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간판스타보다 더 눈에 띈다…'가나의 이강인' 누구길래 [이승우의 PICK]
지난 24일 한국축구대표팀이 우루과이를 상대로 카타르월드컵 본선 H조 첫 경기(0-0)를 치른 뒤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주는 느낌이 확 바뀌었다.
다른 나라 경기를 해설할 때만 해도 그저 즐거운 축구 축제였는데, 한국이 경기를 치르니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다. 생사를 오가는 치열한 전쟁터 한복판에 뛰어든 기분이랄까. 우루과이전 해설을 마친 직후 온 몸의 힘이 빠지면서 설명하기 힘든 공허한 기분이 밀려왔다. 말 그대로 ‘모든 걸 다 쏟아냈다’는 느낌이었다.
생각해보니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당시엔 선수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던 것 같다. 월드컵은 감독과 코치, 선수들만 참여하는 무대가 아니었다. 해설자와 취재진, 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마음으로 치르는 총력전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다행히 제 해설을 보신 분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한숨 돌리고 있다.
오는 28일 오후 10시(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가나와의 2차전을 앞두고 포르투갈-가나전 영상을 여러 차례 돌려봤다.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여러 선수들 사이로 한 명이 유독 튀었다. 모하메드 쿠두스(22·아약스). 가나대표팀의 공격형 미드필더다.
2선에서 전반적인 공격 흐름을 통제하면서 거함 포르투갈을 상대로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공격을 이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나의 이강인(21·마요르카)’이라고 부르면 지나친 비약일까.
가나는 스트라이커 이냐키 윌리엄스(28·아틀레틱 빌바오), 중앙 미드필더 토마스 파티(29·아스널), 윙어 오스만 부카리(24·츠르베나 즈베즈다) 등 피지컬과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과감한 돌파와 정확한 패스로 이들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게 쿠두스의 역할이다. 아프리카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난 것에 비해 전술적으로 정교한 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가나는 쿠두스를 적극 활용해 이 부분을 보완하고 있다.
포르투갈전에서도 2골을 터뜨린 가나의 후반전 공세를 쿠두스가 지휘했다. 후반 28분 왼쪽 측면에서 쿠두스가 올려준 크로스가 후반 28분 앙드레 아유(33·알사드)가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 한 장면이 대표적이다.
가나 팬들은 자국 축구대표팀 간판스타로 앙드레와 조르당 아유(31·크리스털팰리스) 형제를 꼽는다는데, 실질적으로는 쿠두스가 팀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활력소 역할을 맡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오토 아도(47) 감독이 후반 32분 쿠두스를 부카리로 교체한 이후 가나의 전술적 밸런스가 흔들리면서 잇달아 2골을 내줬다. 체력적인 부분을 감안한 교체로 보였는데, 한국전에서도 비슷한 교체 패턴이 나온다면 공략 포인트로 삼을 만한 지점인 것 같다.
아프리카의 축구대표팀 멤버 중 다수가 유럽 이주자 부모를 둔 이중국적자인 것과 달리 쿠두스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에서 태어난 토종이다. 12세에 축구를 시작했는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주목 받다 6년 뒤인 2018년에 덴마크 1부리그팀 노르셀란에 진출해 유럽파가 됐다. 이후 유럽축구 유망주의 산실로 불리는 아약스(네덜란드)로 이적하며 또 한 번 스스로의 가치를 키웠다. 카타르월드컵을 앞두고 에버턴(잉글랜드)을 비롯한 빅 리그 여러 팀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번 대회가 또 한 번의 도약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간 여러 국제대회에서 직접 맞대결해 본 아프리카 팀들은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일단 체격 조건과 신체적인 능력이 주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프로필이나 영상으로 파악한 것보다 실제 마주할 때 느끼는 위압감이 더 크다. 순간 스피드, 고공 점프력, 탄력 넘치는 움직임도 부담스럽다.
경기 흐름이 잘 풀린다 싶을 때 나타나는 아프리카 선수들 특유의 신바람도 골칫거리다. 흥이 오르면 마구 몰아치면서 가진 능력 이상을 발휘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바로 그 지점이 가나와의 2차전을 승리로 이끌 열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흐름이 팽팽히 맞설 때 한층 강하고 조직적인 압박으로 기를 눌러 놓으면 상대 선수들이 제 풀에 꺾여 움츠러들 가능성이 있다. 지난 4년 간 우리 대표팀이 갈고 닦은 점유율 위주의 축구의 진가를 보여 줄 시점이다. 전반적인 경기 분위기를 우리가 통제해야 한다.
아프리카 선수들은 경기 중 개인 능력을 앞세워 다양한 방법으로 도발을 걸어온다. 감정이 격해져 휘말리면 곤란하다. 신체적인 역량에서 일대일로 맞서기 곤란한 경우가 많으니 철저히 냉정을 유지하면서 팀으로, 조직적으로, 협력해서 대응하면 된다.
카타르에 넘어온 이후 ‘주경야독’을 현역 선수 해설자 버전으로 실천하고 있다. 낮에는 해설자로 여러 경기장을 누비고, 밤에는 선수로 돌아와 근력과 심폐지구력을 끌어올리는 트레이닝을 소화한다. 마이크 앞에 앉아도, 운동 기구에 올라도 머릿속은 온통 우리 대표팀에 대한 생각 뿐이다.
A대표팀과 연령별 대표팀에서, 다양한 국제대회에서 나와 한솥밥을 먹었던 형들과 친구들, 동생들이 월드컵이라는 영광스런 무대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돌아가길 진심으로 바란다. 가나전은 그 꿈을 실현할 기회의 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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