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복 타고나, '한겨레' 창간위원장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김삼웅 2022. 11. 2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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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 43] 오래 전부터 기대했던 자유언론의 출생에 산파역

[김삼웅 기자]

 198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호. 1면 창간사와 백두산 사진은 한겨레가 지향할 논조를 뚜렷하게 제시했다.
ⓒ 한겨레
 
그는 '일복'이 많았다. 일복을 타고 난 사람 같았다. 작은 체구 어디에서 그토록 열정이 솟구치고, 많은 일(글)을 할(쓸) 수 있었는지 의문이 따른다. 마지 못해 한 일도 있었을 터이고 사명감에서 맡게 된 업무도 많았을 것이다. 다음은 이 시기에 그가 맡은 주요 변론사건이다. 

△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사건 △ 부천서 성고문 규탄대회사건 △ 광주희생자 추모식사건 △ '이부영은닉' 위장사건 △ 목요기도회 설교사건 △ 전북대 총학생회사건 △ 고려대 신문방송연구소사건 △ 백범시해범 안두희 응징사건 △ 호남대 교수 해직사건 △ 6월 민주항쟁사건 △ 민중미술 '진달래' 걸개그림 얼개사건 △ 국회공무원 집단면직사건 △ 안동미사 인권강연사건 △ 남북작가회담 추진사건 △ 한겨레신문 방북취재기획사건 △ 문익환목사 방북사건 △ 임수경양 방북사건 △ '한국근현대민족해방운동사' 사건 △ 전민련 창립선언문사건 △ '기독교와 민족통일' 강연사건 △ 작가 황석영방북사건 △ 북한판 '해방조선' 출판사건 △ 남북작가회담 추진사건 △ 통일운동가의 간첩연계사건 △ '즐거운 사라' 필화사건 △ 구국전위사건 △ 김일성 주석 조문기도사건 △ 역사학 교수의 간첩연계사건 △ '성남외국인 노동자의 집' 사건 △ 불교 인권운동 스님 수난사건 △ 감사원장서리법의 논쟁사건 △ 효성가톨릭대 교수 해임사건 △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사건 등이다.

노태우 정권에서도 민족ㆍ민주ㆍ민중운동에 참여하다 찍히거나 법의 올가미에 걸린 인사들은 그를 찾았고, 그는 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수임료가 많은 대기업의 경제관련 사건의 의뢰는 극구 사양하였다. 아무리 변호사가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 직업이라지만, 그는 자신이 맡아야 할 사건은 분명해보였다.

정치의 극심한 악천후 속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 가장 안타까워한 부분은 언론이었다. 언론이 제대로 시비곡직의 기능만 해도 정부의 상습적인 폭력화 된 권력행사는 자제될 수 있을 터였다. 오래 전부터 자유언론ㆍ민주언론의 존재를 갈망해왔다. 

6월항쟁의 산물로 진보성향의 시민단체가 조직되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전국연합(전국연합) 등이다. 

<한겨레신문>도 그중의 하나였다. 자유언론운동을 펴다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쫓겨난 해직기자들과 1980년 전두환 군부에 의해 추방된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되어 1987년 9월부터 새신문 창간을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마침내 세계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국민주주운동으로 6만여 주주가 힘을 보태어 1988년 5월 15일 창간호를 발행했다. <한겨레신문>이다. 

한승헌은 창간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신문창간에 힘을 보태었다. 그후 창간위원회는 자문위원회로 바뀌고, 사장을 선출하는 경영자문위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오래 전부터 기대했던 자유언론의 출생에 산파역을 한 것이다. 1971년에 쓴 글에서 그의 언론관의 일단을 엿볼수 있다. 

'권부(權府)가 허용하는 자유' 안에서 떠드는 것은 참된 자유가 못된다. '법이 허용하는 자유'를 현실로서 쟁취하기 위하여 저항하는 것이 올바른 자유에의 길이며, 언론의 본분임을 통감해야 한다. 국가의 안보도 궁극적으로는 민주사회를 수호하기 위하여 요청되는 것일진대 근래와 같은 침묵과 추종이야말로 안보의 본말을 전도시키는 언론의 과오라는 것을 지적해두고 싶다. (주석 4)

주석
4> 한승헌, <국리(國利) 개념의 착란과 언론>, <기자협회회보>, 1971년 1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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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대의 양심 한승헌 변호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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