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진격의 오일 머니

김경택 2022. 11. 28.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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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발의 달인 하석주, 삼손 김주성, 적토마 고정운. '발이 빠른 변병주'를 발 빠른 선수에게 뒤질세라 빠른 속도로 발음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던 국가대표팀 축구 중계는 재미있었다.

프로레슬링 선수에게 붙을 법한 과장된 별명을 단 축구 영웅이 총출동하는 월드컵 경기 시간에는 고등학교 수업까지 중단됐었다.

게다가 중동 국가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선 거대한 사원처럼 우뚝 선 경기장이 시선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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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택 경제부 차장


왼발의 달인 하석주, 삼손 김주성, 적토마 고정운…. ‘발이 빠른 변병주’를 발 빠른 선수에게 뒤질세라 빠른 속도로 발음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리던 국가대표팀 축구 중계는 재미있었다. 프로레슬링 선수에게 붙을 법한 과장된 별명을 단 축구 영웅이 총출동하는 월드컵 경기 시간에는 고등학교 수업까지 중단됐었다. 이번 카타르월드컵에는 별칭을 굳이 붙이지 않더라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선수들이 포진한 한국 대표팀이 출전했으니 몰입감은 한층 고조된 상태다. 게다가 중동 국가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월드컵에선 거대한 사원처럼 우뚝 선 경기장이 시선을 끌고 있다. 곡선의 미를 뽐내며 냉방 시스템까지 갖춘 웅장한 경기장은 천문학적 자본이 투입된 결과다. 카타르가 월드컵에 퍼부은 돈은 무려 2200억 달러(약 295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오일 머니’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카타르는 왜 월드컵 유치에 목숨을 걸었을까. 카타르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 이어 올해 월드컵뿐 아니라 내년 아시안컵 대회를 여는 등 국제 스포츠 이벤트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석유와 천연가스 판매 수입만으로 복지 천국의 대열에 선 카타르가 경제개발계획을 밀어붙이듯 스포츠 축제에 목매는 건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카타르 국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의 복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말 그대로 부러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들일 것 같은데 말이다. 카타르가 무슨 사회공헌단체도 아니고 코로나에 지친 지구촌을 위로하려고 월드컵을 준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카타르의 월드컵 유치 과정은 스포츠 정신과는 거리가 한참 먼 누아르에 가까웠다. 월드컵 유치를 위해 국제축구연맹(FIFA) 관계자들에게 수백만 달러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었다.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인권 침해였다. 경기장 건설에 투입된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해야 할 정도로 땅에 떨어졌다. 영국 가디언은 2011~2020년 최소 6500명의 이주 노동자들이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 사망했다는 조사 결과를 보도했다. 물론 이 보도는 주로 대사관 기록을 근거로 했으며 사망자 부검 결과까지 확보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카타르 정부는 경기장 건설 현장에서 37명이 사망했다면서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다. 37명 중 3명은 업무상 사고로, 34명은 기타 원인으로 분류됐다. 아랍권에선 자기들 문화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으려는 유럽의 왜곡된 시선이라는 불만도 터뜨린다.

그러나 6500명이건 37명이건 네팔 등 이방인 노동자들이 스포츠 축제에 대거 동원돼 희생당한 사실엔 변함이 없다. 뙤약볕 아래에서 비위생적 수용 시설을 견디며 고된 노동을 강행한 결과가 참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경기도보다 조금 넓은 국토 면적을 갖춘 카타르에 국제 규격 경기장 8개에다 공항·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를 새로 짓거나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일은 좀 과해 보인다. 벌써 최대 적자 대회로 카타르월드컵을 지목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그럼에도 스포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를 향한 오일 머니의 러시는 더 거세질 전망이다. 카타르의 이웃 사우디아라비아는 서울의 40배가 넘는 ‘네옴 시티’ 건설을 추진 중인 데다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까지 노리고 있다. 이는 결국 신재생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을 앞두고 새로운 경제 모멘텀을 찾으려는 중동의 장기 전략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자재 판매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에 관광·서비스 산업 비중을 늘려가겠다는 청사진에 따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제2의 중동 특수가 될지, 결국 현대판 피라미드 건설에 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경택 경제부 차장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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