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욱의 미래를 묻다] 혁신창업하려면 기술사업화 전문회사 육성해야

입력 2022. 11. 28. 00:39 수정 2022. 11. 2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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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학의 미래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대학은 생각할수록 흥미롭다. 기본적으로는 성인이 공부하는 곳이다. 연구도 한다. 지식을 전수할 뿐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각종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대학병원은 의료체계의 중추를 담당한다. 대학의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정부에 참여하기도 한다. 교수는 월급쟁이지만 근무 시간이 따로 없고 근로자로 인정되지 않는다. 연구비를 따서 연구실을 운영하고 대학원생과 연구원들에게 인건비를 주니 교수는 자영업자와 비슷하다. 다른 나라 대학의 모습도 대동소이하다.

「 교육·연구 넘어 창업까지 역할 확대
기대치 미국 수준이나 현실은 참담
등록금 동결, 의무 강의시수 등으로
대학 손발 묶은 채 혁신 주문은 모순

혁신창업 모체로 주목받는 대학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경기도 성남 분당서울대학교병원 헬스케어 혁신파크에서 열린 제4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 앞서 아이엠지티 연구소를 방문해 췌장암 치료목적의 세계 최초 집속초음파 장비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

최근 대학이 혁신창업의 모체로 주목받고 있다. 교수·연구원 또는 학생이 기술과 아이디어를 가지고 직접 회사를 차리는 것이다. 대학 발(發) 스핀오프(spin-off)다. 랩벤처(lab venture)·교원창업·연구실창업, 대학기술지주회사 자회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다 같은 것이다.

대학이 이리 다채로운 모습을 갖게 된 것은 지난 수백 년 진화의 결과다. 오늘날의 서구식 대학 체제는 중세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이탈리아 볼로냐 대학교가 1088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가 1096년,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가 1150년에 각각 설립되었다. 중세 대학은 학문 분야에 따라 학과를 두고 학업 성취를 인정하는 학위제를 만들었다. 자격을 갖춘 학자에게 교수직을 맡기고 신분을 보장한 것, 교수가 강의뿐 아니라 대학 행정을 담당하는 것 모두 중세 대학에서 정착된 것들이다.

현대적 대학으로의 변화는 19세기 독일과 미국에서 촉발되었다. 연구 기능이 강조되어 교육과 연구를 포괄하는 대학 모형이 등장했다. 전문직을 위한 직능교육이 이루어지고, 중산층 교양인과 근대국가의 민주시민을 양성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공과대학의 틀이 잡혀 기계공학·금속공학·화학공학과 같이 산업 분야에 따른 학과들이 설치되었다. 도제식으로 양성되던 중세의 장인은 사라지고 대량생산 체제에 걸맞은 대졸 엔지니어의 시대가 열렸다.

20세기 중반 이후 선진국에서부터 고등교육이 대중화되었다. 정부는 대졸자가 많을수록 성숙한 사회라 믿어 대학을 신설하고 진학을 장려했다. 국제기구는 대학 진학률을 사회발전의 주요 지표로 설정했다. 대중화로 대학은 성장을 얻고 특별함을 잃었다. 대학은 더는 상아탑이 아니다. 지식 탐구의 자유는 여전히 보장되지만, 세속적으로 유익한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대학도 민간 기업과 마찬가지로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성과를 내고, 서로 경쟁해야 한다. 나아가 산업기술을 공급하고, 직접 돈을 벌고,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요구된다.

대학도 성과 내고 서로 경쟁하는 시대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 사회의 모든 부문이 그렇듯 국내 대학은 서구 대학들이 수백 년간 이룬 진화를 7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겪었다. 과학기술원을 예외로 하면, 1980년대 중반까지 국내 대학은 강의 위주의 대학이었으며 정부 연구지원도 적어 대학원 연구 기능이 미비했다. 1990년대 들어 정부 연구개발 지출이 급증했고, 1999년 교육부의 두뇌한국21(BK21) 사업으로 대학원이 활성화되어 국내 대학이 국제적 수준의 논문을 내기 시작했다. 대학이 기술이전과 사업화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화한 산학협력법(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은 2003년 9월에 시행되었다. 대학에 지식재산권 관리와 기술사업화를 담당하는 산학협력단이 설치된 것은 이 법 시행 이후다. 우리나라 대학들이 본격적으로 연구에 나선 것은 약 30년, 기술사업화에 나선 것은 20년이 채 되지 않았다.

