “중국 부동산 침체로 구리 수요가 줄기는 했지만, 인프라 건설과 전기차 관련 수요 증가로 감소분을 상쇄했다”고 말했다. 중국은 전 세계 구리 소비량 절반을 차지할 만큼 핵심 소비국이다.

유럽 상황도 유사하다. 유럽은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의존을 줄이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전환을 가속화하며 구리 수요를 꾸준히 늘려왔다. 일례로, 태양광 발전 용량을 두 배로 늘리는 목표 시점을 2030년에서 2025년으로 앞당기며 수요를 촉발시켰다. 전기차 보급이 급격히 늘어난 점도 수요 창출에 기여했다. 가격도 반등세를 탔다. 최근 국제 구리 가격은 6개월 만에 t당 83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11월 23일 기준 LMS 선물 기준 구리 가격은 8000달러다.

구리 가격이 반등한 데는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한몫했다. 최근 미국의 물가 상승세가 둔화하며 연준의 피벗(정책 전환) 가능성이 커졌다. 중국의 정책 전환도 구리값을 끌어올린 요인이다. 그간 중국은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며 도시 봉쇄를 강화했다. 특히 4년 전부터 이어온 부동산 ‘디레버리징’ 결과로 헝다 같은 대형 건설사가 부실화됐고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박성봉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새로 출범한 시진핑 집권 3기는 부동산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주택 공급을 늘릴 것이고 이는 구리 수요 증가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대형 인프라 프로젝트, 재정 정책 확대, 리오프닝(경제 재개) 기대감도 호재다. 박성봉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봉쇄 정책에도 구리 재고가 최근 5년 중 가장 적다”며 “내년 하반기로 갈수록 수요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진영 이베스트증권 애널리스트 판단도 비슷하다. 그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구리 수요를 이끌기는 부족하다고 봤다. 특히 최종재의 주요 소비처인 미국은 부동산 경기 둔화로 구리 수요가 크게 줄었다. 결국 중국이 인프라에 공을 들이는 내년 2분기쯤 구리 수요가 본격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판단이다.

▶지금은 수요보다 공급이 가격 좌우

▷구리가 경기 선행한다고 보기 힘들어

다만 구리 가격은 수요뿐 아니라 공급이 크게 영향을 준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시장에 남은 구리 재고는 세계에서 소비되는 거래량의 4.9일분밖에 되지 않는다. 올해는 2.7일로 떨어지며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재고 부족 현상이 가격을 더 이상 폭락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트라피구라는 “구리 부족 상황을 고려할 때 t당 1만5000달러까지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크다”고 들려준다. 그의 전망대로 가격이 오른다고 해도, 이 지표가 경기 회복 신호라고 단정 짓기 어려운 이유기도 하다. 내년 2분기 구리값 회복을 전망한 골드만삭스 역시 수요 증가와 재고 감소가 맞물린 결과라는 해석을 내놨다.

한 가지 더. 구리가 ‘진짜’ 경기선행지수 역할을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1980년대부터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총생산을 합친 GDP는 꾸준히 우상향했다. 세계 경제 성장과 함께 구리 가격 또한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2000년대 초반 구리 가격은 급상승했다. IT 정보통신의 비약적인 발전, 중국 경제 부상과 함께 가격이 본격적으로 뛰었다. 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가격이 거의 생산원가 수준으로 급락했다가 다시 급등해 제자리로 돌아왔다. 구리 가격이 경기에 선행했다기보다, 위기나 회복 국면에서 함께 움직였다고 보는 게 맞다.

주식 시장의 선행지수로 보기도 어렵다. 2011년 이후 구리 가격은 미국 S&P 주가 지수와 반대로 흘러갔다. 선행하는 모습을 보인 건 2017~2018년 정도다. 이때 구리값이 먼저 떨어졌고 이후 주가가 빠졌다. 하지만 주가가 상승하는 구간에서도 구리값은 떨어지며 ‘선행지수다운’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코스피지수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역시 공급이 영향을 끼쳤다. 1994년부터 2015년까지 구리 공급량은 2배로 불어났다. 중국 경제 성장으로 수요가 늘었지만 그만큼 공급도 크게 증가하며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단순히 구리 가격 차트를 보고 주식 투자 시점을 저울질하는 것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다. 황수욱 메리츠증권 선진국 전략 담당 애널리스트는 “2010년 이후 금 대비 구리 가격을 미국채 10년물이나 S&P MDD(전고점 대비 최대 가격 하락률)와 비교해보면 상관관계가 높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도 “구리가 선행지표라기보다는 동행지표 정도로 이해하는 게 맞을 듯 보인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6호 (2022.11.30~2022.1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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