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승섭의 금융라이트]장·단기 금리역전과 경기침체

송승섭 입력 2022. 11. 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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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금리 따라 움직이는 단기채권 금리
장기채권 금리는 '향후 경기전망' 영향
금리역전 때마다 찾아온 세계 경기침체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미국의 장기·단기 채권 금리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언론에서도 ‘위기징조’라며 보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채권의 기간에 따라 왜 금리차이가 발생할까요? 금리 차이가 어떻길레 위험하고 위기라고 말하는 걸까요?

오래 빌려줄수록 대가는 비싸다

채권(債券)은 빚·부채를 의미하는 채(債)와 계약서를 뜻하는 권(券)이라는 말로 이뤄져 있습니다. 회사나 국가, 개인이 돈을 빌렸다는 사실을 적어두기 위해 만드는 증서죠. 쉽게 말해 빚을 문서화한 증서입니다. 채권에는 얼마를 빌렸는지, 몇 퍼센트 금리로 이자를 줄 것인지, 언제까지 갚을 것인지가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채권이 금리가 높을까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간’이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러분에게 돈을 빌려 간 사람이 하루 뒤에 갚기로 약속했다면 어떨까요. 크게 불안하지 않겠죠. 24시간만 기다리면 돈을 받아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1년 뒤에 돈을 갚겠다고 하면요? ‘1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데 내 돈 못 받는 거 아냐?’ 하는 생각이 들겠죠. 내 돈이 떼일 위험은 장기 채권일수록 더 큽니다. 그래서 이자율은 통상 장기채권이 더 높습니다.

물론 단기와 장기를 나누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도 굉장히 긴 시간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1년도 금방 지나간다고 생각하니까요. 경제학에서는 통상 1년을 기준으로 단기와 장기를 나눕니다. 중요한 세계경제 지표로 여겨지는 미국채권의 경우 장·단기를 구분할 때 10년·2년짜리를 살펴보고요. 한국에서는 3년짜리 채권과 91일짜리 채권을 비교해 살펴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단기 금리는 왜 바뀌는 걸까?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그렇다면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의 금리는 어떻게 바뀔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수요와 공급입니다. 사람들이 장기채권을 많이 사면 가격이 오르므로 금리(수익률)가 떨어지고요. 단기채권이 많이 공급되면 가격이 내려가니 단기채권의 금리가 오르는 거죠. 수요와 공급은 시중에 풀려있는 유동성, 신용등급, 발행 규모 등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끼치겠죠. 기준금리에 따라 바뀌기도 합니다. 채권을 발행할 때도 기준금리를 참고하기 때문에, 기준금리가 오르면 채권금리 역시 상승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장기금리와 단기금리가 항상 같은 속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거죠. 기준금리는 모든 경제주체에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이 받는 영향이 다릅니다.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려 3%로 정했다고 생각해볼까요? 1년 뒤에 돌려받는 미국 채권상품은 아마 영향을 크게 받을 겁니다. 채권 투자자들은 1년 뒤에도 최소한 미국 금리가 3% 내외일 가능성이 크니 채권금리도 그 정도는 되어야 살만하다고 판단하겠죠. 그래서 단기채권금리는 기준금리에 따라 크게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장기채권은 다릅니다. 10년 뒤 미국의 기준금리가 얼마인지 예상할 수 있을까요?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0%대 저금리 정책을 펼칠 수도 있고, 그 정반대일 수도 있죠. 지금의 기준금리 인상이 10년 뒤에 끼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적은 셈입니다.

경기전망 나쁠수록 장기채 금리는 하락

자료: 한국개발연구원(KDI)

그래서 투자자들은 10년 뒤 경기상황을 가지고 추측하려 합니다. 경기 전망이 좋다면 사람들은 안정적인 채권을 팔아치우고 수익률이 높은 주식을 삽니다. 채권 수요가 줄면서 채권가격이 내려가니까 채권금리가 오르죠. 반대로 경기 전망이 어두우면 안정적인 채권을 사들입니다. 주식과 달리 채권은 언제까지 이자를 얼마나 받는지 명확히 나와 있기 때문에 경기 전망이 암울하면 투자자들이 안전한 채권을 사는 겁니다. 그렇게 채권을 사들이면 채권가격이 오르겠죠(채권금리 하락).

공급요인도 큰 영향을 받습니다. 경제전망이 나빠지면 기업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채권을 찍어내려 하지 않겠죠.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흔들릴지 모르는데 채권을 발행해서 돈을 빌리는 기업이 있을까요? 장기채권의 공급이 줄어들면 장기채권의 가격은 치솟게 됩니다. 즉 장기채권의 금리가 확 떨어졌다는 뜻이죠. 정리하자면 경기 전망이 좋으면 장기채권 금리가 오르고, 경기 전망이 나쁘면 장기채권 금리가 내려갑니다.

장기채권과 단기채권의 금리가 서로 다른 요인에 의해 다른 속도로 움직이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요? 단기채권 금리가 장기채권 금리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발생합니다.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면서 단기채권 금리가 확 올랐는데, 경기 전망이 어두워 장기채권 금리가 조금만 오르거나 거꾸로 내려가는 거죠. 앞서 말했듯 돈을 빌려준 기간이 길수록 이자가 세기 때문에 장기채권이 단기채권보다 금리가 높은 게 일반적입니다.

장·단기 채권의 금리가 역전되는 걸 시장은 심각하게 받아들입니다. 우선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경기가 진짜로 나빠질 수 있습니다. 금융기관에서 자금을 공급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채권을 발행해 돈을 모으고 이걸로 대출을 해줍니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단기채권으로 자금을 모읍니다. 하지만 대출은 장기간 이뤄집니다. 수십년간 돈을 빌려주는 금융상품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단기금리가 높고 장기금리가 낮으면 어떻게 될까요? 비싼 돈으로 자금을 끌어 모았는데 순이자마진이 줄거나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기관은 자금공급을 꺼리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자금경색 위험이 커지는 거죠.

장·단기 금리 역전되자 찾아온 경기침체

장·단기 금리차가 0보다 낮아졌을 때 경기침체(회색음영)가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통계.

무엇보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면 큰 경기침체가 왔습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경기침체는 1962년 이후 총 7차례 있었는데 1960년대를 제외한 6번의 사례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관측됐습니다. 첫 역전 현상 이후 5~23개월 이후 실제로 경기침체가 시작됐다고 하죠. 1980년대 오일쇼크, 2000년대 닷컴버블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큰 폭의 장·단기 금리 역전이 있었습니다.

최근 상황도 장·단기 금리 역전이 크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난 25일 기준 한국채권 10년물과 3년물의 금리 차는 -0.067%포인트입니다. 장기채권보다 단기채권 금리가 더 높다는 거죠. 지난 23일 미국의 장·단기 금리차는 -0.076%포인트였죠. 2008년 금융위기 때도 차이가 -0.011%포인트였음을 고려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겁니다.

블룸버그는 이달 초 “장단기 금리차가 이번처럼 극단에 달한 것은 1981년 이후 본 적이 없다”며 “역사적으로 장단기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로 가는 길을 뜻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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