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독 반란에 동참한 아프리카, 벨기에 잡은 모로코
[김승훈 기자]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대회에서 이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번에는 FIFA 랭킹 22위인 아프리카의 모로코가 FIFA 랭킹 2위인 유럽 벨기에를 격파하며 발목을 잡았다. 이로 인해 벨기에는 16강 티켓을 조기에 확보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됐다.
11월 27일(이하 한국 시각) 카타르 도하에 있는 알투마마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F조 조별 리그 2차전 경기에서 모로코는 벨기에를 2-0으로 완파했다. 모로코는 1승 1무를 기록하며 승점 4점을 획득, F조 선두로 올라섰다.
반면 우승 후보로 지난 러시아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던 벨기에는 1승 1패로 승점 3점에 머물렀다. 다음 경기에서 크로아티아와의 경기 결과에 따라 16강에 진출하지 못하고 탈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다.
VAR 판독으로 인한 골 취소, 전반 위기를 넘긴 모로코
보통 전력의 차이가 큰 강팀과 약팀의 경기에서 볼을 점유하는 쪽은 강팀이다. 이 날 경기도 벨기에가 주도하고 모로코는 수비에 집중하는 모양새였다. 다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모로코는 벨기에의 빈 틈을 찾아 역습에 나서기도 했다.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 추가 시간에 모로코는 벨기에 진영의 골 문 앞에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하킴 지예시(첼시)의 프리킥이 골망을 갈랐고, 모로코 선수들이 기쁨을 만끽하며 경기장은 관중들의 함성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비디오를 판독하던 VAR 심판진이 주심에게 신호를 보냈다. 모로코의 선수들이 중간에 공을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프사이드를 판별하는 반자동 시스템에 의해 바로 확인되었으나, 다른 요소로 인하여 비디오를 판독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심판의 판독 결과 모로코의 골은 취소됐다.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더라도 공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오프사이드가 아니다. 그러나 공을 건드리지 않은 선수들이 골키퍼의 시야를 가렸다고 간주될 경우 해당 상황에서 기록된 골을 취소할 수 있다.
모로코는 4년 전 러시아 대회에서 포르투갈, 스페인, 이란과 함께 B조에서 조별 리그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포르투갈과의 경기,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VAR로 인하여 승패에 영향을 받았고, 1무 2패로 B조 최하위에 그치며 탈락한 불운이 있었다.
벨기에 발목 잡은 모로코, F조 선두 등극
그러나 집념의 모로코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했고 다시 한 번 프리킥을 얻어냈다. 후반 28분 압델하미드 사바리(삼프도리아)의 프리킥이 벨기에의 골망을 흔들었는데, 이번에는 모로코의 다른 선수들이 골키퍼의 시야를 가리지 않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1-0).
실점한 벨기에는 최소 승점 확보를 위해 부상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된 로멜루 루카쿠(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까지 투입했다. 그러나 아직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은 루카쿠의 투입만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모로코는 경기가 끝나기 직전 추가 시간에 자카리아 아부클랄(툴루즈)의 추가 골이 터지면서 승기를 굳혔다(2-0). 그대로 경기가 끝나면서 모로코는 1승 1무로 승점 4점을 확보, 2차전까지 F조 1위를 확보했다.
1차전에서 모로코와 비겼던 크로아티아는 모로코와 벨기에의 경기가 끝난 직후 있었던 2차전에서 캐나다를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다. 모로코는 탈락이 확정된 캐나다를 상대로 최소 비기기만 하면 자력으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
통산 6번째 월드컵, 1986년 이후 36년 만에 도전하는 16강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모로코는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1962년 칠레에서 열렸던 월드컵 대회부터 참가 신청을 하여 꾸준히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1970년 멕시코 대회(16팀 체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본선에 참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1무 2패로 승점 1점을 얻는 데 그쳤다.
이후 1986년 멕시코 대회(24팀 체제)에 16년 만에 다시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모로코는 1승 2무로 F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폴란드와 득점 없이 비겼고, 잉글랜드와도 득점 없이 비겼으나 3차전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3-1로 완파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16강전에서 서독을 상대로 0-1로 패하면서 모로코의 돌풍은 멈췄다. 그리고 이후 모로코는 3번의 월드컵 본선(1994, 1998, 2018)에 더 출전했으나 이 기간 1승 2무 6패에 그쳤다. 그 동안 월드컵 본선의 규모는 24팀 체제에서 32팀 체제로 확대되었으나 모로코는 16강에 올라간 적이 없었다.
모로코가 캐나다를 상대로 최소 비길 경우 모로코에게는 36년 만에 16강 토너먼트 참가의 기회가 주어진다. 모로코가 캐나다에게 패할 경우 벨기에와 크로아티아 경기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캐나다는 1986년 멕시코 대회에 첫 출전(3패)한 이후 36년 만에 본선에 다시 진출했는데, 큰 무대에서의 경험 미숙을 노출했다. 현재 모로코의 경기력을 감안하면 모로코가 자력으로 16강에 합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언더독 돌풍의 희생양 된 벨기에
이번 월드컵에서 유독 FIFA 랭킹 상위권 팀들이 본선에 참가한 팀들 중 하위권으로 분류된 팀들에게 불의의 일격을 맞는 경우가 많았다. 유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C조의 아르헨티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2차전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간신히 승리했으나 폴란드와의 3차전 결과에 따라 탈락할 수도 있다.
E조에서는 독일이 일본에게 역전패를 당하면서 4년 전 러시아 카잔에서 대한민국에게 당한 데 이어 2대회 연속으로 아시아 팀에게 패배를 당했다.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승점 1점에 그치고 있으나, 3차전에서 만날 코스타리카가 일본에게 승리한 덕분에 독일은 16강에 합류할 마지막 기회를 겨우 잡았다.
F조에 배정된 벨기에도 이번에 모로코에게 당하면서 언더독 돌풍의 희생양이 됐다. 벨기에는 주전 스트라이커 루카쿠의 부상 회복이 더디면서 이번 월드컵을 여러 가지 불안 요소 속에서 시작했고, 캐나다를 상대로 진땀승을 거두며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노출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모로코에게 완패를 당하면서 벨기에는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였다. 하필이면 다음 경기에서 상대해야 할 크로아티아가 캐나다를 상대로 보여준 경기력은 벨기에의 경기력에 밀리지 않았다. 크로아티아는 비기기만 해도 자력으로 16강에 올라갈 수 있지만, 벨기에는 16강에 진출하려면 무조건 이겨야 한다.
벨기에는 이번 대회까지 월드컵에 14번째 출전했다. 이 중 1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7번으로 본선에서 매번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장담은 할 수 없는 통산 기록을 갖고 있다. 1986년 멕시코 대회에서 4위를 기록했고, 2018년 러시아 대회에서 3위를 기록했지만 아직 결승까지 올라간 적은 없다.
공은 둥글고 축구에는 의외성이 존재한다. 월드컵이라는 단기 대회의 특성 상 대회마다 이변들이 연출되곤 한다.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에서 또 다른 이변을 연출하며 모로코의 뒤를 이어 세계를 놀라게 할 또 다른 팀은 어떤 팀이 등장할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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