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병원 돌아도 원인 몰랐다…5년간 환자 절반 죽은 '슬픈 암'

신성식 2022. 11. 29.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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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호 국립암센터 양성자치료센터 전문의가 구강암 환자에게 양성자 치료를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사진 국립암센터


충북에 사는 신모(55)씨는 지난해 초 허벅지 통증 때문에 정형외과를 찾았다. 허리 때문이라고 여겨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종합병원으로 옮겨 6개월간 스테로이드 약물 시술을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병원 측이 허리 디스크 수술을 권고해 이를 거부하고 다른 데로 옮겼다. 거기서도 허리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해 항생제 주사를 맞았다. 그새 허벅지는 계속 부풀어 올랐고, 몸무게가 17㎏ 빠졌다. 다른 종합병원에서는 퇴행성 디스크 진단이 나왔다. 이어 류머티스 내과로 옮겼고, 의료진에게 초음파 검사를 요청했다. 그제야 "육종암이 의심되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국립암센터에서 육종암 진단이 나왔다. 지난 3월 50㎝ 크기의 종양을 제거했고, 방사선·항암제 치료를 받았다. 지금은 회복 중이다. 육종암은 뼈와 이를 둘러싼 근육·인대·지방·힘줄·혈관 등에 생긴 종양을 말한다.

신씨는 육종암 진단을 받을 때까지 1년여 동안 6개 넘는 병원에 다녔다. 일종의 '진단 난민'이었다. 28일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2019년 3만 443명의 희귀암 환자가 발생했다. 그해 전체 암 환자의 12%이다. 김준혁 국립암센터 희귀암연구사업단장(정형외과 전문의)은 "위·대장·폐 등 환자가 많은 암과 달리 희귀암은 고아 암이라고도 한다. 관심과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슬픈 암"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는 희귀암의 정의조차 없다. '인구 10만명당 6명 미만'이라는 유럽(RARECAREnet) 기준을 갖다 쓴다. 이 기준에 따르면 61개 암 중 44개가 해당한다.

2019년 가장 드문 부위에 생긴 암이 태반암이다. 31명 진단됐다. 입술(47명), 카포시 육종(70명), 음경(76명), 질(87명), 눈(99명) 등은 100명이 안 된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많은 희귀암이 식도암이다. 2019년 2870명이 진단을 받았다. 골수성백혈병(2604명), 뇌 및 중추신경계(1981명) 등이 뒤를 잇는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환자가 적으니 전문의가 적다. 의사들도 잘 모른다. 국립암센터의 희귀암클리닉 같은 전문 의료기관도 드물다. 무슨 병인지 몰라 이곳저곳을 헤맨다. 환자가 적으니 제약회사가 적극적으로 약을 개발하지 않는다. 임상시험을 하려고 해도 환자를 모으기 힘들다. 김준혁 단장은 "위·폐 등의 호발암은 표적치료나 면역항암치료가 표준 요법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지만 희귀암은 치료 근거를 제시할 연구에 시간이 오래 걸려 임상시험조차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자는 병원을 전전하느라 돈이 많이 들고, 정보를 구하기 어렵다. 희귀병은 그나마 질병관리청이 희귀질환 헬프라인을 만들어 약·의료진 정보 등을 제공한다. 희귀암 환자는 이런 게 없어서 신씨처럼 오진을 받아 시간을 허비하고 병을 키운다. 국립암센터에 희귀암연구사업단이 생긴 것도 지난해 초이다. 그러다 보니 희귀암의 5년 생존율이 50.4%(전체는 70.7%)로 낮다.

운이 좋은 경우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최모(55·여)씨는 혓바늘과 입안 상처가 자주 생기고 아물지 않아 입 안이 늘 헐어있었다. 그러다 치과 검진을 받다 구강외과 의사가 큰 병원 진단을 요청했고,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교수가 조직검사를 해서 암을 찾아냈다. 설암(혀암)이었다. 국립암센터로 옮겨 2020년 8월 혀의 3분의 1을 잘라냈다. 혀의 절반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시술과 훈련으로 발음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 최씨는 "부모님이 암을 앓지 않았고, 담배를 피운 적도 없는데 설암이 생겼다"며 "드문 암을 찾아냈으니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준혁 단장은 "일반인이 쉽게 찾을 수 있는 의료진·치료정보 시스템을 조속히 구축하고, 올바른 정보 전달과 효율적인 환자 이송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희귀암 치료제 개발 지원, 치료비 보장 강화 등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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