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유소엔 휘발유 재고 없음" 이 안내문 붙기 시작했다
28일 오후 국내 한 정유사의 수도권 주유소 3곳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영업을 멈췄다. 휘발유와 경유 재고가 바닥나면서다. 본사에서 긴급 물량을 배차해 간신히 영업을 재개했지만 뒤이어 전국 곳곳에서 “기름 재고가 없다”는 연락이 올라왔다.
이날 저녁 서울 서대문구의 한 주유소에서도 “오늘 밤을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며 다급하게 기름을 요청해왔다. 해당 정유사 관계자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오늘은 겨우 막았지만 2~3일이 지나면 긴급 배차를 해도 제때 공급이 어려울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르면 내일부터 문 닫는 주유소가 속출할 것이라는 경고 목소리다.
이날로 화물연대 파업이 닷새째에 접어들면서 ‘주유소 기름 대란’ 우려가 곳곳에서 현실화하고 있다. 수도권과 일부 지방의 주유소를 중심으로 “이번 주말을 넘기면 기름이 바닥나는 곳이 속출할 수 있다”며 사실상 비상 영업 체제로 돌입하고 있다.
정유 업계 등에 따르면 탱크로리 운전기사의 화물연대 가입률은 전국적으로 평균 7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6월 총파업 때와 달리 탱크로리 기사들이 이번 파업에 대거 동참하면서 일선 주유소에 비상이 걸렸다.
기름 판매량이 많은 고속도로 휴게소나 서울 시내 일부 주유소는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영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영동고속도로 등 일부 휴게소 주유소는 지난 주말부터 경유 재고 부족으로 대당 3만원 이하 주유만 허용하는 등 판매 제한에 들어갔다. 이날부터는 서울 시내에서도 휘발유 재고가 바닥나면서 영업을 멈춘 곳이 나왔다.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를 찾은 고객들은 빈손으로 차량을 돌렸다.
현장에서는 탱크로리 운송 외에 별다른 해법이 없는 주유소 특성상 파업 1주일 전후를 최대 고비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과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4대 정유사들은 모두 “파업에 대비해 물량을 사전에 최대한 풀어놨지만 대부분의 주유소는 2주일이 한계”라는 입장이다.
기름 대란으로 최근 겨우 가격 안정세를 찾아가는 휘발유와 경유 수급이 다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경유 가격은 최근 7주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휘발유 가격 역시 11주 연속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 마포구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한 업주는 “고객들이 파업 장기화 우려에 주유량을 늘리면서 예상보다 빨리 재고가 떨어질 것 같다”면서 “사태가 장기화하면 대체 수송 차량을 찾아야 하는데 탱크로리를 구하더라도 ‘부르는 게 값’이 될 수 있어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대중교통 운행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액화천연가스(LNG)나 전기차량을 사용하는 시내버스와 달리 서울 시내 마을버스는 아직 경유 차량이 상당수 남아 있다. 화물연대는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소방서와 군납으로 들어가는 기름을 제외한 모든 정유기지를 틀어막겠다”며 엄포를 놓은 바 있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 이후 ‘정유 업계 비상상황반’을 운영하면서 탱크로리 파업 참여 현황과 정유 공장·저유소 등 주요 거점별 입·출하 현황, 주유소 재고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부터 점차 재고 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재고가 부족한 주유소에 탱크로리를 우선 배차하는 등 파업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화물연대와 정부는 이날 처음으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으나 서로 입장 차만 확인한 채 협상이 결렬됐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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