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기준 ‘최장 1년’…노동계 반발 변수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2. 11. 29.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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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 시간 개편안 뜯어보니

정부가 노동 시장 숙원 과제인 근로 시간 개편에 나섰다. 주 52시간제 관리를 기존 ‘주’ 단위에서 ‘월’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논란이 뜨겁다.

정부가 근로 시간 개편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민들이 출근하는 모습. (연합뉴스)
▶근로 시간 개편안 내용은

▷더 일한 시간 모아 안식월 쓴다

정부의 노동 개혁을 위한 전문가 기구인 미래노동시장연구회는 최근 간담회를 열고 근로 시간제 개편안을 전격 공개했다. 앞서 6월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동 시장 개혁 방향을 발표하면서 연구회에 구체안 마련을 맡겼다. 연구회는 노동법, 인사조직, 노동경제, 사회복지, 보건 등 분야별 전문가 12명으로 구성됐다.

연구회가 검토하는 근로 시간제 개편의 핵심은 현재 1주일인 연장 근로 시간의 관리 단위를 늘리는 것이다. 현행 주 52시간제에서는 1주일에 기본 근로 시간 40시간, 연장 근로 시간 12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여기서 연장 근로 12시간을 주간 단위로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월, 분기, 반기, 연간 등의 단위로 폭넓게 잡고 ‘주당 평균’ 12시간 연장 근로를 허용한다. 이 경우 근로자 업무 스케줄에 따라 월말, 연초 등 특정 시기에 몰아서 연장 근로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연구회는 구체적으로 월 단위(1안), 월·분기·반기 단위(2안), 월·분기·반기·연 단위(3안) 등 총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관리 단위를 복수로 제시한 2·3안은 전체 사업장에 일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장마다 업무 특성을 고려해 하나의 관리 단위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관리 기간이 길수록 주 52시간제 유연성이 커지지만 특정 시기 장시간 근로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은 변수다. 연구회는 이를 감안해 연장 근로 관리 단위를 월 이상으로 바꿀 경우 근로일과 근로일 사이에 ‘11시간 연속 휴식’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관리 단위를 늘리더라도 주당 근로 가능 시간이 최대 69시간으로 제한된다는 것이 연구회 입장이다.

이와 함께 ‘근로 시간 저축 계좌제’도 도입한다. 연장, 야간, 휴일 근로를 하면 이를 시간 단위로 차근차근 모아뒀다 근로자가 원할 때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추가 근로를 휴가로 저축하면 임금을 더 받는 것보다 높은 할증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일례로 연장 근로 1시간을 할 경우 1.5배 가산수당을 받는데, 시간으로 저축하면 2~3시간을 적립해주는 식이다. 연구회 측은 “근로 시간 저축 계좌제로 적립하는 휴가 시간 상한은 250시간 정도로 최대 한 달까지 휴가를 쓰는 안식월도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근로기준법에 존재하지 않는 ‘반차’ 개념 대신 시간 단위 휴가 제도도 마련할 계획이다.

변호사, 변리사 등 고소득 전문직 근로자에게는 주 52시간 제한을 면제하는 제도도 추진한다. 고소득 전문직은 임금이 근로 시간 단위로 지급되지 않고 근로 시간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는 점을 감안해서다. 연봉 10만달러(약 1억3600만원) 이상 사무직 근로자에게 연장 근로 수당과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본떴다. 대신 추후 업무 성과를 토대로 추가 급여를 받는 식이다. 일본도 2019년 미국과 비슷한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도입했다. 연봉 1075만엔(약 1억300만원) 초과 전문직 근로자는 휴일, 근로 시간 규정을 적용받지 않는다. 이들 모두 경직된 근로 시간 규제를 완화하기 위한 조치다.

▶노동계 반발 넘어서야

▷“장기간 압축 노동 의도” 지적도

정부가 주 52시간제 개편에 나서는 것은 주요 사업장마다 업무 환경이 다른데, 제도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에어컨 제조업체나 아이스크림 공장 등 특정 계절에 수요가 몰리는 업종에서는 연장 근로를 주 단위로 지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신작 게임 출시를 앞둔 게임 회사, 감사 시즌에 일이 몰리는 회계법인 등도 주 52시간제 탓에 합리적인 인력 운용이 어려웠다.

정부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주 52시간제를 보완하기 위해 탄력적, 선택적 근로 시간제 등 유연근무제를 잇따라 도입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연장 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늘려 주요 사업장, 근로자에게 폭넓은 선택권을 주자는 취지다. 노동 시간 관리 단위를 확대해 비효율적인 노동 시간을 줄이는 것이 이번 개편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을 두고 노동계 반발이 거셀 것으로 우려된다. 노동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 근로 시간이 많은 상황에서 연장 근로 시간 관리 단위를 바꾸면 주 52시간제가 무력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연간 근로 시간은 지난해 기준 1915시간으로 OECD 평균(1716시간)보다 200시간가량 많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근로 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뿐이라 전체 38개 회원국 중 5위다. 독일의 근로 시간이 1349시간으로 가장 적다. 한국 근로자들은 독일 근로자보다 566시간을 더 오래 일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이번 검토안은 기업이 원할 경우 장시간 압축 노동을 가능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꼬집었다. 11시간 연속 휴식제나 휴가 확대 방안을 두고서도 불만이 많다. 총연맹은 “주어진 연차 휴가도 소진하기 힘든 상황에서 일한 시간만큼 임금을 주지 않는 수단으로 악용될 것”이라며 노동자가 아닌 기업 입장만 대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법과 제도를 통한 규제가 느슨해지면 근무 여건이 열악한 중소기업의 장시간 노동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노조가 있더라도 교섭력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연구회 좌장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개편안은 주 52시간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현 제도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보고 선택권을 넓히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연구회는 이번에 공개한 안을 토대로 추가 논의를 거친 뒤 오는 12월 13일 최종 권고문을 내놓는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필요한 입법조치에 나설 계획이지만 노동계 반발이 워낙 거세다는 점이 변수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 노동계뿐 아니라 거대 야당을 설득하는 작업이 필수다.

한편에서는 윤석열정부가 핵심 국정 과제로 내세운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 과제 중 그나마 연말까지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노동 개혁뿐이다 보니 무리하게 속도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개편안은 자칫 주 52시간제 자체를 무력화할 수 있는 데다 근로 시간 저축 계좌제, 11시간 연속 휴식 등 여러 제도 역시 근로자가 사측 눈치를 보면 무용지물이 될 우려가 크다. 야당이 노동계 입장을 대변하지 못한다며 반발해 입법이 쉽지 않은 만큼 노동계, 야당과의 원만한 타협이 급선무다.” 익명을 요구한 A대 경영학 교수의 의견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6호 (2022.11.30~2022.1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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