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바꿀 수 있는 3%" 끊임없이 경계를 허문 버질 아블로의 이야기

박지우 2022. 11. 29.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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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질 아블로의 사망 1주기,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그가 남긴 유산들.

명멸하는 런웨이 불빛 아래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컬렉션, 전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무수한 러브콜과 스포트라이트.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패션 디자이너의 반짝거리는 삶이란 다소 까마득하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 디자이너와 비록 일면식 하나 없는 사이일지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자이너의 타계는 많은 이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주는 법이죠. 그건 아마도 이들의 작품에 담긴 시대정신을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1980년대에 파워 드레싱을 통해 전복적인 여성상을 제시한 티에리 뮈글러와 패션계에 ‘3% 접근법’이라는 새로운 공식을 도입하며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 사이의 경계를 허문 버질 아블로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버질은 “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나의 임무는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2021 멧 갈라

루이 비통 역사상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오프화이트의 설립자 버질 아블로는 지난 몇 년간 패션계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아이코닉한 인물입니다. 그는 패션, 음악,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분야를 종횡무진하며, 2018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죠. 그의 첫 브랜드인 파이렉스 비전부터 오프화이트의 시그니처인 따옴표와 케이블타이, 더 텐 컬렉션을 비롯한 나이키와의 다채로운 협업, 루이 비통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의 행보까지, 그가 남긴 유산은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인데요.

PYREX 23

하지만 이처럼 패션 신에서 수많은 역작을 탄생시킨 것과는 달리, 정작 그는 정식 패션 교육을 받지 않았습니다. 위스콘신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학 석사 학위를 딴 그는 건축가 렘 콜하스의 작품을 접한 이후, 본격적으로 패션에 매료되기 시작했어요. 이후 펜디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며, 미국의 유명 가수 칸예 웨스트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됩니다. 2012년에는 파이렉스 비전에서 아이코닉한 폴로 랄프 로렌 럭비 플란넬 셔츠와 카라바조의 작품 ‘그리스도의 매장’이 새겨진 후드를 선보이며 마니아층들을 사로잡았어요.

바로 여기서 버질의 유명한 ‘3% 접근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던 것의 3%만 바꾸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인데요. 마치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던 변기에 의미를 더해 예술품으로 탈바꿈시킨 마르셀 뒤샹처럼 말이죠. 그는 재고떨이로 약 4만 원에 구한 폴로 랄프로렌 셔츠에 ‘PYREX 23′라는 문구를 더해, 약 65만 원의 가치를 지닌 제품으로 재탄생시켰어요. PYREX 23은 마약을 만드는 데 쓰이는 유리 회사 파이렉스 사의 이름과 조던의 등 번호인 23을 합친 단어입니다. 당시 미국에서 흑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란 오직 마약과 농구뿐이라는 시대상을 반영한 프린팅이었죠. 이후에도 그는 이처럼 럭셔리와 스트리트 패션 간의 경계를 허무는 디자인을 선보였습니다. 또 에비앙, 이케아, 메르세데스 벤츠처럼 패션과는 동떨어진 분야의 브랜드와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기도 했어요.

루이 비통 2022 F/W 남성복 런웨이
루이 비통 2022 F/W 남성복 런웨이
루이 비통 2022 F/W 남성복 런웨이
하지만 2019년, 심장혈관 육종이라는 희귀암을 진단받은 그는 남몰래 투병 생활을 이어오다 지난해 11월 28일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전 세계 문화 예술계는 비통함을 금치 못하며, 그의 유산을 기리는 컬렉션과 전시, 서적을 선보였죠. 특히 버질 아블로의 마지막 루이 비통 쇼가 된 2022 F/W 컬렉션 루이 드림하우스에서는 천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레이스 날개와 마치 천국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라이브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며,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선사했어요. 이처럼 패션계의 이단아로서 버질이 남긴 유산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동시대를 사는 이들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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