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애 원장의 미용 에세이] 사냥꾼 맹사도

전병선 2022. 11. 29.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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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별명은 사냥꾼이었다.

본명은 맹사도 아저씨, 늘 총을 메고 다녔다. 그는 종종 죽은 노루를 리어카에 싣고 와서 동네 어른들에게 노루 피를 팔았다. 그날도 아저씨는 노루를 잡았다면서 우리 아버지께 건강에 최고의 보약이라고 설명하면서 와서 노루 피를 한 사발 드시라고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웃으며 “노루 가족들에게는 오늘 큰 초상이 났는데 조문을 가야 할 판에 그 피를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겠는가? 자네나 많이 들게” 하였다. 심경이 불편한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은 건강에 좋다고 다들 마시는데 고개를 내저으며 노루 피를 거절했다.

나는 그 아저씨를 교회에서 자주 만났다. 그는 내게 늘 친절했고 딸들도 나와 친한 언니들이었다. 그중에도 작은언니는 나를 만날 때마다 가족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 나오는 나를 기특하다고 격려해 주곤 했다.

며칠이 지난 뒤 아버지는 “오늘은 내 딸하고 얘기를 좀 해야지” 하시면서 서재로 나를 불렀다. 평소에 꿈 얘기를 잘 하는 아버지가 오늘은 또 무슨 꿈을 꾸었나 하는 호기심으로 턱을 고이고 앉았다. 그러나 이야기의 줄거리는 포수 맹사도 아저씨였다. 노루는 워낙 앞다리가 짧아서 오르막길은 비호같이 달리는데 내리막길에서는 한계를 느낀다. 노루 한 마리가 새끼를 배어 막달에 산길을 오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느냐. 땀을 비 오듯 쏟으며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해 질 녘 집으로 돌아가는데, 총부리를 겨누어 새끼 밴 노루를 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노루의 목을 따서 피까지 팔아먹는 놈이니 백정 놈이나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건 당연히 나쁜 짓이지요. 새끼 밴 것을 알고 총을 쏘았다면 아무리 동물이지만 노루가 불쌍하지요”라고 했다.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맘이 조금 누그러지셨다.

“그런데 그 노루가 새끼 밴 것을 아저씨가 알았을까요”라는 내 질문에 “당연하지, 그 사정을 훤히 알고 잡은 거란다. 그 사람은 최고급 망원경으로 노루의 움직임을 훤히 보고 잡는단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성경책은 들고 다닌다고 비난을 하셨다. 초식동물들은 모두 양순하고 사람을 헤치지 않는데 그렇게 무참히 죽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었다. 한 마리 새의 둥지를 허는 것도 죄라고 하며 평범한 살생이 아니라는 것에 역정을 내셨다.

그 아저씨는 주일마다 성실하게 교회에 출석하시고, 술·담배도 안 하시고, 만날때마다 따뜻한 말로 아버지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다정한 사람이어서 나는 혼란스러웠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 맹사도 아저씨를 만났다고 했다. 아버지는 동물들도 먹여 살려야 할 새끼들이 있는 소중한 생명체라고 말했다. 아저씨에게 동물들을 우리가 지켜 주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맹사도 아저씨는 관계 회복이 되었고 그 언니들과는 예전보다 한층 더 친근한 관계가 되었다.

벌써 옛 추억이 되었지만 내가 고향을 떠난 후로 맹사도 아저씨의 가족은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수년이 지난 뒤였다. 그 언니가 캐나다에 살다가 잠깐 한국에 나왔는데 내게 연락을 하고 신혼 살림하던 우리 집을 찾아 주었다. 언니는 내가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하며 그렇게 될 것을 믿었다고 했다. 언니는 나를 붙들고 기도해 주었다. 나는 언니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잘 계시느냐, 혹 캐나다에서도 사냥을 하시느냐”라는 말에 언니는 깜짝 놀랐다. 넌 아직도 아저씨 노루 잡던 일을 기억하느냐며 그때 일이 미안하다고 했다. 우린 도란도란 옛일을 생각하며 오래오래 곰삭은 정담을 나누었다.

캐나다는 동물애호가들이 철통같이 지켜서 잘못하다가는 추방당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마약처럼 사냥을 즐겨서 자기들도 고통스러웠다고 하였다. 사냥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며 캐나다로 이민 간 것은 자신들에게도 큰 축복이었다고 했다.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와 땅에 육축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다스리라고 하셨다. 그렇다고 해서 동물을 마구잡이로 잡아들인다면 자연 세계의 질서는 무너지고 자연의 조화는 깨진다. 인간의 건강을 위해 정당하게 사육해서 사용하는 세상이 되어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가족도 20여 년 전에 한동안 캐나다에서 살았다. 그 사회에서 살면서 그들이 얼마나 자연을 사랑하고 소중히 가꾸는가를 직접 보며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나뭇가지 하나라도 맘대로 꺾을 수 없고 호수나 바다의 물고기도 함부로 잡지 못한다. 조개를 캐는 것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 6㎝나 7㎝의 크기를 준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한다. 특별히 산양이나 노루, 사슴들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 동물이기에 엄청 친근하게 느껴진다.

로키산맥을 따라 장시간 운행하는 길에 수차례 사슴들이 길가로 내려온다. 저들은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산속의 그루터기와 울퉁불퉁한 환경과 판이하게 다른 아스팔트 위에서 잠깐 휴식을 즐기기도 한다. 때론 10분이 지나도 일어서질 않는다. 그럴 경우 당연히 질주하던 모든 차량은 일제히 정지한다. 모두들 여행객이어서 초조하지 않게 그 시간을 즐기며 촬영들을 하곤 했다. 우리 가족이 여행하던 그때도 사슴 두세 마리는 마치 동물 세계의 모델로 선정된 듯이 아무도 잘라 주지 않은 긴 뿔을 왼편과 오른편으로 가누며 균형까지 잡고 있었다. 그 사슴들과 산양들의 모습은 잊히지 않는 캐나다의 아름다운 추억이다.

내 고향에서 어린 시절에 있었던 새끼 밴 노루가 안식처를 찾다가 당한 불행한 일 때문에 내 아버지는 얼마나 상심하고 괴로워하셨던가. 노루나 사슴이 그려진 사진만 보아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맹사도 아저씨는 그 후로 캐나다에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삶이 바뀌어 아름다운 노후를 보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과수원>

양지쪽 사과밭
봉지 속에 매달린 향기

곱게
흠집 없이 키워 내고픈
주인의 애타는 마음도
함께 싸매었겠지,

나는
가려 주며 덮어 주었을 뿐
맥박이 뛰고 혈액이 돌며
살아서 버텨온 것
저절로 되는 일이었을까

포근히
어루만지는 구름
깊은 잠 깨워 주는 바람
태양의 저 온화한 빛이 있어
영글어진 고마운 열매

◇김국에 원장은 서울 압구정 헤어포엠 대표로 국제미용기구(BCW) 명예회장이다. 문예지 ‘창조문예’(2009) ‘인간과 문학’(2018)을 통해 수필가, 시인으로 등단했다.

정리=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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