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당당한 귄리, 일상과 낯섦의 경계 <아직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

2022. 11. 2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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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일이다. 서울시 특수학교 설립을 두고 토론회에서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이 주민들에게 무릎 꿇고 호소하는 장면이 뉴스로 보도되면서 충격을 주었다. ‘우리 아이는 혐오시설이 아니다’라는 절박한 호소는 사회적 통증을 거치며 공립특수학교(서진학교, 2020)가 17년 만에 개교했다. 이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기록한 영화 ‘학교 가는 길’은 한국 사회 장애인 인식 개선에 영향을 주었다. 영화 감상평은 대체로 이랬다. “공존하는 사회를 위한 엄마들의 투쟁이 가슴을 울렸다”, 발달 장애인들이 특수학교 졸업 후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교육과 돌봄으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것이 이렇게도 어려운 일일까” 강서구 서진학교는 지난해 초등학생 12명, 중학생 5명, 고등학생 3명 등 총 20명이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졸업장을 받았다.

보건복지부 통계 국내 장애인 등록자(인구)는 264.5만명(2021)으로 추산한다. 한국 사회 인구의 6, 29%가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고 이중 ‘지체장애인’이 전체 장애 등록자의 40%에 달하고 있다.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장애인의 99%가 활동성 제한으로 도움 없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재가(在家) 장애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실은 이런데, 지난해 장애인 총예산액은 1조 2,231억으로 1인당 314,262원 정도 지원되었다. 여전히 한국 사회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와 이동권, 권리와 지원, 복지제도, 인식 개선은 더디다. 장애인들의 사회현실의 벽을 향해 동등한 권리의 소리 들을 연극적인 공간과 공연환경으로 실천하는 작품이 있다. 서울시 극단(예술감독, 고선웅)이 그동안 안정적인 공연방식을 뒤로하고 신재 연출의 작업을 <아직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11월16~2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로 공연되어 졌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면서도 공립극단으로 사회적 역할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낯섦의 일상으로 ‘극’의 경계를 깨면서도 그 낯섦과 일상으로 특수한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들의 시선으로, 사회구조에서 여전히 제도권으로 등장하지 않았던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직접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당당한 권리의 방식

신재 연출에게 당당한 권리의 방식은 장애, 노동, 사회문제를 과감하게 연극적인 공간과 특성으로 말하는 것이다. 문제를 도려내는 방식은 인식을 개선하는 단순 체험 방식을 넘어 직접적인 방식이면서도 사회적 실천을 예술가의 감각으로 전달하고 있다. 기타를 생산하는 콜트콜텍 해고(解雇) 노조원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구일만 햄릿>(2013)에서는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공감시키기 위해 해고 노조원들의 날것의 말과 몸으로 기록된 현장들을 콜트콜텍의 햄릿으로 재구성해 전달했다. 연극적 특성으로 사회운동을 하는 실천 방식이면서도 무대, 공간, 자연환경 등으로 들어내는 날것의 과감한 문제들을 수용하고 용해 시키는 발언에는 사회문제를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행동과 인식의 전환을 부여한다는 점이 특별하다.

그동안 연출과 배우, 텍스트와 공간, 무대 기술, 언어와 몸의 완전체들의 전유물로 인식되고 공연예술의 집합체를 이루어 왔던 무대 공간과 배우 주체의 장소를 장애, 비장애인들의 경계를 허물고 동등한 권리와 인권신장, 노동문제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전통적인 연극의 3요소는 정상인과 비정상인 경계의 균형을 이탈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공연된 <연극의 3요소>(2017)는 장애인들의 감각으로도 표현될 수 있어야 하는 불편한 벽들이며 <나는 인간>(2018)처럼 완전체로의 인간존재는 우리들의 시선과 사회 인식들로 채워져 있는 경계인 것이다. 장애인들도 자유로움의 감각으로 표현할 수 있으며 비장애인들도 몸과 언어의 감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사회적 경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낯섦을 받아들이는 인식의 경계(經界)를 제거하는 일이다. 연출은 동등한 권리를 가공하지 않고 들어내고 보여줌으로 그 경계의 차이를 사회적으로 개선하고 있으며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다.

신재 연출에게 연극을 이루는 3요소는 비장애인들만으로 표현될 수 있는 예술적 영역이라는 절대 인식은 동등한 권리의 표현으로써 민주적인 행위의 방식으로 드러나게 된다. 장애인들의 몸, 소리, 표현의 방식은 닮음의 행위, 비장애인들의 온전한 몸체를 갈망하는 욕망의 행위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동등하고 당당한 표현의 사유 방식으로 전환된다. 감정과 소리, 몸의 리듬은 불협화음의 연속성 들이 부딪쳐 화음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신재 연출에게 무대는 재현의 구조로 텍스트의 언어를 들어내는 실험의 공간보다는 동등한 ‘같음’으로 실존할 수 있는 ‘장소’로 환유되고 사회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날것의 ‘그대로’는 예술적으로 가공되지 않으면서도 연출의 감각으로 사회적 파동을 형성하고 있는 동등한 권리의 침전물들은 집단적인 소리가 되는데, 이는 곧 견고한 경계를 허물어 동등한 권리의 민주화를 위해 전진하며 인식의 전환을 위해 조용한 전투를 치르고 있는 연출의 방식이다.

