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비하 발언, 버려지는 피켓... 촛불집회는 더 나아져야 한다
[박준영 기자]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과 서울시청사이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집회가 열리고 있다. |
ⓒ 이희훈 |
지난 19일 토요일, 숭례문 앞 세종대로에서는 윤석열 퇴진, 김건희 특검을 주장하는 집회(촛불대행진)가 열렸다. 노동개악, 경제 위기, 외교 참사, 그리고 10.29 참사. 답답함과 분노, 슬픔 등으로 인해 주말 오후 시간을 반납하고 집회 현장으로 달려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였다. 주최측 추산 최대 인원 약 20만 명, 연인원 40만 명(추정)이 숭례문 앞에서부터 시청앞 서울광장에 이르는 세종대로를 메웠다. 집회 참석 인원 대부분은 집회 이후 숭례문 앞에서 용산 대통령실까지 약 3km에 해당하는 거리를 '윤석열 퇴진'과 '김건희 특검'을 외치며 함께 행진했다(관련 기사: 세종대로 가득 메운 촛불... "반성 안하는 윤 대통령 내려와라").
윤석열 정권의 계속되는 실정과 반성하지 않는 태도를 보며, 필자는 이 집회에 많은 인원이 참석하길 바랐다. 많은 인원의 퇴진 집회 참석이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까지는 아니더라도 '강력한 경고'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집회 참석 인원이 모이기 시작하는 시간인 오후 3시부터 마지막 순서인 용산 대통령실로의 행진에까지 참석했다. 그러나 집회가 진행될 동안 집회 운영에 대한 불편한 마음이 지속됐다. 동일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었지만, 그곳에 '함께' 있다기보다 '나'의 자리는 고립되어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갑작스러운 '국가주의'
"저는 대한민국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느나라 사람입니까? … 원래는 한 곡만 하고 가는거였는데, 갑자기 여러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보니 한 곡을 더 짧게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애국가를 했으면 합니다. 애국가는 저희(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입니다. 무반주로 하겠습니다. 애국가는 대한민국 그 자체입니다. 함께해주시기 바랍니다. 큰 소리로."
집회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윤석열 탄핵, 김건희 특검'이라는 피켓을 흔들며 애국가를 불렀다. 그러나 필자는 애국가 가사를 잘 알고 있었음에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필자에게 국가주의는 윤석열 퇴진을 요구하는 요인 중 하나였지, 윤석열 퇴진 이후 필자가 희망하는 사회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민규씨는 '우리가 모두 대한민국 사람이고, 애국가는 대한민국 그 자체이기 때문에' 애국가를 함께 부르자고 했다.
한껏 고무된 국가주의적 분위기는 이후 순서에서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에게 '대한민국을 떠나라, 일본으로 떠나라'라는 구호로 이어졌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對)일본 외교 자세에 대한 비판의 표현이었다. 필자 역시 윤 정부 외교관에 비판적인 의견을 갖고 있지만, 이는 '윤 대통령을 일본으로 보내자'는 주장과는 결이 다르다고 본다. 그럼에도 퇴진 집회는, '친일이냐 반일이냐' '애국이냐 매국이냐'라는 위태로운 이분법의 구도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대한민국 국가'를 위해 퇴진 집회에 참석했다기보다 국민 한 사람으로서 나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참석했다. 그러나 이날 '애국가 부르기'로 나타나는 국가주의를 보자, 그동안 광화문에서 군복을 입고 태극기와 성조기를 함께 들고 애국가와 군가를 부르던 보수단체 집회 모습이 윤석열 퇴진 집회 현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재현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실정에 대한 분노는 윤 정부의 정치가 나와 공동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때문이었지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국격'이 실추되는 것에 부끄러운 마음은 있었지만, 이는 의인화된 국가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라기보다 감정의 문제였다. 10.29 참사는 소중한 공동체 구성원을 안타깝게 잃은 참사였지만 국가 자체의 몰락은 아니었다고 본다. 국가주의적 정서로 이 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비판하고 싶진 않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참여 동기 또한 존중받길 바랐다.
둘째, 불필요한 여성혐오적 가사
"옛날옛적 양귀비는 경국지색이요, 라마다호텔 나가요 줄리 망국지색이라~"
이 공연은 시민 자유발언 중 나온 돌발적인 발언이 아니라, 집회의 공식 순서였다. 대형 스크린에 가사까지 띄웠다.
앞서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성별불평등에 대해 지적했고, 그 즈음 윤 정부가 부랴부랴 여성 장관들을 '구색 맞추기'로 임명한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비판해왔다. 또 윤 정부의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비판 여론도 높다. 퇴진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와 같은 윤석열 정부의 여성 차별, 혐오 섞인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이 다수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함께 부른 노래의 가사는 또다른 여성 혐오에 지나지 않았다고 본다.
