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덮쳤을때" 친명 박찬대 시 낭송…野의총장 얼어붙었다
지난 22일 국회 본청 예결위원회 회의장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비공개 의원총회에서는 한 편의 시(詩)가 비장하게 낭독됐다. 친명계 박찬대 최고위원이 의총 마무리 국면에서 연단에 나와 독일 반(反)나치 운동가인 마르틴 니묄러(1892~1984년) 목사의 ‘나치가 그들을 덮쳤을 때’라는 시를 읊었다.
박 최고위원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기에”라며 말문을 뗐다. 그는 특유의 발성으로 “그들이 유대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기에”라며 “그들이 내게 닥쳤을 땐, 더 이상 나를 위해 말해줄 이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과거 독일에서 나치가 반대세력을 탄압했을 때 침묵했던 다수의 사회 구성원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다.
박 최고위원이 이 시를 낭송하자 회의장 분위기는 일순간 얼어붙었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은 귀엣말을 하며 수군대기도 했다. 박 최고위원 측 인사는 “누구든 검찰의 표적이 될 수 있으니 ‘원팀’으로 이 사정 정국을 잘 헤쳐나가자는 게 낭송 취지”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되레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재선 의원은 2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당 지도부가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엄호하는 것도 정도껏이다. 박 최고위원이 마치 영혼이라도 판 것 같은 장면이었다”며 “박 최고위원과는 앞으로 정치 행보를 함께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성토했다. 또 다른 의원은 “한심한 장면이었다. 당 지도부가 자꾸 의원들을 상대로 의식화 교육을 시도한다”고 반발했다.
당 지도부에 대한 개별 의원들의 거리감은 지난 16일 의원총회에서도 그대로 표출됐다. 박 최고위원 등 친명계 지도부가 이 대표 최측근 정진상 정무조정실장(구속) 관련 의혹에 대한 반론을 담은 책자를 나눠주자 이낙연계인 홍기원 의원이 “우리가 왜 이런 교육을 들어야 하냐”고 역정을 내기도 했다.
지도부가 ‘이재명 결사옹위’를 외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는 “친명계가 대부분으로 꾸려진 지도부의 태생적 한계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현 지도부는 이 대표 강성 지지층인 ‘개딸’의 지지에 힘입어 이 대표를 엄호하려고 꾸려진 측면이 있다”며 “그렇다보니 당의 전략이 실제 민심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고, 지도부 내에서 확증편향이 지속되고 있다”이라고 지적했다.
뜨거운 쟁점이었던 정진상 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당직 사퇴가 최고위 회의에서 한 차례도 거론되지 않은 점도 확증편향의 사례로 꼽힌다. 이들은 지난 23일 당직 사의 의사를 밝혔는데 그마저도 이 대표는 김 전 부원장의 사의만 받아들이고 정 실장의 사의는 일단 반려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비명계 의원들이 물밑에서 문제를 제기하자, 그제야 이 대표가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 대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비명계가 다수인 전·현직 전략기획위원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지난 11일 민주당 최고위에선 김민석·강훈식·김영진·송갑석·조승래·문진석 의원 등 전·현직 전략기획위원장으로 구성된 ‘전략기획자문위원회’가 발족됐다. 이들은 격주 수요일마다 모임을 갖고, 이 대표에게 조언을 건넬 계획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전략기획위에는 비명계 의원들이 상당수 있어 친명 지도부와는 결이 다른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이 대표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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