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변환기로, 후배에게 인생 '꿀팁'' 전한 중증 장애 선배...중등특수교사된 이 사람

김윤호 2022. 11. 29.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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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햔중 대구성보학교 특수교사. 사진 대구대

영국의 천재 물리학자인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는 2012 런던패럴림픽 개회식에서 글이 아닌 음성으로 "호기심을 가져라"는 주제로 연설했다. 중증 장애로 말을 못하지만, 미리 쓴 자신의 글을 음성변환기로 읽혀 전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중등특수교사된 장애인 김현중씨
자신이 2시간 동안 하고자 하는 말을 모두 글로 쓴 뒤 다시 음성변환기로 읽혀 장애 후배들에게 특강을 한 20대 중증 뇌병변장애인 '선배'가 있다. 중증 뇌병변장애는 과거 1급 장애로, 언어 장애뿐 아니라 신체 장애까지 있다. 글을 쓰기 위해 컴퓨터 자판을 치는 것도 쉽지 않다.

올 2월 대구시 공립 중등특수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김현중(24) 대구성보학교 중학부 교사가 주인공이다. 대구대 사범대학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한 그는 지난 17일 모교 장애 후배들에게 취업 관련 특강을 했다. 대구대 사범대학에는 장애 학생 52명이 재학 중이다.

김 교사는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경험, 현직교사로서의 근무 경험, 장애인으로서의 힘든 환경 등을 이야기하면서 후배들과 소통했다. 그는 "제 목소리가 아닌 음성변환기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긴장돼서 목소리가 떨릴 일은 없겠지만 지금 매우 떨리는 상황"이라며 강의를 시작했다.

김햔중 대구성보학교 특수교사. 사진 대구대


김 교사는 집념과 성실함이 자신의 '무기'였다고 했다. 그는 대학 시절, 잠을 쪼개가며 학과 공부에 매진했다. 주변에서 "거의 종일 책만 들여다본다"는 말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리포트 등 과제를 제출할 때도 일반 학생보다 컴퓨터 자판을 누르기가 불편해 세배 네배의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휠체어로 강의실 이쪽저쪽을 이동해야 해서 남보다 늘 30분 일찍 출발했다.

이런 집념과 성실함으로 그는 졸업 평균 학점 4.0 이상을 얻었다. 성적우수 장학금도 받았다. 장애인 인식개선 활동 등 다양한 교내·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학위수여식에선 대구대 총장 모범상을 받았다.

그는 임용시험을 준비하면서 1차 필기시험과 2차 면접시험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필기시험에서는 서술식 문제 답을 손 글씨로 써야 하고, 면접시험에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정해진 면접 시간 내에 말로 해야 해서다. 누군가 대신해서 자기 생각을 글로 써줄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임용시험에서 대필 지원을 허락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대구교육청서 대필 도움받아 시험 치러
주변 도움으로 서울 지역에서 대필 지원 사례가 한차례 있었다는 것을 찾아냈고, 결국 대구시교육청이 대필자를 구해준 덕분에 필기·면접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김 교사와 같은 중증 뇌병변장애인 임용시험 합격은 이례적이다. 그것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응시 한 번으로 합격한 사람은 더 찾기 어렵다.

그는 교사가 된 이후에도 성실한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다. 그는 "현재도 수업할 분량만큼 전날 글로 미리 다 작성해 학교에 가서 음성변환기로 틀어 수업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사는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볼 때 ‘저 사람이 선생님?’이란 의문을 가지지만, 전 스스로 ‘잘생긴 특수교사’라고 저 자신을 당당하게 소개한다"면서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저를 보면서 용기를 내어 후배 여러분도 자신의 꿈을 위해 도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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