필자 역시 대통령 부인 김건희씨의 과거 경력 중 범죄 혐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날 공연은 범죄 혐의에 대한 지적보다는, 외모 지적은 물론 과거 경력을 자극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풍자는 재미와 비판을 추구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불의의 피해를 발생시키면 안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이 공연의 대부분의 내용은 이 어려운 작업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 김건희의 잘못을 비판하기보다 김건희라는 여성을 조롱한 대목은 아쉽다. 섬세하지 못했거나, 혹은 의도적인 여성 혐오가 표현됐다고 본다.
▲ 지난 19일 오후 서울 중구 숭례문과 서울시청사이에서 촛불행동 주최로 '김건희 특검·윤석열 퇴진 촛불대행진 집회가 열리고 있다. |
ⓒ 이희훈 |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점은 집회 진행을 위한 수많은 일회용 인쇄물이었다. 숭례문 앞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설치된 무대로부터 시청앞 서울광장까지 5~10m 간격으로 현수막이 붙었다. 또한 이 집회에 참석하는 단체 또는 개인들이 각기 포스터를 인쇄하여 거리 바닥이나 건물 벽에 붙였다. 특히 바닥에 붙은 포스터는 집회 참석자들이 비토할만한 대상들의 사진을 인쇄하여 붙였고, 참석자들은 이 포스터를 짓밟으며 분노를 표출했다.
바닥에 붙은 포스터는 금세 너덜해졌고, 집회 운영진(자원봉사단)이 너덜해진 포스터가 참석자들의 보행에 방해될까 급히 치우는 모습이 반복됐다. 집회 운영과 진행을 맡은 촛불행동에서는 수많은 양면 피켓 인쇄물을 나눠줬다. 주최측에서 집회 참석 연인원이 약 40만 명이라고 밝혔으니, 이 규모의 참석자를 위한 피켓의 인쇄량은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실제로 집회 참석자들 대부분은 이 피켓을 받아서 집회에서 활용했다. 그러나 이 모든 인쇄물은 단 한 차례 집회를 위한 인쇄물일 가능성이 크다. 필자 역시 집회 참석 뒤 이를 가까운 재활용 쓰레기통에 버리고 왔다.
일회용 인쇄물을 대체하여 버려지는 박스를 재활용하거나 디지털 기기에 개별적인 문구를 써서 피켓으로 활용하는 집회가 증가하고 있다. 이날 집회에서도 개인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에 개인적 구호를 띄워 피켓으로 활용한 참석자들이 있었다. 윤석열 정부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재생 에너지 정책 추진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고 이는 윤 정부 비판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는 집회 참석자들에게 기후정의를 위해 동의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촛불집회, 대표 말대로 "더 강력해지"려면
"우리는 매일 더욱 강력해지고 있습니다 … 전국에서 촛불이 거센 등불이, 들불이 되고 있습니다 … 단결한 민중만이 승리합니다 … 오늘 우리는 더욱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이미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김 대표는 11월 19일까지 총 15차례 집회가 거듭되며 '집회가 더 강력해졌다'고 판단했다. 그 근거는 더 많은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다. 단순히 더 많은 사람이 모여야만 '강력'해지고 이 힘으로 윤석열 정권을 탄핵할 수 있는지, 그 주장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방식의 집회가 계속될 때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는 의문이다.
김 대표의 바람대로 집회 참석자들이 더 많아지기 위해, 그리고 나아가 이 집회가 새로운 대안 제시로 이어지기 위해 성찰적 고민이 필요하다.
2017년 촛불집회는 국회와 대법원이 박근혜 정부를 탄핵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에 대한 결과로 정권이 교체됐다. 그러나 약 5년 후 비슷한 비판을 반복하는 퇴진 집회가 다시 시작됐다는 점에서 이는 불완전한 성취였다. 이번 집회가 5년 전 촛불 집회를 계승하고 있다면, 2017년 집회의 불안한 성취를 극복해야 한다.
필자는 단순히 대통령 퇴진이 목적이 아닌, 퇴진 이후 새로운 사회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이를 작게라도 실현해내는 것이 더나은 성취를 위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주의보다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들, 성평등과 기후정의를 소망하는 사람들은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 충분히 환대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포용적 집회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집회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집회 운영진과 기존 참석자들이 작은 불편함을 견디고 약간의 포용적 감수성을 지닌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열릴 것이다.
2017년 촛불 집회에서도 비슷한 '불편함'이 있었고, 함께 집회하는 사람들 간의 갈등이 발생해 결국 추후엔 '페미존'이 별도로 마련되기도 했다. 이번 퇴진 집회에서는 집회 운영진과 참석자들이 집회 목적의 달성을 위해 함께할 수 있는 이들에게 먼저 포용적 공간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현재(11월 27일)까지 16차례 촛불대행진이 진행됐고, 제17차 촛불대행진이 예고된 상황이다. 촛불행동의 예고에 따르면 이 집회는 한동안 계속 이어질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에 실망하고 분노한, 그래서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희망하는 필자와 같은 시민들에게 이 집회는 소중한 공간이다. 따라서 이 공간이 더 많은 시민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참석할 수 있는 포용적인 공간이 되어야 한다.
약간의 수고와 불편함이 더해지더라도, 윤석열 정권의 실정으로 소외받고 배제된 개인과 집단이 이 공간에서는 환대받을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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