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편견을 버려야 넓게 볼 수 있다
[전병호 기자]
내 마음에 큰 창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진짜 세상을 볼 수 없다. 자신이 가진 창의 크기가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세상 크기이기 때문이다. 균형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편견(偏見)'이다.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려면 먼저 관점을 바꿔야 한다.
▲ 키르기스스탄 글자들 처음보는 문자라 한 글자도 못 읽었다. |
ⓒ 전병호 |
영어는 국제 공용어?
친구가 키르기스스탄이라는 나라로 여행을 가자고 했을 때 '거기 공산국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트라우마 때문에 생긴 편견이었다. 더군다나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영어권에서 살던 내가 러시아권 나라는 처음이었으므로 언어에 대한 걱정도 밀고 들어왔다.
실제로 마나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생경한 글자들로 가득 찬 안내판들은 내 눈을 흔들리게 했다. 눈에 들어온 글자들은 영어처럼 생겼으나 도저히 읽어 낼 수가 없었다. 내게는 그냥 글씨 그림으로 보였다. 돌아와 찾아보니 그 그림 같은 글자들은 키릴 문자라고 하는 키르기스 문자였다.
덧붙여 설명하면 '키르기스 문자는 튀르크 룰 문자에서 아랍문자로, 아랍문자에서 라틴문자로 다시 라틴문자에서 키릴 문자로 변모하였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키르기스 문자는 이 키릴 문자에 일부 러시아어를 차용했기 때문에 이방인 눈에는 어느 것이 키르기스 문자이고 어느 것이 러시아 문자인지 전혀 구분할 수가 없었다.
문자를 읽을 수 없는 불편함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우리 동네 고추골댁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고추골댁 아주머니는 장에 가면 항상 동네 다른 사람들을 꼭 붙어 다녀야 했는데 혼자 서는 절대 다니지 않는다고 하였다.
▲ 거리의 간판들 처음 보는 글자라 그저 글씨 그림으로 보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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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호텔에 도착해 TV를 켰다. 나는 여행지에서 그 지역 문화(언어, 뉴스, 옷차림 등)를 알고 싶어 못 알아듣더라도 그 나라 방송부터 찾아보는 습관이 있다. 뉴스인지 어떤 대담 프로인지 모르겠으나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이 외계어 수준으로 들렸다.
'바르미니 쉬모르까르까르~ 티키 비쉬 비슈 가르기로스트마까~……'
▲ 말타기 체험 호객꾼들 관광객이 보이면 소년들이 우르르 말타고 달려와 말타기 체험을 권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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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의 삶을 이해해야 이 나라가 보인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같은 문자, 같은 언어, 대부분 생김새가 비슷한 사람끼리 살아왔으므로 다른 나라에 가도 그 나라 사람들은 같은 민족으로 모두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에 가면 그런 생각이 바로 깨진다.
동양인 모습부터 금발의 서양인 모습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다. 키르기스스탄은 키르기스인(73.6%), 우즈벡인(14.8%), 러시아인(5.3%), 둥간인(1.1%), 위구르인(0.9%), 타지크족 (0.9%), 터키인(0.7%), 카자흐인(0.6%), 고려인(0.3%) 등이 다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엘레첵을 쓴 키르기스스탄 아주머니들 키르기스스탄의 아부머니(결혼한 여자)들은 대부분 두건 같이 생긴 엘레첵을 쓰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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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대부분 이슬람교(82.7%)를 믿고 있으며 일부는 러시아 정교(16%)를 믿는다. 통계에서 보듯이 이 나라는 이슬람 국가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내가 생각했던 이슬람 사람들 복식이 아니었다. 이슬람 국가라고 하면 대부분 여성들은 히잡이나 부르카, 차도르 같은 옷을 입고 다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 우마 우선 도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불쑥불쑥 소,양,말들이 끼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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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글에서도 말했듯이 이 나라가 유목민의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재미있는 일을 고속도로에서 겪었다. 비슈케크에서 첫날밤을 묵고 이식쿨 호수 근처 유르트 숙소로 가는 길이었다. 고속도로라 하는데 톨게이트나 어떤 표식도 없이 황량한 벌판에 도로만 뻗어 있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진 초원이라고 하기엔 황량한 넓은 벌판과 그 너머 수 없는 민둥산 모습들을 넋 놓고 보며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가 섰다. 분명 고속도로라고 했는데 난데없이 도로 한가운데 말과 양떼들이 걷고 있었다. 달리던 차들은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속도를 줄여 멈췄다. 누구 하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마디로 이 나라는 차보다 양, 말들이 더 우선시 되는 우마우선 도로인 나라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녁뉴스에 나올 만한 상황으로 소방차나 경찰차 수십대가 출동했을 터인데 고속도로 위를 유유히 건너는 양떼들을 보니 딴 세상 같았다. 여행은 낯섦이 주는 떨림과 호기심이라는 말이 가슴속에 팍팍 꽂혔다.
그립다, 모든 시간들이...
짧은 여행이었지만 키르기스스탄은 처음 가본 러시아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이슬람 국가였고, 처음 가본 유목민의 나라였다. 여행은 내가 알던 세상에서 더 넓은 세상으로 인도하는 일이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여행의 순간순간 모든 것들이 나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 레뾰쉬카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의 주식으로 먹는 빵 레뾰쉬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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