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지만 마지막까지 잘했으면"...비 내리는 광화문광장 지킨 붉은악마
광화문광장이 아쉬움의 한숨소리로 뒤덮였다. 29일 자정 대한민국 대 가나의 카타르월드컵 조별 예선 2차전 경기가 끝나면서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응원 나온 2500여명(경찰 추산)의 시민은 빗물과 눈물에 젖은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우비 안에 빨간 태극전사 유니폼을 입고 붉은악마 LED 머리띠를 한 시민들은 다음 경기를 기약하며 자리를 떠났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가나에 3대2로 석패했다.
외국인들도 오늘은 ‘붉은악마’
이날 광화문광장엔 우비와 형광 조끼를 입고 경광봉을 든 수많은 안전 요원과 경찰이 배치됐다. 광장 도로변과 인도를 따라 펜스가 설치됐다. 곳곳에 세워진 펜스에는 ‘안전한 거리응원!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갑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우루과이전 때처럼 이날도 경찰과 주최 측은 안전 펜스로 응원 구역을 나눴다. 세종문화회관 버스 정류소는 임시 폐쇄됐다. 광장 옆 세종문화회관 인근에는 10여명의 상인이 돗자리를 펴고 붉은악마 LED 머리띠, 미니 태극기, 우비, 일회용 방석 등을 팔면서 손님을 끌었다.
응원 열기는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이날 서울에는 최대 80㎜ 강수량의 비바람이 예보됐지만, 시민들은 우비와 붉은 옷을 함께 갖춰 입은 채 이른 오후부터 광화문 광장에 몰렸다. 수능을 끝내고 친구 3명과 함께 광장을 찾았다는 이지민(18‧경기 안양)씨는 “‘흠뻑쇼’하겠다는 마음으로 ‘오히려 좋아’하면서 왔다”며 “축구를 많이 좋아해 오후 3시부터 길을 나섰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김동학씨는 온몸을 꽃으로 치장하고 얼굴에도 화려하게 분칠했다. 김씨는 “축구를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다”며 “응원으로 (한국팀에) 보탬이 되고 싶어 거리응원에 나왔다”고 말했다.
거리응원을 하기 위해 서울 외 지역에서 먼 걸음을 한 시민들도 있었다. 양은총(31‧제주 제주시)씨는 “서울 구경도 하고 응원도 하려고 휴가 내서 왔다”며 “내일 아침 7시 반 비행기로 내려가 출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권석기(47‧대구 달서구)씨는 “대구에서 경기 보러 여기(광화문광장)까지 왔다”며 “우루과이전에서 매우 멋진 경기를 보여줬기 때문에 오늘 좋은 성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은 외국인들도 붉은악마가 돼 응원에 동참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줄리아(21)씨는 “거리응원의 에너지가 너무 좋다”며 “옆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는 게 재밌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일본인 후쿠다 요키시(29)씨는 “축구를 좋아해서 혼자 응원 나왔다”며 “손흥민 선수가 잘해서 한국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빗속에서 쓰레기 주워 담는 시민의식도
최후의 순간까지 이어진 혈투에 마음 졸이던 시민들은 경기가 끝나자 허탈한 표정으로 객석을 빠져나갔다. 한 여학생은 “으앙!”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정지은(23‧서울 관악구)씨는 “솔직히 이길 줄 알았는데 졌다”며 “마지막까지 정말 열심히 해서 아쉽지만, 제일 힘든 건 선수들일테니 마지막 경기까지 잘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최 측은 “아쉽지만 끝난 게 아니다. 12월 3일에 다시 한 번 모이자”는 내용을 방송하며 풀죽은 응원객의 마음을 다독였다.
광장에 모였던 인파들은 경찰과 안전요원의 통제 속에서 사고 없이 흩어졌다. 안전관리 인력들은 “천천히 나가라” “이쪽으로 오시라”라고 안내하며 시민들의 귀가길을 안내했다. 바닥 곳곳에 생수병, 태극기, 우비 등 쓰레기가 마구 버려져 있는 모습에 일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쓰레기를 봉투에 주워 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날 경찰은 지난 24일 우루과이전 때보다 기동대 4개 부대(230여명)를 추가로 배치했다. 경찰은 이날 경찰관 150명과 기동대 12개 부대(700여명), 경찰특공대 20여명 등을 투입해 안전사고를 대비했다. 서울소방재난본부는 소방공무원 54명과 소방차 9대를 광화문광장 일대에 배치했고, 서울시도 276명을 투입해 안전 관리에 나섰다. 이날 광장에 모인 인원은 약 2500명으로, 지난 우루과이전에서 2만6000명(주최측 추산) 모인 것에 비해 십분의 일 가량의 수준이었다.
김남영·최모란 기자 kim.namyoung3@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53억 펜트하우스 주인 장윤정, 숙박료 내야 '한강' 본다…왜 | 중앙일보
- 현빈·손예진 결혼 8개월만에 득남…"산모·아이 모두 건강" | 중앙일보
- ‘윤석열 사단’ 모태 된 사진 1장…그들에 얽힌 5년전 이야기 | 중앙일보
- 한국이 포르투갈 이겨도...16강 경우의 수는 복잡해졌다 | 중앙일보
-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 없어요"…'100만 팔로워' 조규성 쿨했다 | 중앙일보
- 경기 끝났는데, 벤투 퇴장시켰다…외신들도 주목한 그 순간 | 중앙일보
- 두드려도 두드려도…끝내 안 터진 '세번째 골' | 중앙일보
- 강원 전방 경계근무 서던 이병, 총상 입고 숨진채 발견 | 중앙일보
- 3년전엔 손흥민, 이번엔 벤투…또 그 심판 '레드카드 악연' | 중앙일보
- "내가 뭘 본거지?"…코에 여성용품 꽂고 뛴 캐나다 '노장의 투혼'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