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후 3주, 장례식에 다녀온 아빠 때문에 일어난 일

장혜령 2022. 11. 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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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세이레>

[장혜령 기자]

 영화 <세이레> 스틸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길한 징조는 피할 길 없다. 그래서 흔히 미신이라 불리는 불운을 막기 위한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빨간펜으로 이름 쓰지 않기, 시험 날에는 미역국 먹지 않기, 수맥의 방향에 따라 잠자리 두기, 이사 날짜 고르기 등. 일상에 깊게 자리 잡은 미신은 지키지 않으면 찜찜한 의식이 되어버렸다.

이는 삶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탄생의 순간부터다. 부모는 아기에게 부정 타지 않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더한다. 태어나고 삼칠일. 그러니까, 세이레라 불리는 7일이 세 번 지날 때까지 최소한의 기간을 넘겨야 한다. 세이레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이며, 이 기간 동안 금줄을 쳐 가족이라도 출입을 철저히 삼간다. 부정한 일을 했거나 장소에 다녀왔다면 일절 출입하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금기를 깨고 장례식에 다녀온 아빠
  
 영화 <세이레>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초보 아빠 우진(서현우)은 태어난 지 21일이 되지 않은 아기 때문에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엄마 해미(심은우)는 젊은층 답지 않게 미신을 병적으로 믿어 우진을 귀찮게 한다. 회사 다니는 것도 바쁜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면 해야 할 일도 많고 지켜야 할 것도 많아 힘들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아이를 위해 다 그렇게 한다는 말을 위안 삼아 버티고 있었다.

요즘 우진은 부쩍 악몽에 시달린다. 오래 만났지만 결국 서로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헤어진 세영(류아벨)이 자꾸만 꿈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날도 흠뻑 땀에 젖을 만큼 이상한 꿈을 꾼 후였다. 몽롱한 분위기 속에 섬뜩한 문자 한 통을 받는다. 바로 세영의 부고 문자였다.

우진은 계속 고민한다. 아내가 반대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부고 문자의 주인공은 대학 동기라고 둘러댔던 헤어진 여자친구였다. 하지만 우진은 세영의 마지막 가는 길을 다녀와야 할 거란 생각이 커진다. 결국, 고민한 끝에 장례식을 다녀왔다. 이후 이상하리만큼 불길한 일들이 겹친다. 아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하고 모든 일이 꼬여가기만 한다. 꿈에서 깨면 끝나던 악몽이 현실에서 계속된다. 우진은 이제 도망갈 곳이 없다. 깰 수 없는 꿈이 현실을 잠식해 버린 거다. 작았던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토속 신앙과 서양 종교의 결합
  
 영화 <세이레>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세이레>는 민속신앙과 종교, 현대가 묘하게 얽혀 공포의 근원을 탐색한다. 출생과 죽음. 서로 닿지 않는 인간사의 간극을 메워주는 미스터리함이 가득하다. 박강 감독이 만들어 놓은 기이한 세계관에 초대받은 느낌이다. 영화의 출발은 장례식에서 지인 아기의 출생 소식을 접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출생을 축하하는 상황이었다. 누군가는 미안해하고 누군가는 축하해야 했던 아이러니가 영화의 시작이었다.

극단적인 두 요소는 심리적인 압박을 유발한다. 근원은 심리적인 불안함이다. 과거의 죄의식, 부모가 된 낯선 상황 등이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발현되고, 의식적으로 미신을 부여잡고 이를 잠재우려 발버둥 친다.

상징적인 사과, 무화과는 겉과 속이 다른 우진을 표현한 오브제다. 성경에서 원죄가 시작되는 것에 착안한 영리한 아이디어다. 따라서 우진이 자주 꾸는 꿈은 태몽일 수도 있고 흉몽일 수도 있다. 불신에서 비롯된 꺼림칙함이 점차 압박감으로 변해간다. 징크스는 깨지라고 있는 거지만 대부분 깨지 못하고 잠식되어 패배한다. 사람을 무너지게 만드는 것은 지키지 않은 약속이기 때문이다.

믿고 보는 세 배우의 연기
  
 영화 <세이레>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독특한 소재를 이끌어 가는 세 배우의 연기 궁합이 압권인 영화다. 현재 대중문화계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한 서현우가 영화의 모든 것을 담당한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무소불위 캐릭터를 선보이는 배우다.
이번에는 제약회사 직원으로 분해 잦은 외근과 스트레스, 아내의 출산으로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악몽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초보 아빠를 연기했다. 어리바리하지만 자상한 남편에서 금기를 어긴 후 서서히 변해가는 혼란은 관객까지도 쥐고 흔드는 구심점이 된다.
  
 영화 <세이레> 스틸컷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이에 맞서는 류아벨은 1인 2역을 소화해 묘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쌍둥이 자매 세영과 예영은 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으면서 경계가 모호하다. 대화하는 사람이 죽은 세영인지 살아 있는 예영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마치 빙의된 것처럼 불분명함은 <세이레>의 전반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갓 출산한 엄마 역의 심은우는 자식을 지키려는 강한 모성본능이 출산 후 집착으로 변해버린 상태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친정 엄마로부터 왔는데, 겉으로는 현대적인 것처럼 보이는 엄마지만 미신을 따르는 성향이 무서우리만큼 강력하다. 사랑을 넘어 신경질적으로 변해가는 광기가 오싹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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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장혜령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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