<아직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의 표현 주체는 발달 장애인들로, 텍스트는 이들의 삶과 현재의 현존이 되고 서사는 낯섦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바라보고 소리를 듣는 관객(정상인)은 타자화가 되고 그 경계에서 낯섦의 ‘바라봄’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의 동등한 경계로 인식되고 인지되는 것이다. 그만큼 연출에게 연극적인 특성은 경계 없는 당당한 권리를 들어내고 표현할 수 있는 물질로 정돈돼 오브제로 기능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작업은 <장애극장>(2016) 이후 제로셋 프로젝트(0set Project)를 통해 <연극의 3요소>(2017), <불편한 입장들>(2017), <나는 인간>(2018>, <관람모드-있는방식>(2020), <내가 말하기 시작 할 때>(2020) 등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문턱을 낮추는 극장과 사회적 환경의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운동을 넘어 배리어 컨셔스( (barrier-conscious)를 통해 장애인들과 예술 활동으로 사회적인 인식과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전히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

무대는 공간 전체다. 개방적인 직사각 원형 객석 열 마다 모니터를 놓고 이들의 이야기를 극장 현장에서 송출하는 영상으로도 볼 수 있고 의자와 탁자 배치는 관객들과 자유롭게 교감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했다. 공연형식의 발표는 ‘권리중심 일자리’를 통해 수행해온 프로그램들이다. 극장 입구로 들어서면, 중앙 앞면으로 대형 화면이 보이고 원형으로 ‘탈탈탈’ 팀들이 수업 활동하는 교실 공간 그대로 인 것처럼 출연자들은 책상에서 관객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 붙이기 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출연자는 발표라는 낯선 풍경에 긴장해서일까. 한 출연자가 불안함을 보이기도 했는데 공연과 공간의 질서로 통제시키지 않으면서도 공연 프로그램들로 융합되어 가는 과정이 특별했다. 중증 발달장애인들이 이야기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은 사회제도와 인식의 경계 밖에서 등장하지 않고 있는 등장인물(출연자)들의 이야기다. 발표는 등장, 음원레코딩, 컨텍즉흥, 커뮤니케이션 써클 춤, 등장, 으로 구성되는데 공연은 이들이 극장을 통해 특별한 공연을 준비해 가는 ‘등장’부터다.

특별한 서사 장치는 없어도 교사들과 이들의 무대 밖 일상적인 대화들은 자막과 수화사로 전달된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극장에 적응하기 위한 첫 답사 과정들, 버스에서 극장으로 이동하는 소리가 그대로 자막으로 전달되고 공연과 극장이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대화들이 이어진다. 시설과 집의 풍경들이 보이고 이어 무대 공간 밖에서부터 극장으로 한 출연자와 조력 선생님이 들어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발표를 준비하고 극장을 답사하는 소리와 연결되면서 공연의 장치로 전환되어 극장 공간으로 한 출연자와 조력 선생님이 등장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출연자들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예술적(공연)으로 정제되는 과정에는 연출의 감각으로 배치된다. 극장환경과 무대 공간을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낯섦의 행동들과 소리로 채워지는 이들의 이야기는 일상의 발표를 넘어 창작활동을 하는 노동자로서 표현의 주체로 전달된다. 변화되는 일상과 특별한 행동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관념의 인식을 제거한다. 여전히 사회제도와 우리들의 시선과 인식으로 등장하지 않고 있는 등장인물들의 비뚤비뚤 글씨, 분절된 소리들, 산만한 행동들, 집중할 수 없는 약속 되지 않은 중증장애인들의 소리와 행동들은 그 자체만으로 특별한 삶의 소통방식들이며 창작행위이다.

노들 노래공장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진 음원레코딩 장면은 작사·작곡한 노랫말을 출연자들 전체가 한 사람씩 부르며 녹음하거나 기록하기도 하는데 단어와 음절이 분절된 상태로 전달되는 노래 ‘사랑의 마음’은 표현하는 모양은 달라도 출연자들이 사랑의 방식은 순수하고 당당하며 가슴의 전류로 흐르는 <나는인간>의 소리(절규)들이다. 춤 창작을 조력하는(엠마누엘 사누) 창작진과 컨택즉흥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동작은 구르기, 뛰기, 손 흔들기도 특별한 소통의 방식들이고 써클 춤에서 한 출연자와 엠마누엘 사누 두 사람의 몸짓은 경이로운 앙상블이었다. 틱장애를 보이는 한 출연자의 반복적인 동작을 창작자(조력)가 똑같이 따라 하는 장면에서 자신의 생각과 마음들을 두 손동작으로 모으는 반복적인 행동은 이 학생만의 의식(意識) 같아 보였다.

