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매치에 90분이 녹아내렸다…독일과 스페인, 접전 끝 1-1무
서로 다른 축구 문명을 창조한 두 거인 간의 맞대결이 치열한 접전 끝에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무적함대’ 스페인과 ‘전차군단’ 독일이 서로 한 골씩 주고받은 끝에 1-1로 비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7위 스페인은 28일 오전 4시(한국시간) 카타르 알코르의 알바이트스타디움에서 열린 카타르월드컵 본선 E조 2차전에서 독일과 1-1로 비겼다. 앞서 코스타리카와의 첫 경기에서 7-0 대승을 거둔 스페인은 독일전 결과를 묶어 1승1무로 승점 4점을 벌어들였다. 상대전적은 9승9무8패로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
독일은 앞서 일본과의 1차전에서 허용한 1-2 역전패의 충격에서 벗어나 이번 대회 첫 승점(1점)을 확보했다. 여전히 16강 진출 전망은 불투명하다.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다득점 승리를 거둔 뒤 타 팀의 경기 결과를 따져봐야하는 상황이다.
치열한 기 싸움 끝에 전반을 0-0으로 마친 양 팀의 득점포는 후반에 집중됐다. 스페인이 후반 17분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왼쪽 풀백 조르디 알바(바르셀로나)가 상대 위험지역 좌측면을 파고들어 올려준 땅볼 크로스를 정면에 있던 알바로 모라타(아틀레티코마드리드)가 오른발 아웃프런트 슈팅으로 마무리했다. 힘들이지 않고 볼의 방향만 살짝 바꾼 감각적 볼 처리가 돋보였다.
독일은 패색이 짙어가던 후반 38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리며 기사회생했다. 2선 공격수 자말 무시알라(바이에른 뮌헨)가 위험지역 정면을 파고들어 넘겨준 볼을 교체 공격수 니클라스 퓔크루그(베르더브레멘)가 벼락같은 오른발 슈팅으로 연결해 스페인의 골네트를 흔들었다. 패배를 우려해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던 독일 팬들이 일제히 환호하며 관중석이 뜨겁게 요동쳤다.
명품 매치였다. 양 팀 모두 탄탄한 조직력을 전술의 기반으로 삼았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팀 플레이를 점유율과 패스워크에 쓰느냐(스페인), 압박에 쓰느냐(독일)의 차이로 서로 다른 색깔의 축구가 완성됐다. “8강에서 맞붙어도 ‘너무 일찍 만났다’는 소리가 나올 법한 매치업이 조별리그에서 성사됐다”는 팬들의 평가대로였다.
스페인은 90분 동안 636개의 패스(독일은 349개)를 부지런히 주고받으며 꾸준히 높은 볼 점유율(51%-33%)을 유지했다. 독일은 상대적으로 볼을 적게 만지면서도 찬스가 열릴 때마다 적극적으로 역습을 시도해 슈팅 수(독일 8개, 스페인 6개)에서 오히려 앞섰다.
두 나라는 21세기 들어 세계축구 전술의 중요한 조류를 만든 나라들이다. 스페인이 잦고 빠른 패스워크 위주의 플레이로 볼 점유율을 끌어올려 경기 흐름을 지배하는 ‘티키타카’ 전술로 먼저 세계를 제패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정상에 오르며 패스축구로 세계를 제패했다.
독일은 스페인식 점유율 축구를 무너뜨리기 위해 강력한 압박과 파괴적인 역습에 기반을 둔 ‘게겐프레싱’을 창조했다. 상대가 볼을 잡으면 여러 방면에서 신속하게 에워싸 공과 사람의 이동 통로를 사전에 차단했다. 볼을 빼앗은 후엔 과감한 역습으로 득점을 노렸다. 브라질이 정상에 오른 2014년 브라질월드컵은 압박 위주의 축구가 정점에 오른 시기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나란히 조별리그 탈락(독일)과 16강(스페인)으로 자존심을 구긴 두 나라는 4년 뒤 카타르에서 하이브리드 축구를 선보였다. 각자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서로의 특징을 흡수한 형태다. 스페인은 지배하며 압박했고, 독일은 압박하며 지배했다. 승부를 가른 차이는 완성도였다.
양 팀이 치열하게 맞붙는 동안 팬들도 둘로 나뉘어 뜨거운 응원전을 펼쳤다. 남측 스탠드를 장악한 스페인 팬들이 ‘에스파냐(Espana·스페인의 스페인어식 표기)’를 연호하면 북측 독일 팬 밀집 구역에서 어김없이 ‘도이칠란트(Deutschland·독일의 독일어식 표기)’를 외치는 소리가 뒤따랐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간발의 차로 승리를 놓친 스페인 팬들이 아쉬움의 탄성을 내질렀다. 마치 승리한 것처럼 활짝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독일 팬들의 모습과 오버랩됐다.
알코르(카타르)=송지훈 기자 song.ji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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