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영웅’의 강한 한 방…“폭력 멈추고픈 이들의 폭력이라 통했다”

남수현 2022. 11. 2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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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8부작)은 공부 밖에 모르던 모범생 연시은(박지훈)이 학교 안팎의 폭력에 대항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 학원 액션물이다. 사진 웨이브


약할 줄 알았으나 강했다. 지난 18일 공개된 웨이브 오리지널 시리즈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이 각종 악조건을 뚫고 올 하반기 OTT(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오리지널 시리즈 가운데 최대 화제작 중 하나로 떠올랐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약한영웅’은 공부밖에 모르던 고등학생 연시은(박지훈)이 처음으로 사귄 친구 안수호(최현욱), 오범석(홍경)과 함께 학교 안팎의 폭력에 맞서나가는 과정을 그린 학원 액션물이다.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3회까지 공개됐을 때부터 입소문이 나더니, 8부작 전체 공개 직후 단숨에 웨이브 신규 유료 가입자 견인 1위에 올랐다. OTT 통합검색 사이트 키노라이츠가 집계한 11월 3주차(19~25일) 랭킹에서 쟁쟁한 지상파·케이블 드라마를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라쿠텐 비키(Rakuten ViKi) 등 해외 플랫폼에서도 평점 9.8점을 기록(28일 기준)하는 등 국내외에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웨이브 '약한영웅 Class 1' 포스터. "이기는 것보다 지키고 싶었다"는 문구처럼 극중 세 주인공은 자신과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폭력에 맞서기 시작한다. 사진 웨이브


‘약한영웅’의 성공은 감독과 배우 모두 신인인 데다 오리지널 시리즈 중에는 뚜렷한 흥행작이 없던 웨이브 공개라는 점,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등급 등 여러 불리한 요소를 넘어선 성과이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누구도 대박을 예측하지 못했던 ‘약한영웅’은 어떻게 제대로 터진 ‘한 방’이 될 수 있었을까.


자극적인 액션 뒤 인물들의 감정선


‘학원 액션물’이라는 장르에 으레 기대되는 자극은 충실히 보여주되, 폭력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선을 세밀하게 채워 넣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학폭’(학교폭력)은 그동안 미디어에서 숱하게 다뤄진 소재지만, ‘약한영웅’의 세 주인공이 학폭에 얽히게 되는 과정은 진부하기보다는 지극히 고유한 동시에 절박하게 다가온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시은은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공부에만 몰두하는 자발적 아웃사이더다. 그런 시은에게 끊임없이 시비를 걸어오는 일진 무리는 그 무엇보다 거슬리는 방해 요소다. 그렇기에 이들의 괴롭힘 때문에 모의고사를 망친 시은이 마침내 분노를 터뜨리는 장면은 잔인하지만 통쾌하게 느껴진다. 더구나 약골로만 보이던 시은이 “힘은 가속도와 질량에 비례한다”와 같은 물리 법칙을 읊조리며 ‘지략’으로 일진들을 제압하는 모습은 기존 학원 액션물과의 차별점인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은을 돕다가 폭력에 휘말리게 되는 수호와 범석도 제각각 사연이 가득한 인물들이다. 싸움 실력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지만,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수호에게는 학교생활보다 배달 알바 등 생계를 위한 활동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수호의 눈에 악에 받쳐 싸우는 시은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서야 할 땐 나서는’ 의리파 기질의 수호는 점점 깊숙하게 폭력에 개입하게 된다.

전학 온 범석은 ‘국회의원 아들’이라는 수식어로 유명하지만, 남모를 이유로 늘 주눅 들어있다. 전 학교에서 학폭에 시달렸던 범석은 폭력에 대항하는 시은·수호를 동경하는 마음에 이들과 친구가 되지만, 뿌리 깊은 열등감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세 친구 모두 어른들의 무관심 혹은 학대 속에 있다는 점에서 ‘약한영웅’은 단순한 액션물에 그치는 대신 폭력의 뿌리를 날카롭게 고발하는 미덕도 확보한다.

웨이브 '약한영웅 Class 1' 스틸컷. 사진 웨이브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액션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자극적이고 끔찍하긴 하지만, 주인공들은 아무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 혹은 친구를 지키기 위해 한 방을 날릴 수밖에 없는 처지”라며 “각 인물이 처한 입장과 내면의 감정을 충분히 담아냄으로써 아이들의 폭력 너머에 있는 어른들의 잘못 등을 고민하게 만드는 지점이 돋보인다”고 말했다.


갈수록 센 적수 등장하는 이야기, 신예들의 호연


인물들의 사연과 감정선을 섬세하게 쫓아가는 구성은 후반부까지 극의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전개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함께라면 더는 두려울 게 없어 보이던 세 친구의 우정은 각자 처한 상황에서 비롯된 미묘한 입장 차이와 오해로 인해 뒤틀리게 되고, 이 갈등은 이들을 더욱 거대한 폭력 앞에 데려다 놓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더 이상 어떤 갈등이 있을까 생각이 드는 시점에 아이들 관계 내부의 문제가 터지면서 새롭게 몰입감이 형성된다”며 “점점 더 센 적수를 세우는 식으로 이야기를 잘 쌓아나갔다”고 분석했다.

혼란스럽고 예민한 10대 캐릭터들을 살아 숨 쉬는 인물로 느끼게끔 표현해낸 신예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이 쏟아지는 부분이다. “내 마음속에 저장” 유행어를 외치며 윙크를 날리던 박지훈은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는 완전히 지우고 공허한 눈빛, 시종일관 굽은 어깨 등의 디테일로 극의 주축을 담당하는 시은을 구현해냈다. 특유의 능글거림으로 극의 긴장감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수호 역의 최현욱, 하얗고 여린 체구 속에 들끓는 열망을 감춘 범석 역의 홍경 등도 제몫 이상의 연기를 해내며 어우러졌다. 이외에도 가출팸의 일원을 연기한 이연·신승호 등의 배우들도 많지 않은 분량 속에도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의 세 주인공(위)과 유수민 감독까지 함께 한 사진(아래). 사진 웨이브


지난해 화제작 ‘D.P.’에서 군대 내 폭력을 그렸던 한준희 감독과, 한 감독이 “10대의 정서를 누구보다 세심하게 그려낼 감독”이라고 생각해 연출을 맡긴 신예 유수민 감독이 의기투합해 빚어낸 결과다. 배우 최현욱은 유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대해 “큰 틀은 물론 세세한 부분까지 디렉팅을 해주면서도 배우들이 즐겁게 놀게 해줬다”며 “그 덕분에 현장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와 즉흥적인 제스처가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신인 배우들이 이렇게 극에 잘 녹아든 것은 연출의 연기 지도가 굉장히 잘 됐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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