마지막 장면은 발표를 끝내고 무대 밖으로 나가 집으로 가족들과 집으로 향하는 것까지 영상으로 전달되는데 극장을 나가 등장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다. 광화문 광장의 길가로, 시민들의 사이로, 한국 사회의 정치를 변화시켜온 아스팔트 위로, 법안 발의를 하는 여·야의 집회 현장 사이로 흩어져 걸어가도 이들이 걷고, 움직이고, 소리 내는 대화들은 여전히 한국 사회에 들리지 않는 변방의 등장하지 않는–등장인물들이다. 무대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빈 탁자와 의자만이 있다. 관객이 퇴장하는 것까지가 마지막 장면으로 연결된다. 일반인들과 소통을 시도하려고 하는 중증 발달 장애인들의 소리와 행동, 간절한 마음을 담아내는 손동작에도 우리의 인식과 마음에는 여전히 이들의 삶과 방식은 등장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낯섦의 체험을 한 관객은 아직 등장하지 않는 등장인물의 탁자와 의자, 그 위에 놓여 있는 한 장애인이 그린 그림을 바라볼 뿐이다.

당당한 귄리, 일상과 낯섦의 경계

‘장애는 사회가 만드는 것이지 사람 몸에서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신재 연출가가 한 인터뷰에서 표현한 말이다. 때로 경험한 일상의 구조와 사물, 인물, 대화, 일상 풍경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공연도 그렇다. 각자 방식으로 경험의 시간성으로 복원할 수 없는 낯섦은 이질적인 감각으로 반응(두려움, 공포, 충격)하면서도 익숙한 것들로부터 느껴지는 낯섦은 프로이드가 말한 것처럼 ‘익숙한 것으로부터 느껴지는 두려움’일 것이다. ‘익숙함’은 우리들의 삶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이며 ‘두려움’은 나와 우리의 삶, 사회구조로 이들의 동등함과 권리가 익숙하지 않은데 있다.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의 출연자들은 장애인 해방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노들장애인야학(1993)의 ‘권리 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서울시가 운영하는 문화예술, 장애인권익옹호, 장애인 인식 개선사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무대를 만든 ‘탈탈탈’ 팀들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생활하거나 자립생활을 하고 있다.

신재 연출은 노들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맺은 이들과의 인연으로 공연예술가(연극연출가)로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허물고 동등한 권리를 직접 체험 방식의 무대화(공연예술)로 사회운동을 하고 있다. 이번 공연도 출연자들이 문화예술노동자로 표현하고 개발할 수 있도록 1년 동안 춤 창작, 감각과 움직임 창작, 노래 창작 등이 개발될 수 있도록 함께한 프로그램들을 출연자와 조력자(전문가)들이 그 과정을 공연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마치 공립특수학교 학생들의 교실 발표회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특별한 것은 신재 연출의 방식으로 전달되는 ‘낯섦’의 과정들이 무대에서 현존하면서 서사 장치로 이동되고 사회적 기호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낯섦의 익숙함은 동등한 권리의 공감으로, 불편함은 장애인 인식을 전환할 수 없는 관념의 의식(意識)으로 반응된다. 마치 불편한 이미지, 관계, 소통, 존재가 변방의 행동들로 보여지는 낯섦처럼. 연출은 의도한 것처럼 가공되지 않은 이들의 낯섦 들을 확장하고 무대를 통해 현존시키는 방식을 택하기 때문에 소리와 행동, 공간의 풍경들은 탈미학적이면서도 사회적인 메시지는 강렬하다. 단순한 ‘바라봄’을 경계하고 ‘나와 다를 것이다’라는 관념의 사고를 무장해제 시키고 가슴과 이성으로 매섭게 쪼아대기 때문이다. 감상의 방식에서 체험의 방식으로, ‘다름’을 ‘같음’의 공감으로, 차이는 동등함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공연 후 익숙함과 불편함의 경계는 ‘생각하기’로 전환되는 것이다.

출연자(고지선, 김수진, 김주희, 박소민, 신승연, 신현상, 왕지용, 이승미, 이연옥, 최재형, 황임실)들은 무대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 방식으로써 존재하고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분절된 소리, 어눌한 표정과 말투, 반복적인 동작, 산만한 행동, 이들의 일상들을 묶어 극장으로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중증발달장애인들한테는 ‘축제’이자 ‘공연’이 되고 관객들한테는 낯섦의 체험이면서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등장하지 않은-등장인물>의 이야기가 잔상이 남는 것은 낯섦의 일상성들이 연출의 소리로 한국 사회로 전진하는 언어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연출가에게는 신성한 의무가 되어버렸고 그것이 신재 연출만이 할 수 있는 무대 방식이 되어 버렸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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