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찬, "나처럼 부족한 사람의 연주가 청중에게 영감 줄 것"

2022. 11. 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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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 첫 앨범에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 담아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첫 앨범을 낸 피아니스트 임윤찬. 사진 유니버설 뮤직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의 음반이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됐다. 지난 6월 제16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 최연소 우승 후 첫 메이저 레이블 데뷔 앨범이자 실황 음반이다. 음반 제목은 ‘베토벤, 윤이상, 바버’. 지난달 8일 홍석원이 지휘하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통영국제음악당 연주회를 담았다. 임윤찬이 협연한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비롯해 윤이상 ‘광주여 영원히’,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메인 레퍼토리다. 이밖에 임윤찬이 앙코르로 연주했던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의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수첩’까지 독주곡 3곡도 수록됐다.

28일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기자들과 만난 임윤찬은 음반에 수록된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을 연주했다. 반사되는 빛과 물에 잠긴 듯 뭉근함이 느껴지는 회화적이고 풍부한 음색을 선보였다.

임윤찬과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홍석원은 작년에 처음 만났다. 광주시향 송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함께 연주하며 호흡을 맞췄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서 지휘자 마린 올소프를 감동시켰던 그 곡이다. 홍석원은 “임윤찬 연주에 반했다. 마침 광주시향이 녹음 준비 중이었고 원래는 협연자 없이 하려고 했는데 무조건 임윤찬과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해 함께 해달라 요청했고 이번 음반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임윤찬은 “광주가 예향이라 들어서 연주가 궁금했었다. 첫 리허설 때 단원들의 엄청난 스피릿(spirit)과 에너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좋아했었는데 이제는 광주시향의 연주가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윤찬은 첫 DG 앨범 '베토벤, 윤이상, 바버’에 홍석원이 지휘하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통영국제음악당 연주를 담았다. 사진 유니버설 뮤직

임윤찬은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콩쿠르 이후 첫 녹음으로 선택한 데는 코로나 상황이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원래는 베토벤 협주곡 1번이나 4번을 녹음하고 싶었다”는 임윤찬은 “최근 인류에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방안에서 나가지도 못하다 보니 '황제'가 단지 화려한 곡이 아니라 베토벤이 꿈꾸던 유토피아, 그가 바라본 우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곡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음반에 담고 싶었다”고 했다.

임윤찬은 ‘황제’를 연주하며 베토벤이 썼던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사후 발견된 생전 편지)를 생각했다고 한다. “베토벤 협주곡 3번이나 5번을 연주할 때 이상하게 제 마음속에는 항상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가 떠오른다. 사람들이 이 유서를 오해한다. 죽으려고 하는 사람의 글답지 않게 글에 힘이 있다. 베토벤 자신은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하고 싶어했을 뿐이다. 그 마음이 감동적이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임윤찬의 ‘황제’는 베토벤의 회한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느린 악장이 각별하다. 홍석원 지휘자는 임윤찬과 녹음하며 “예전에는 10대 청년의 질풍노도, 에너지, 파워를 느껴서 ‘에너제틱한 황제’가 되지 않을까 예측했었는데 공연을 하고 보니 색다른 색깔의 베토벤이 나왔다”며 “특히 2악장이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절하게 다가왔다. 통영에서는 광주에서의 첫 협연과 컬러를 다르게 연주했는데 그게 모두 설득력 있었다. 임윤찬은 역시 천재”라고 말했다.

앨범에 수록된 앙코르 3곡의 선곡에 대해서 임윤찬은 “음악을 모르시는 분들이나 심지어 일부 어린 음악가들도 모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몸포우를 골랐다. 아르카디 볼로도스 음반의 연주에 깊이 빠져든 적이 있어서 연주하고 싶었다. 스크랴빈도 이름은 많이 알려진 작곡가지만 안 알려진 다양한 곡들이 많다”고 했다.

임윤찬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연주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돈 이상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사진 유니버설 뮤직

이번 앨범에는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가 담겨있다. 광주시향은 2007년 문화예술회관 공연 당시 이 곡을 비상업 용도로 연주·녹음한 바 있지만 정식 발매 앨범에 이 곡을 연주해 수록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광주광역시 소속인 광주시향이 공식적으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를 녹음한 첫 앨범이 되었다.

홍석원 지휘자는 “나는 타지인이지만 광주시향 단원들하고 대화하다 보면 은퇴를 앞둔 분들은 대개 5·18 경험자였다. 얘기로만 들었는데 느낌이 다르더라. 감히 말씀드릴 수 있다. 광주시향보다 이 곡을 잘할 수 있는 악단은 없다. 통영에서 연주됐다는 게 큰 의미가 있다. 작곡가의 고향에서 녹음해 영광스럽고 뜻깊은 작업이었다”고 했다.

광주시향은 다음달 오티움 콘서트와 송년음악회를 연다. 2023년 1월 여수 예울마루 초청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2월 미국 샌 안토니오시 초청 하에 토빈센터(Tobin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s)에서 공연하고, 이어 휴스턴 총영사관 주최로 휴스턴시에서 ‘정전 70주년 기념연주회’를 갖는다.

임윤찬은 앨범 발매와 함께 다음달 도쿄·서울 등에서 리사이틀을 한다.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반 클라이번 콩쿠르 기념 콘서트 1부에는 올란도 기번즈의 ’파반과 갈리아드‘, 바흐의 15개의 인벤션과 신포니아, 2부에서는 리스트 ’2개의 전설‘과 ’단테 소나타‘를 연주한다. 이런 프로그램에 대해 임윤찬은 “글렌 굴드가 연주한 버드, 기번즈의 작품을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다. 바흐 ’인벤션과 신포니아‘는 우리나라 어린 피아니스트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곡들이다. 시적인 표현들과 비르투오시티, 아름다운 부분들을 들으면 베토벤이나 리스트를 만들어낸 곡이라는 생각이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굴드 연주는 탄생부터 죽음까지 인생의 어떤 이야기를 담은 것 같았다. 리스트 B단조 소나타의 첫 음과 마지막 음처럼. 제가 받은 그 영감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2부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리스트는 내 음악인생과 평생 함께했었던 작곡가다. 판타지라고 하면 진부하다. 상상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표현하기에 리스트만 한 작곡가 없다. 리스트는 제가 대하기에 가장 편한 작곡가”라고 했다. 임윤찬은 2023년에는 런던 위그모어홀, 밀라노, 로마, 파리, 도쿄 필하모닉과의 협연을 앞두고 있다.

이날 임윤찬은 ‘음악의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음악을 나누는 데 더 많은 가치를 둔다고 했다.

“음악회 못 오시는 분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에게 제가 가서 연주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몰랐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드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의미를 지닙니다. 저는 과학이나 수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위대한 수학자나 과학자가 강의하러 온다면 저에게 또다른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거예요. 저처럼 부족한 사람도 가서 연주하며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돈 이상의 가치를 매길 수 있을 겁니다.” 아직 20세가 되지 않은 청년의 말이 울림을 주는 순간이었다.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류태형 객원기자・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ryu.taehyung@joongang.co.kr 사진 유니버설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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