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경의 에듀 서치] ‘대학입시 제도 개편’ 미룰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다

이도경 2022. 11. 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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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대학입시제도를 크게 흔들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으나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될 고교학점제를 뒷받침하기 위해선 대입체제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사진은 한 학부모가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강남대성학원에서 열린 대입 수능 가채점 및 입시설명회에서 대학 배치표를 확인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학입시 제도를 크게 흔들지 않고 ‘미세조정’만 하겠다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방향성은 공감할 만합니다. 그간 그럴싸한 명분과 함께 추진했던 대입제도 변화는 학교 현장에 혼란만 부추기고 학생들의 고통을 키웠다는 평가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잦은 대입제도 변경은 결과적으로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부담 가중으로 이어졌습니다.

대입제도가 사교육 부담을 가중시키는 과정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정부가 대입제도를 바꾸겠다고 운을 띄우고는 여론을 살핍니다. 학교 현장은 뒤숭숭해집니다. 정부가 대입제도 변경을 공식화하면 사교육은 ‘불안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가동합니다. 불안감은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죠.

발 빠르게 새 대입제도에 적응하는 사교육과 달리 공교육의 대응은 느립니다. 새 대입제도에 대한 경쟁력에서 사교육이 공교육을 압도하는 시기가 시작됩니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에 지갑을 열게 됩니다. 이런 시기가 얼마간 계속됩니다. 그래도 한국의 교사들은 엘리트 집단입니다. 공교육도 조금씩 새 대입제도에 적응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계층 사다리를 복원하자” “학생과 학부모 부담을 줄이자” 등의 구호를 내세워 다시 대입제도 변경을 들고 나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도입된 지난 30년 동안 수능 제도 자체에 대한 변화는 10여 차례 있었습니다. 수시·정시 비중 변화 같은 대입 전반의 변화를 포함하면 변동성은 더 큽니다. 대략 2~3년마다 대입제도 변경이 있었으며 고1~3학년이 각기 다른 대입제도를 적용받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발생했었습니다. 특히 문재인정부 초기 대입제도의 혼란은 사교육비를 급증시켰습니다. 해마다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대입제도의 잦은 혼선 때문에 사교육비가 늘었다고 실토하기도 했죠.

이 부총리의 미세조정 방침은 문재인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는 뜻으로 읽힙니다. 그는 지난 7일 취임식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정부에서 수시·정시 비중을 놓고 논쟁이 벌어졌을 때 참담했다. 현장에서 수업이 안 바뀌었기 때문에 답 없는 논쟁을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옛날에 입시를 과감하게 바꾸자는 논의를 보면 그걸 통해서 잠자는 교실을 깨우겠다고 했지만 힘들어진 건 학부모와 학생이었다”고도 했습니다. 일단 인공지능(AI) 등 에듀테크를 공교육에 적극 들여와 교실 수업을 혁신하는 데 주력하고 대입제도 변경 논의는 미뤄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를 기조로 잡은 이상 대입제도 변경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고교학점제는 고교생이 대학생처럼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수업을 골라듣고 학점을 누적해 졸업하는 제도입니다. 고교 단계에서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고교 내신성적 산출 방식일 것입니다. 고1까지 배우는 공통과정은 기존처럼 상대평가를 통해 석차등급을 산출하되 2~3학년은 성취평가(내신 절대평가)로 전환될 예정입니다. 성취평가는 고교학점제의 필수 요소 중 하나입니다. 내신 성적을 기존대로 상대평가로 유지할 경우 학점 따기 좋은 과목으로 쏠림 현장이 나타나고, 소인수 과목의 경우 성적 산출이 어려워 과목 개설 자체가 불가능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입에서 고교 내신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파문의 후속 조치로 발표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방안’(2019년 11월)으로 학생부의 비교과영역이 대폭 축소되고 자기소개서 등이 사라졌습니다. 학부모가 끼치는 영향력을 줄이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대학에 어필할 수 있는 경로가 좁아지게 됐습니다. 내신 성적의 중요성이 한층 커진 것입니다. 학교생활기록부와 수능이라는 대학 입시의 두 축 가운데 한 축에서 이미 큰 변화가 예고된 셈입니다.

고교 내신 산출 방식은 고교체제 개편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이 부총리는 외국어고와 자사고를 유지할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느 학교 형태든 장·단점이 있고 학교는 다양하면 좋기 때문에 외고도 폐지할 이유가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자사고와 외고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고교 내신 성적 산출 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뀌게 되면 이들 학교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고교 내신 성적에서 밀릴까봐 이들 학교에 지원하는 걸 주저할 이유가 사라지는 겁니다. 입시 명문고를 향한 열망은 더 뜨거워질 것이고 그러면 중학교 이하 단계에서 사교육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부총리가 ‘대입은 되도록 건드리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서 이명박정부 5년 내내 교육 정책을 담당하고 이후에도 교육 관련 활동을 지속해왔던 그의 노련함이 엿보입니다. 그의 소신은 ‘수능 폐지’에 가까웠지만 이를 꾹 누르고 학교 현장의 안정을 택했습니다.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입니다. 다만 고교학점제에도 버릴 수 없는 교육적 가치가 담겨 있습니다. 잠자는 교실을 깨우는 건 5지 선다형 수능도 AI 튜터도 아닙니다. 학생 개인의 꿈을 수업이 뒷받침해줄 때 수업은 활기를 띨 것이고 사교육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미 대다수 고교에서 고교학점제가 시범 운영되고 있습니다. 학생 맞춤형 교육과정을 운영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이를 뒷받침해주는 대입제도 변화는 잠시 미룰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어 보입니다. 새 대입제도는 내년 상반기 중 모습을 드러낼 예정입니다. 과연 ‘이주호 시즌 2’에선 고교학점제라는 큰 변화와 대입 제도의 안정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묘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지금은 걱정이 큰 것도 사실입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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