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수 칼럼] 합리적 중도층을 양비론에 빠지게 하는 여야

신종수 입력 2022. 11. 29.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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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여야, 중도층 외면으로
지지율 30%대에 그쳐

각당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
억압… 생각 다르다고 상대
악마화하는 것은 폭력

거시구조 민주화 이어 인내심
갖고 상대 포용할 수 있도록
미시적 심리구조 민주화돼야
28일 광화문광장에서 ‘대∼한민국’ 함성이 울렸다. 주말마다 보수와 진보 단체가 대로를 마주 보며 상반된 성격의 집회를 여는 곳이다. 대립과 갈등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모처럼 같은 공간에서 이념과 진영을 떠나 같이 어울렸다는데서 위안을 얻는다. 이 자리에 여야 의원들도 참석해 같이 응원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거시적인 사회구조나 제도는 민주화됐다. 하지만 미시적인 심리구조는 아직 민주화되지 않은 것 같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증오하고 공격한다. 대화가 단절된 여야는 서로 상대를 적으로 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관저에서 여당 지도부만 초청해 만찬을 가졌다. 이에 앞서 윤핵관들을 부부동반으로 초청해 만찬회동도 했다고 한다. 관저로 여당 인사들을 초청해 소통하는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야당을 배제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어서 걱정된다. 대통령 취임 후 6개월 넘게 대통령과 야당 지도부가 만나지 않은 적이 없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에도 취임 후 두어달 만에 야당 지도부와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검찰 수사 대상이어서 초청하기 곤란하면 여야 원내지도부라도 불러서 예산안과 민생법안 처리에 협조해 달라고 당부하면 좋을 것이다. 여권의 야당에 대한 닥공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아마 내후년 총선 때까지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검찰 수사를 앞세운 대대적인 사정은 강성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다. 이에 맞서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야당 탄압으로 규정하고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취임한 지 6개월밖에 안 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광화문 집회에 의원들이 참석했다. 이 역시 강성 지지자들의 비위를 맞추려는 행태다. 이런 상황에서 중도층은 설 자리가 없다.

여야뿐만이 아니다. 각 당 내부도 마찬가지다. 다른 목소리를 내부총질이라고 낙인 찍으며 결코 용인하지 않는다. 여당은 이준석 전 대표를 기어이 찍어낸 바 있다. 요즘 대통령실 내에서는 대통령이 좋아할만한 보고만 한다고 한다. 대통령 성미에 맞지 않거나 화를 낼 것 같은 얘기는 참모들이 한마디도 꺼내지도 못하는 분위기가 됐다는 얘기가 들린다.

야당은 어떤가. 누가 이재명 대표를 조금이라도 비판하면 내부 총질을 한다며 개딸들이 좌표를 찍고 문자폭탄을 보낸다. 강성 지지자들은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검수완박 같은 정책을 관철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등 아예 권력화됐다. 여야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억압하는 명분은 똑같다. 단일대오를 형성해야지 왜 내부 총질을 하느냐는 것이다. 단일대오라면 나치나 파시스트, 북한이 최고일 것이다. 당초 누군가를 좋아하고 따르는 팬클럽 수준이었던 팬덤이 점점 공격 성향을 띠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괴물로 변했다.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행태도 서슴지 않는다. 과거 3김 시절에도 열성 지지자들은 있었지만 전체 국민 여론을 살피며 행동했다는 점에서 요즘 팬덤과는 차이가 있다.

여야가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다 보니 지지율이 각각 30%대에 머물고 있다. 합리적인 중도층은 양비론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야가 각기 강성 지지자들만 바라보며 패싸움을 벌이는데 양쪽을 다 나무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쪽 편을 들래야 들 수가 없다.

정치학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좌표찍기나 문자폭탄은 사사로이 폭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전체주의나 다름없다고 지적한다. 열정적이고 무례한 소수가 공론장을 독점하는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교육가이자 사회운동가 파커 J. 파머는 정치에서 상대방을 악마화하는 것을 폭력으로 규정한다. 민주주의는 자신이 잘 아는 사람들만큼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내 생각과 다른 낯선 사람을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끌어안으며 환대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의미다.

결국 민주주의는 제도를 넘어 인성으로 완성되는 것일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민주주의 각종 제도를 외우게 하기 이전에 성격이나 취미,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릴 줄 아는 교육과 훈련부터 시켜야할 것 같다.

신종수 편집인 js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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