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빼미’, 역사적 맥락에 상상력 넣으려 했어요” [쿠키인터뷰]
밤에만 앞을 보는 맹인이 뭔가를 목격하는 이야기. 한 줄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역사와 만나 비로소 빛을 봤다. ‘세자는 본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병을 얻었고 병이 난 지 수일 만에 죽었는데, (중략) 마치 약물에 중독되어 죽은 사람과 같았다.’ 인조실록에 담긴 한 줄 역사에 영화적 상상이 더해져 스릴러 사극 영화 ‘올빼미’(감독 안태진)가 탄생했다. 이야기 한 편에 4년 동안 매달린 안태진 감독의 노력이 드디어 빛을 봤다. 지난 23일 개봉한 ‘올빼미’는 개봉 첫날부터 10만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을 한 주 앞뒀던 지난 16일 안태진 감독을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이력부터 범상치 않다. 2004년 영화 ‘달마야, 서울가자’(감독 육상효) 연출부로 영화게에 발을 들인 그는 2005년 영화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조감독 이후 17년 만에 ‘올빼미’로 자신의 첫 영화를 찍었다. 꾸준히 시나리오를 고쳐 쓰며 때를 기다린 그는 4년 전 주맹증(밝은 곳에서 사물을 분간 못하는 증상) 아이템을 제안 받았다. 병자호란 이후 배경, 침술 등 살을 붙여 스릴러로 발전시켰다. 맹인 침술사가 세자의 죽음을 목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배우 유해진이 인조 역을, 류준열이 침술사 경수 역을 맡았다. 최무성, 조성하, 박명훈, 김성철, 안은진, 조윤서 등이 합류했다.
‘올빼미’는 주맹증과 맹인의 시선을 표현한 색다른 연출 기법과 이야기의 서스펜스가 잘 살아있는 영화다. 세세한 고증에도 신경 쓴 흔적이 가득하다. 역사를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였단다. 안태진 감독에게 ‘올빼미’와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기사에 ‘올빼미’ 중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Q. ‘왕의 남자’ 조연출을 거쳐 ‘올빼미’로 감독 데뷔전을 치렀어요. 감회가 어떤가요.
“하하. 특별할 건 없어요. 그저 치열하게 준비했죠. 사극은 준비해야 할 게 많은 장르입니다. 촬영 시간도 더 걸릴 수밖에 없고요. 쉽지 않은 작업이었어요. ‘왕의 남자’ 스태프로 참여했던 경험에 기댔죠. 이준익 감독님이 촬영 첫날 현장에 오셔서 슬레이트를 쳐주셨어요. 사극을 만드는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어요. 사극은 특히나 더 책임감을 갖고 만들어야 하잖아요. 역사적 맥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상상력을 틈틈이 끼워 넣는 작업을 해나갔어요.”
Q. 주맹증 환자의 시야를 보여준 연출과 클로즈업을 적절히 활용한 구성이 인상 깊었어요.
“시야를 이해해야 했어요. 주맹증 환자분들에게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조명과 톤을 잡아갔어요. 경수(류준열)가 앞을 못 보는 상태일 땐 사운드 효과에 더욱더 신경 썼어요. 클로즈업은 필요한 장면에만 쓰려고 최대한 자제했어요. 감정이 동요하거나 경수가 뭔가를 목격할 때 활용하려 했죠. 남발하지 않은 덕에 효과가 극대화됐어요. 클로즈업이 별로 없는데도 관객분들이 많이들 이야기하시더라고요. ”
Q. 곳곳에 고증을 충실히 거친 흔적이 느껴졌어요.
“맞습니다. 하하. 인조(유해진) 처소 방장부터 의상까지 많은 걸 신경 쓴 영화예요. 역사책과 조선왕조실록 원문을 읽고 인조실록과 병자호란 전후 기록을 꼼꼼히 살폈죠. 융복을 입는 것도 사료를 따른 결과물이에요. 당시 조정에서 병자호란의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군복을 8년이나 입었다더라고요. 영화에서도 인조가 소현세자(김성철)에게 지나가는 말로 ‘내가 이런 옷을 왜 입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냐’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배경 지식이 없으면, 무슨 의미인지 100% 이해할 순 없는 대사죠.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당시 시대상을 찾아보길 바랐어요.”
Q. 영화를 보며 역사를 모르는 관객도 내용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나리오를 다 쓴 뒤 관객이 외국인이라 생각하며 내용을 되짚어봤어요. ‘조선이 청나라에게 안 좋은 일을 당했고, 그래서 인조는 청나라를 싫어한다’는 굵직한 흐름 정도만 보여주고 싶었죠. ‘올빼미’는 어디까지나 스릴러 장르 영화니까요. 관객이 경수 시선을 따라가길 바랐어요. 경수가 뭔가 목격하고 위기에 빠진 뒤 상황을 해결하는 과정을 잘 그리려 했어요. ‘올빼미’는 경수와 인조-소현세자 부자, 두 갈래 이야기로 진행되는 영화예요. 목격자 스릴러와 팩션 사이 균형감을 찾는 것에 주력했어요.”
Q. 캐스팅 과정이 궁금해요. 특히 유해진과는 17년 만에 다시 만났죠.
“유해진 씨와는 인연이 깊어요. 제가 참여한 모든 작품에 출연했거든요. 스태프로 참여한 ‘달마야 서울가자’, ‘왕의 남자’에 이어 연출로 데뷔한 ‘올빼미’까지 함께했어요. ‘왕의 남자’ 이후 십여 년 동안은 교류가 없었지만요. 이번에 시나리오를 보내고 오랜만에 만났어요. 잘 지냈냐는 안부 인사도 없이 바로 작품 이야기부터 나눴죠. 그때부터 이미 눈빛이 인조더라고요. 왕 역할을 잘하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류준열 씨는 다른 촬영 일정 때문에 1년 만에 출연이 성사됐어요. 경수는 극 안에서 감정을 감추지만 관객에겐 드러내야 하는 어려운 역할이에요. 섬세하게 잘 소화하는 걸 보며 감탄했죠. 김성철 씨는 제가 캐스팅했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몰랐어요. 하하. 촬영분을 모니터 하면서도 만족스러워서 키득대곤 했어요. 최무성, 조성하 씨 역시 다면적인 얼굴과 카리스마를 잘 보여주셨어요. 이분들의 존재감에 기댈 수 있어 기뻤어요.”
Q. 배우들의 의견이 작품에 여럿 반영됐다고 들었어요.
“배우들과 시나리오 방향성과 개연성, 재미에 대해 상의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크랭크업 이틀 전까지 시나리오를 고쳤어요. 영화는 시나리오의 구멍을 메우는 작업이에요. 모든 이야기에는 빈틈이 있거든요. 감정선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발전시키다 보면 영화가 완성돼요. 촬영을 시작한 이후에는 베테랑 감독님들을 믿고 갔습니다. 촬영과 조명, 미술, 음향 감독님 모두 잔뼈가 굵은 분들이거든요.”
Q. 치열한 고민 끝에 탄생한 영화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요. 관객에게 당부하고 싶은 게 있을까요.
“‘올빼미’는 주맹증을 소재로 한 만큼 빛과 어둠이 중요하게 작용해요. 작품을 온전히 즐기려면 스크린 앞에서 눈과 귀를 열고 보는 걸 추천합니다.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이잖아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시각이 극대화된 영화예요. 청각 역시 도드라지죠. 음향 시설이 좋은 관에서 보시면 시청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으리라 자부합니다. 부디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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