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 “모두와 손잡고 달린 ‘약한영웅’, 외롭지 않았어요” [쿠키인터뷰]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 1’(이하 약한영웅)의 오범석(홍경)은 결핍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형태만 다른 갖가지 폭력에 노출돼 속이 늘 곪아있다. 소심하고 조용한 외피 안에는 열등감과 자격지심이 커다랗게 똬리를 틀고 있다. 검게 물든 마음은 이따금씩 그를 뒤흔든다. 창백할 정도로 희멀건 얼굴엔 언제나 작은 불안감이 어려 있다. ‘약한 영웅’에서 범석은 다양한 감정에 잠식돼 있다. 불안정한 소년들의 불완전한 성장담. 이 안에서 범석은 조용한 소용돌이를 몰고 온다.
범석을 연기한 배우 홍경을 2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시종일관 조심스러워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범석을 정의할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범석은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물이다. 동질감, 동경, 인정 욕구, 자격지심, 패배·열등감… 그의 내면엔 늘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온갖 상념이 응축된 마음은 우정과 미움, 애증을 오가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간다.
“작품이 공개된 뒤 감사하게도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어요. 제가 범석이 손을 잘 잡고 걸었는지 생각이 깊어졌거든요. 잘 해냈다는 반응은 제게 큰 위로였어요. 저를 이끌어주신 한준희, 유수민 감독님 덕분이에요. 누군가를 처음부터 끝까지 믿기 어려웠을 텐데도 저를 믿어주셔서 감사했어요.”

당초 홍경은 ‘약한 영웅’ 캐스팅 제안을 거절했다. 대본 속 범석을 표현할 자신이 없었단다. 장고 끝에 출연을 결정한 데에는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한준희 감독의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홍경은 한준희 감독의 전작 넷플릭스 ‘D.P.’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하고도 그는 늘 걱정이 컸다. 현장에 있던 스태프들은 그에게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김영국 촬영감독은 매 장면을 마칠 때마다 홍경을 안아주며 격려했다. 홍경은 “모두와 함께 손잡고 달리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외롭지 않았다”며 애틋한 표정을 지었다.
“범석이가 매번 안타까웠어요. 다른 사람이 범석이를 좋지 않게 생각해도 저는 범석이와 함께 걸어가야 하잖아요. 범석이의 감정을 충실히 따라가려 했어요. 말과 행동, 표정, 목소리를 연구하진 않았어요. 범석이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상태인지를 아는 게 중요했죠. 제가 느낀 걸 고스란히 말하긴 조심스럽지만, 이거 하나만큼은 말할 수 있어요. 모두가 한 번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범석이와 같은 감정을 느껴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홍경은 범석의 변곡점에 따라 세세한 부분을 준비했다. 극 초반 범석이 흰 옷을 입었다면 극 중반엔 검은 외투를 입고, 아버지와 함께하는 장면에선 다시 흰 옷을 입는 식이었다. 움츠러들거나 두려움을 느낄 때와 타락할 때를 극에 스며들 듯 표현하려 한 결과다. 극 중 범석이 숨어있던 옷장에는 그가 어린 시절부터 갖고 있었을 법한 소품들이 눈에 띄었다. 홍경은 “스태프분들의 노고 덕분에 범석이에게 서사가 더욱더 채워졌다”며 의상, 분장, 미술, 소품팀에게 공을 돌렸다.

홍경은 ‘약한 영웅’을 보고 각자 감상평을 주고받는 분위기에 흡족해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시청자들의 감상 활동을 줄곧 언급하곤 했다. “한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참 건강하다고 느꼈어요. 일상에서 각자 생각을 말하면 자칫 다툼으로도 이어지잖아요. 하지만 그 순간에도 모두가 느끼는 건 비슷하다고 봐요. 그럴 때 우리는 화합하고 연대하죠. 요즘 시대에는 특히나 이런 활동이 더 중요해요.” 그에게 범석으로서 시은(박지훈)과 수호(최현욱)에 대한 감상을 묻자 진중한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참 많은 사랑이 있잖아요. 가족, 연인, 친구 사이에도 사랑이 있죠. 형태가 다를지라도 모든 감정은 깊숙한 곳에 존재해요. 범석이에게 시은과 수호는 친구였지만,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만큼 순수한 사랑 아니었을까요? 표현은 그랬어도 마음만큼은 순수했을 거라고 믿었어요. 10대 때는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할 때가 종종 있잖아요. 의지대로 선택하는 게 아니라 휩쓸리는 순간들이 있죠. 범석이에겐 의도보다 스스로도 몰랐던 것들이 있을 거라고 봐요. 때때로 감정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우니까.”
연기는 ‘어떻게’가 아니라 ‘그냥’ 하는 것. 홍경이 머릿속에 늘 품고 있는 지론이다. 순간에 충실하고 솔직하게 임하는 게 답이라고 믿는다. 그 마음으로 범석과 나란히 걸었다. 치열하게 임한 ‘약한 영웅’은 그에게 새 원동력이 됐다. “겁나고 무서우면서도 자꾸 이끌렸어요. 도저히 못할 것 같지만 해야 할 것 같았어요. 알 수 없는 뭔가가 저를 당기는 듯했어요. 그게 저를 연기로 이끄는 원동력 아닐까요? 비록 지금껏 연기하며 단 한 순간도 만족한 기억이 없지만요. 그래도 저는, 연기가 정말 좋아요.”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Copyright © 쿠키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임은정 “李공소취소 메시지 없었다”…정성호 “이야기할 가치도 없다”
- 청와대 “사법시험 부활 검토 보도 사실 아냐”
- “전기차 넘어 AI·로봇으로”…K-배터리 ‘신시장’ 정조준 [인터배터리 2026]
- 정성호 “李 공소취소 거래설? 이야기할 가치 없다”
- 국내 주유소 기름값 하락 전환…국제유가 하락과 더불어 1900원대로
- 중동 불확실성 확대, 범정부 차원 중소·중견기업 지원 본격화
- 李대통령 지지율 56.1%…국민이 본 최대 위기는 ‘정치·사회 분열’ [쿠키뉴스 여론조사]
- 토스뱅크, ‘반값 엔화’ 공식 사과…거래 전량 취소
- 중수청 설치 두고 충돌…與 “수사·기소 분리 보편”, 野 “수사 지휘권 필요”
- 지방선거 앞두고 ‘청년 인재’ 내세운 국민의힘…“국민 삶 바꾸는 해결책 제시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