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빈곤’ 길어지면 배는 어디로

입력 2022. 11. 27. 20:57 수정 2022. 12. 20.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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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의 정치 읽기]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월 18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왜곡 보도라고 주장하는 MBC의 비속어 논란 보도와 11월 20일 도어스테핑 당시 MBC 기자의 태도를 이유로 들어 도어스테핑을 잠정 중단했다고 밝혔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는 전략적으로 잘한 선택은 아니다. 비속어 논란을 MBC가 보도했을 당시의 행태, 그리고 미 국무부가 MBC 특파원 질의에 “한국과 우리의 관계는 끈끈하다”고 회신했지만 보도하지 않은 것 등, MBC 행태에 동의하지 않는 기자도 분명 있었을 테다. 하지만 순방 때 MBC 기자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나 MBC 기자의 ‘무례’를 이유로 들어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행위는, MBC에 대해 비판적 시각이나 문제의식을 가졌던 기자조차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유와 경위가 어떻든 대통령실의 언론에 대한 행동을 보고도 MBC 측을 비판하는 기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도어스테핑은 윤석열 정권의 가장 긍정적인 상징 중 하나였다. 단순히 기자들과의 약식회견이라는 의미 이상을 내포하는 정치 행위였다. 정부 운영의 투명성을 담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기자들이 대통령에게 매일 현안을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답변과 상관없이 대통령과 정부 구성원에게 일종의 ‘압박’으로 작용해 국정을 운영함에 있어 더 ‘조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어스테핑을 반대하는 측은 도어스테핑이 자주 논란거리를 제공하니 그만두는 것이 지지율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편다. 근거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윤석열 정권만 보지 말고 대한민국 미래를 보는 긴 안목에서 평가해야 한다.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도어스테핑의 장점을 생각하면 지금을 과도기로 생각하고 문제를 개선할 생각을 해야지, 중단해서는 안 된다.

윤 대통령은 정통 보수에서 나온 대통령이 아니다. 본인의 정치사적 입장을 잘 파악해, 비록 힘들더라도 필요한 일은 몸소 실천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대통령실의 이번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 조치는 전략적으로나 명분 차원에서나 잘한 일은 아니다.

전략적 빈곤에 시달리기는 야당도 마찬가지다. 진보 매체에 의한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대해 민주당은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단지 “(명단 공개) 분위기를 조장한 건 민주당은 아니다”라고 항변할 뿐이다. 이뿐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유가족을 찾고 영정도 모시고 위패도 제대로 찾고 사죄해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이런 민주당 행위가 여론 지지를 받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아직 찾아볼 수 없다. 11월 18일 발표된 한국갤럽 정례 여론조사(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조사, 응답률은 9.8%, 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국민의힘과 민주당 지지율은 11월 첫째 주부터 변화가 없다. 집권 여당이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는 문제와 사건이 발생해도, 민주당은 대안 세력으로 인식될 정도의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야 3당은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국민의힘은 11월 23일 오전까지만 해도 국정조사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국정조사 실시에 전격 합의했다. 야당의 단독 국정조사에 대한 ‘부담감’과 여당의 상황 인식과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계산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일 테다.

여당의 상황 인식과 향후 정치 행보를 생각한 결과라는 점을 분석해보면 이렇다.

민주당은 국정조사만이 아니라 특검도 동시에 요구했다. 여당 입장에서는 특검보다는 국정조사가 낫다.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법에 의한 특검은, 일단 특검 구성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특검이 출범하고도 상당 기간 수사를 해야 한다. 당연히 참사 정국이 길어질 수 있다. 때문에 국정조사를 받아들여 야당의 특검 주장을 막고, 참사 정국을 이른 시간에 정리하는 것이 합리적이기는 하다.

야당의 ‘부담감’은 이렇다. 그동안 야당이 단독으로 밀어붙인 일에 대한 역풍이 상당했다. 공수처법이나 부동산3법 등을 단독으로 처리한 후 여론이 매우 좋지 않게 흘렀고 결국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했다. 이뿐 아니라 야당이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진행하면 야당은 최소한 경찰 수사 결과보다는 나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부담도 생긴다. 여당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조사를 했는데 결과가 변변치 않으면 참사를 정쟁 수단으로 삼았다는 비난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강행할 경우, 자신들을 향한 검찰과 여론 시선을 분산하기 위한 정치 행위라는 비난을 받을 우려도 있다.

민주당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리스크고, 다른 하나는 사업가 박 모 씨와 현재 구속 상태인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으로부터 비롯되는 민주당 정치인에 대한 ‘각종 의혹’이다.

현재 이재명 대표 두 측근은 모두 구속됐다.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 정무실장이 구속된 직후인 11월 19일 이재명 대표는 “유검무죄, 무검유죄다. 조작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검찰의 무리한 조작 수사’라는 입장이다. 검찰의 칼날이 이재명 대표 턱밑까지 올라왔다는 분석이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반발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은 이런 주장에 얼마나 동의할까. 구속됐다는 것은 검찰만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사법부도 그렇게 판단했다는 의미다. 사법부와 준사법부의 종합적 판단을 두고 검찰의 조작 수사라고 주장하면, 법원도 검찰의 조작에 가담했다는 것인가. 정진상 실장이 이재명 대표 핵심 측근이고 민주당의 주요 당직자라는 차원에서 어느 정도 당 차원의 방어를 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의혹이 발생할 당시 정 실장은 당원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대표 역시 성남시장 재직 시절의 일이다. 따라서 당 차원에서 총력전을 펼치며 방어막을 펼칠 이유가 충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업가 박 모 씨 관련 의혹이나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취업 관련 의혹에 당이 총력 대응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해당 사안은 이재명 대표 관련 사건보다 민주당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이다. 자칫 총력 대응할 곳을 헷갈리면 ‘이재명 대표를 위한 정당’이라는 비난도 들을 수 있다.

대통령실도 민주당도 전략적이지 못한 상황에서는, 여야 간 대립이 극단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다. 전략적이라면 서로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을 텐데, 전략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감정이 대신하고 극단적인 갈등만 초래된다. 정치는 이성적인 과정이어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86호 (2022.11.30~2022.1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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