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의 재키 로빈슨 '리 엘더' 타계 1주기
숙소 두 곳 빌려 번갈아 사용, 상시 경호원 2명과 동행
[아시아경제 최태원 기자] 재키 로빈슨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최초의 흑인 선수다. 1947년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한 후 온몸으로 인종 차별의 벽을 허문 그의 스토리는 메이저리그의 소중한 역사로 기록돼 있다.
미국 프로골프(PGA) 투어의 인종 차별의 벽이 깨진 것은 이보다 28년이나 지나서였다.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토너먼트가 처음으로 흑인 선수 참가가 이뤄진 것은 1975년이었다. 중심에는 한 흑인 선수의 용기가 있었다. 수많은 살해 협박에도 골프계 인종 차별을 온몸으로 이겨낸 골프 선수. 바로 리 엘더(미국) 이야기다.
지난해 11월28일 향년 87세로 타계한 리 엘더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삶을 조명해본다.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골프가 백인만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20세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유독 유색인종에 배타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대회가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GC는 1990년이 돼서야 흑인 회원을 허용하는 등 차별의 최전선에 서 있는 골프장이었다. 설립자인 바비 존스는 “골프 선수는 백인이어야 하며 캐디는 흑인이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리 엘더는 PGA 투어에서 통산 4승과 시니어 투어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8승 등 통산 12승의 승수를 올린 PGA 투어 전설 중 하나다. 그는 1974년 몬샌토 오픈 우승자 자격으로 따낸 출전권으로 1975년 마스터스 토너먼트 참가 후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모두 여섯 번 마스터스 토너먼트에 출전했다. 100여 차례의 살해 협박에 두 개의 숙소를 예약하고, 상시 두명의 경호원을 대동하는 등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도전이었다.
1934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태어난 리 엘더는 10살이 되기 전 양친 모두 별세하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렇게 12살부터 이모와 함께 살던 그는 프로샵과 라커룸 등에서 일하다 16살부터 캐디 활동하기 시작한다.
캐디로 활동하던 와중 25살에 징집된 군대에서 그는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골프 사랑이 유별난 부대 지휘관에 의해 골프를 칠 수 있는 부대로 배치되는 행운을 얻은 것이다.
1961년 제대한 그는 당시 백인들만 가입 가능했던 PGA가 아닌 흑인 골프 선수들을 위한 UGA( United Golf Association)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골프 선수의 삶을 시작한다.
이후 그의 선수로서의 삶은 생명을 건 도박이었다.
리 엘더는 생전 한 인터뷰를 보면 마스터스 토너먼트 출전 계기가 된 1974년 4월에 열린 몬샌토 오픈 우승 당시 급박한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는 몬샌토 오픈 우승 후 “홀아웃을 했더니 PGA투어의 토너먼트 디렉터였던 잭 투트힐이 내게 경찰차로 가라고 했다”라며 “FBI 출신인 잭은 오전 내내 살해 협박이 줄을 이었고 시상식을 실내인 클럽하우스에서 하는 게 안전할 거라고 설명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흑인 선수가 살해 위협을 받는 건 처음이 아니었고 그때가 마지막도 아니었다”라고 당시 사회 분위기를 전했다.
마스터스 대회 출전을 앞두곤 살해 위협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100여 차례의 살해 협박으로 인해 늘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움직였으며, 두 곳의 숙소를 빌려 번갈아 가며 지내야 할 정도로 매 순간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 놓였다. 더불어 안전과 별개로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고성과 현지 가게에서 냉대받는 등의 일상적인 차별 또한 피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마스터스 대회 출전 이후로도 리 엘더는 1979년에 미국과 유럽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에 흑인 최초 미국 대표 선수로 선발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기도 하는 등 선구자적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그의 행적에 현대 골프계는 그를 ‘인종 차별을 없앤 선구자’로 여긴다. 그의 위대한 도전들이 골프를 만인의 것으로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이다.
차후 마스터스 토너먼트와 그 주최 측인 오거스타 내셔널GC는 그가 작고하기 1년 전인 2020년, 리 엘더를 마스터스 토너먼트 시타자로 초청하기도 했다. 그는 비록 건강상 이유로 직접 시타를 하진 못했지만, ‘전설’ 잭 니클라우스(미국), 게리 플레이어(남아공)와 함께 오거스타 내셔널GC 1번 홀에 서서 갤러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리 엘더는 당시 “오늘은 나와 내 가족에게 가장 감동적인 경험의 하나다. 평생 소중히 간직해야 할 명예다”라는 소감을 말했다.
지난해 그의 별세 소식엔 PGA 투어가 "흑인 선수들에게 역사적으로 불친절했던 스포츠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기 위해 힘든 어린 시절과 인종 차별을 극복해냈다. 투어에서 길고 힘든 여정을 견뎌냈다"고 그를 추모했다.
잭 니클라우스는 "리 엘더는 선구자였고, 수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화끈한 2차 계엄 부탁해요" 현수막 내건 교회, 내란죄로 고발당해 - 아시아경제
- "좋아해서 욕망 억제 못했다"…10대 성폭행한 교장 발언에 日 공분 - 아시아경제
- "새벽에 전여친 생각나" 이런 사람 많다더니…'카카오톡'이 공개한 검색어 1위 - 아시아경제
- '다이소가 아니다'…급부상한 '화장품 맛집', 3만개 팔린 뷰티템은? - 아시아경제
- "ADHD 약으로 버틴다" 연봉 2.9억 위기의 은행원들…탐욕 판치는 월가 - 아시아경제
- 이젠 어묵 국물도 따로 돈 받네…"1컵 당 100원·포장은 500원" - 아시아경제
- "1인분 손님 1000원 더 내라" 식당 안내문에 갑론을박 - 아시아경제
- 노상원 점집서 "군 배치 계획 메모" 수첩 확보…계엄 당일에도 2차 롯데리아 회동 - 아시아경제
- "배불리 먹고 후식까지 한번에 가능"…다시 전성기 맞은 뷔페·무한리필 - 아시아경제
- "꿈에서 가족들이 한복입고 축하해줘"…2억 당첨자의 사연 - 아시아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