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덕질 중" 카메라 울렁증 극복 위한 그녀의 노력

이선필 2022. 11. 29.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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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세이레> 1인2역 소화한 배우 류아벨

[이선필 기자]

 
 배우 류아벨이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세이레>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 에스더블유엠피
 

4년 전 1인3역에 이어, 이번엔 1인2역이다. 배우 경력에서 한번 하기도 쉽지 않은 다역을 소화한 류아벨은 자신의 장기인 섬세한 연기를 영화 <세이레>에서 십분 발휘했다. 지난 28일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캐릭터의 '어사무사함'을 강조했다.

해당 작품은 이제 막 아이를 낳은 신혼인 우진(서현우)이 아내(심은우)의 만류에도 과거 연인 세영(류아벨)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며 벌어지는 기이한 일을 다루고 있다. '삼칠일'이라고도 알려진 세이레는 아이가 태어난 지 21일이 되기 전까지 외부인과 접촉을 멀리해야 한다는 우리 풍습을 뜻하는 말이다. 영화는 그걸 어기면서 은근하게 등장인물을 잠식해가는 불안감과 죄의식을 조준하고 있다.

치열했던 해석

우진의 연인 세영, 그리고 그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 예영을 두고 감독은 같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인 류아벨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가 지닌 신비로운 느낌을 캐릭터에 녹이고 싶었을 터. 언니의 장례를 치르던 중 우진을 대하는 예영은 마치 언니인 양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준의 아이를 임신했다가 잃은 후 결국 죽음을 택한 언니의 복수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인물을 표현하기 위해 류아벨은 시나리오에 나오진 않는 과거사를 제법 자세하게 만들어 놓았다.

"세영과 우진은 스무살이 되자마다 대학교 커플로 만난 사이였다. 10대에 입시라는 정해진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다가 20대가 되면 갑자기 어른 대우를 받잖나. 스스로 목표를 정해야 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그럴 때 만난 사이기에 서로 위로가 됐을 것이고, 계산적이지 않을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영은 세영과 달리 목표와 목적이 뚜렷한 사람이다. 우진 때문에 불안해 하는 모습을 봤기에 그를 안 좋은 쪽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현재 우진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건 상관없이 언니에게 마지막 예의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로 해석했다."
 
 영화 <세이레> 관련 이미지.
ⓒ 한국예술종합학교
  
과거 <샘>이라는 작품에서 엉뚱 발랄한 매력의 세 인물을 연기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결이었다. 겉모습을 달리해 가며 표현한 전작과 다르게 <세이레>에선 비슷한 외형에 서로 다른 내면을 표현해야 했다. 류아벨은 "하나의 캐릭터든 1인2역이든 늘 새로운 캐릭터를 잡아가는 건 어렵다"며 "저와 캐릭터의 관계, 그리고 그 캐릭터가 작품 안에서 마주치는 인물과의 관계를 계속 고민하면서 잡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극중 우진을 연기한 서현우와 호흡이 중요했다. 대학교 동문인 두 사람은 함께 단편에 출연하기도 했고, 오랜 인연이 있다. "현장서 정말 많이 얘기했다. 아이디어를 교환하기보단 일단 해보고 수정해가는 식이었다"며 류아벨은 "대사에 표현되지 않은 미묘한 분위기나 감정은 다 현장에서 이것저것 시도해가며 만들어진 것"이라 전했다.

여기에 더해 배우 본인이 실제로 경험한 여러 상갓집 분위기도 반영됐다. 그는 "한국은 물론이고 여러 나라를 보면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금기들이 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삼칠일까지 외부 접촉을 금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아이의 면역력이 약하니까 조심하라는 나름 과학적 의미도 있다"며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것도 넘어져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 것 같고. 생각해보면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고 그 의미를 풀어냈다.

다재다능함을 펼치다

전통 풍습에 기댄 심리 스릴러. 영화 <세이레>를 두고 내린 류아벨의 정의다. 인간 내면에 자리한 죄의식을 건드리고 자극하는 캐릭터를 표현한 그는 "예전 같았으면 이런 깊은 인물을 연기한 뒤 잔상이 오래 남아서 고생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며 "촬영 때 잘 몰입해서 에너지를 쏟고, 이후에 확실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았고, 서현우 선배처럼 좋은 배우분들이 계신 덕"이라 말했다.

겸손한 표현이었지만 그만큼 류아벨의 연기 내공도 깊어져서가 아니었을까. 2008년 데뷔 이후 <나의 아저씨>나 <멜로가 체질> 등 드라마를 비롯해 독립예술영화와 상업영화를 오가며 보폭을 확장 중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본의 아니게 연기 활동이 다소 잦아들면서 자연스럽게 그는 본인이 그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며 경험을 쌓아 왔다고 한다.

"배우 입장에선 작품이 없을 때 생각이 많아지곤 한다. 내가 배우가 아니었다면 뭘 했을까? 밑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연기를 택해서 내 재능을 썩히는 건 아닌지 싶기도 했다. 괜히 야식을 먹으며 살도 찌워보곤 했다(웃음). 어릴 때 돌아보면 곧잘 배우고 해내는 편이었는데 지금 뭘 잘하는지 누가 물어보면 딱히 잘하는 게 없는 것 같더라. 나름 틀을 깨려고 했는데 또다른 틀을 만들어 놓은 느낌이랄까."

잠시 작품 활동이 소강일 동안 류아벨은 서핑도 배웠고, 반려견을 맞이했다. 연기와 함께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음악감독 또한 놓지 않으며 나름 치열하게 공부 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찾아온 카메라 울렁증을 떨치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자연스럽게 자신을 좀 더 들여다 볼 여유가 생겼다.
 
 배우 류아벨이 지난 24일 개봉한 영화 <세이레>로 관객과 만나는 중이다.
ⓒ 에스더블유엠피
 
"핀란드 건축가 알바 알토가 그런 말을 했던 것 같다. '쓸데없는 건 사라지기 마련이다.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쓸데없는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바다를 가고 산을 가면 제가 고민했던 일부가 사라지더라. 역시 중요한 게 남는 거구나 싶었다. 자연은 사라지는 게 아닌 사시사철 변하는 것이잖나. 근데 제 고민은 사라지더라. 돌아보니 연기하고 싶은 마음, 현장을 좋아하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내가 못 가진 걸 아쉬워하지 말고, 가진 걸 좋아할 수 있는 거더라."

무엇을 가졌는지 알기 위해선 일단 부딪히고 해봐야 한다. 류아벨이 잠정 내린 결론이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연기도 잘할 수 있고, 좋은 동료도 만날 수 있겠더라"며 그는 "예전엔 좀 더 외적인 면에 신경 썼다면, 이젠 몸과 마음의 건강에 신경 써야할 것 같다. 모든 건 다 연결돼있으니 말이다"라고 다짐의 일부를 전했다.

열정의 경험주의자 류아벨은 앞으로 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당장 오는 12월 1일부터 열리는 서울독립영화제를 찾을 일이다. 황수빈 감독의 영화 <고양이 키스>에서 새로운 류아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누가 뭐래도 전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더라.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바쁠 때가 가장 건강할 때라고. '덕질이 인생을 행복하게 한다'는 말도 있잖나. 그런 의미에서 전 연기 덕질 중이다. 지금도 그 심오한 덕질의 세계에 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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