대학에 바라는 눈높이는 미국 스탠퍼드대나 영국 케임브리지대에 맞춰 있는데 현실은 어떨까. 정부 연구비를 받은 대학이 원천기술을 발명해 특허를 내고, 이것을 거액을 받고 기업에 이전하거나 창업해 유니콘 기업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상상이다. 현실은 녹록지 않다. 2021년에 서울대는 약 4853억원의 정부 연구비와 약 1083억원의 산업계 연구비를 받아 국내 대학 중 최대인 총 5936억원 규모의 연구를 수행했다. 기술이전 수익은 72억 6000만원이었다. 전년도의 66억 4000만원보다 증가한 것이다. 대학 연구에서 특허가 나오기 힘든 기초연구 비중이 크다는 점을 고려해도, 이 수치를 처음 접한 독자는 실망감을 감추기 힘들 것이다. 재정에 별 보탬에 되지 않으니 대학은 기술이전보다 신규 연구과제 수탁이나 다른 수익사업에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우리보다 10여 년 앞서 미국식 산학연협력 모델을 도입한 일본과 비교해 한국의 공공연구 부문 기술이전과 창업 건수가 더 많다는 사실은 놀라운 반전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미국·영국·북유럽의 몇몇 최우수 대학들을 빼면 한국 대학들의 산학협력 성과는 대단한 수준이다. 세간의 평가와 달리 한국 대학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며, 변화에 대한 저항이 약하고,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편이다. 한국 산업계는 대졸 이상의 채용에서 외국인보다 내국인을 선호한다. 특유의 과노동 문화도 이유일 것이다. 기업은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에 접근하는데, 정부의 산학협동 연구과제는 연구와 채용에 있어 일석이조다. 한국의 진정한 산학협력은 통계로 나타난 기술이전이 아니라 연구인력 양성과 연구용역, 그리고 공동연구에 있다. 일반적으로 연구용역과 공동연구의 경우 특허를 출원할 때 기업소속 연구원이 공동발명자, 회사가 출원인이 되므로 기술이전 계약이 필요 없다. 보이지 않는 기술이전이다. 노하우 이전도 계약으로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혁신 창출에는 공식적 계약보다 비공식적 관계가 더 주효하다.

성공사례 누적…창업 나서는 대학교수 늘어

겸직허용 등 교원창업에 우호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고 동료들의 성공 사례가 누적되면서 창업에 나서는 교수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교수는 여전히 창업보다 논문 쓰기를 좋아한다. 교수는 사업의 위험 감수에 능한 사람들이 결코 아니다. 비즈니스에 필수인 사회성도 부족하다. 대학의 사회적 기능 중 하나가 똑똑하지만 조직생활에 부적합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교수라는 본업이 보험이라 죽기 살기로 뛰지 않는 건 약점이다. 정부 연구과제에 익숙해, 시장이 원하는 혁신에 둔감하다는 지적도 있다. 노사관계를 사제관계와 혼동하다 인사 문제로 고생하는 사람도 보았다. 대학의 혁신창업은 성공하기가 지극히 어렵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들은 그야말로 예외적으로 특출난 멀티플레이어들이다.

기술이전과 창업을 도울 전문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박봉의 산학협력단 계약직 몇 명에게 실무만 맡겨 놓고, 그나마도 일이 손에 익을만하면 정규직 전환이 두려워 내보내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유능한 기술사업화 조력자는 연구단계에서부터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보고 팔릴만한 특허로 키워낸다. 혁신창업은 연구자와 사업가, 두 역할이 모두 중요하다.

대학이 혁신 주체로 거듭나야 한다는 주문에 ‘지식의 전당이 자본주의로 물든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왕 물든 것을 피할 수 없다면 시장 자본주의를 제대로 해야 한다. 등록금 동결을 비롯해 각종 규제로 대학을 꽁꽁 묶어 놓고 혁신을 주문하는 건 자가당착이다. 교원 임용과 업적평가에서 여전히 SCI 논문 수를 따지고, 의무 강의 시수를 법에 못 박아놓고 창업에 나서라고 등 떠미는 것도 모순이다. 산단 지분 100%인 대학기술지주회사의 경직된 체제도 손봐야 한다. 현금 출자, 외부 자금 유치, 인큐베이팅까지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술이전은 산단, 창업은 대학기술지주회사로 이원화된 구조를 기술사업화 전문회사로 일원화하고, 시장원리를 적용해 특정 대학에서 벗어나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리고 대학 외부 스타트업에도 투자하는 등 혁신창업 생태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K대 기술사업화전문회사가 일을 잘하면 서울대의 기술사업화 업무를 위탁하는 식이다.

대학이 혁신창업에 나서야 한다는 규범적 담론이 무성하다. 대학은 원래 그런 것을 잘하는 데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고 대학도 변해야 한다. 대학을 욕하기는 쉽다. 학문의 자유라는 특권을 누리는 대학은 억울해도 말이 없다. 혁신 주체로 거듭나야 할 대학이 고등교육기관이라는 고전적인 틀에 갇혀 있다. 대학을 옭아맨 낡은 틀을 부숴야 한다.

박상욱 서울대 과학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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