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의혹’ 추기경, 교황과의 통화 몰래 녹음까지…
녹취록에는 ‘테러 조직에 수녀 몸값 지급’ 등 내용 담겨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교황청 국무장관 대리와 시성성 장관을 지내 바티칸 핵심 인물로 손꼽혔던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 추기경이 자신의 재판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몰래 녹음한 사실이 알려졌다.
25일(현지시간) AFP 통신과 CNN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현지 언론은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73·이탈리아) 추기경이 지난해 7월 24일 교황과 전화 통화에서 나눈 대화를 담은 녹취록을 입수해 내용을 공개했다. 통화는 베치우 추기경의 횡령·직권남용·위증교사 등 혐의와 관련한 재판이 시작되기 사흘 전 이뤄졌다. 베치우 추기경의 숙소에서 스피커폰으로 이뤄진 통화는 추기경의 친척으로 알려진 제3자가 녹음했다고 전해졌다. 이 녹취록은 지난 24일 바티칸 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증거물로 제출됐다.
교황과의 통화에서 추기경은 2017년 아프리카 말리에서 피랍된 콜롬비아 국적 글로리아 세실리아 나바레스 수녀의 몸값 지급과 관련해 "그 수녀가 풀려나도록 하기 위한 작전을 개시할 권한을 내게 줬습니까? 아닙니까?"라고 교황에게 물었다. 이어 그는 "우리는 몸값을 50만달러(약 6억7000만원)로 정했고, 테러범의 호주머니에 들어가는데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은 부도덕하므로 더는 안 된다고 말한 것 같은데 기억하십니까?"라고 연달아 물으며 대답을 재촉했다. 통화 당시 결장 협착증 수술을 받고 퇴원한지 10일째였던 교황은 이런 내용이 '희미하게' 기억난다고 말하면서 확인이 필요한 사항을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추기경에게 말했다.
첼시 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2011~2018년 교황청 국무장관 대리로 재직하는 동안 매일 교황을 알현하는 최측근이었던 베치우 추기경은 교황청 재정에 1800억 원이 넘는 손해를 떠안긴 영국 런던 첼시 지역 고급 부동산 매매 비리 사건에 깊이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사건은 교황청의 방만하고 불투명한 재정 운영 문제를 드러냈으며, 특히 전 세계 신자들이 보낸 헌금인 '베드로 성금'이 투자 밑천이 됐다는 점에서 가톨릭 교회 안팎의 비난 여론이 컸다. 원래 베드로 성금은 교황의 사목 활동 자금으로, 전 세계 분쟁·재해 지역 주민·빈곤층 지원에 쓰여야 한다. 결국 베치우 추기경은 지난해 7월 부동산 매매 브로커를 비롯한 다른 피의자 9명과 함게 재판에 넘겨졌으나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추기경은 2020년 9월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갑작스레 사임했으며 교황청은 성명서에서 "교황은 베치우 추기경이 제출한 사직서를 수락했다"고만 밝혔다. 베치우 추기경은 사임에도 추기경직을 유지하지만, 차기 교황 선출을 위한 투표(콘클라베)에는 참가할 수 없다.
베키우 추기경은 이밖에도 교황청을 위한 비선 외교 활동 명목으로 '안보 컨설턴트' 를 자칭한 체칠리아 마로냐에게 57만5000유로(약 8억원) 상당의 교황청 자금을 지급한 혐의도 받고 있다. CNN은 추기경이 국제테러 관련 전문기업인 영국 잉커먼 그룹에 피랍 수녀 석방을 위한 비용을 지급하려던 것이라면서, 교황에게 횡령 혐의로 함께 기소된 마로냐에 대한 자금 지급을 승인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길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녹취록에서 언급된 피랍 수녀 글로리아 세실리아 나바레스는 지난해 10월 9일 풀려났으며, 알카에다와 관련 있는 현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에 납치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교황청은 지난 7월 미국계 사모펀드 그룹 '베인 캐피털'에 문제의 영국 런던 부동산을 매각하는 절차를 종료했다고 밝혔다. 매각액은 1억8600만 파운드(약 2909억원)다. 교황청은 2014년 해당 부동산을 매입해 총 3억5000만 유로(약 4747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18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봤다. 바티칸은 구체적인 손실액은 공개하지 않고 그저 런던 부동산 매매에 따른 손실 전액을 예비기금으로 충당했다고만 밝혔다. 앞서 바티칸 사법당국은 2년간의 수사를 거쳐 지난해 7월 베치우 추기경을 포함한 총10명을 재판에 넘겼는데, 이들 가운데에는 부동산 매입·운영 과정에서 부당 이익을 챙긴 브로커, 거래의 부적절성을 인지하고도 눈감고 넘어간 바티칸 금융감시기관 고위 간부 등이 포함돼 있다.
김현정 기자 khj2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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