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정치권의 적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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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을 세운다.
정치인 중에 각을 세우는 이미지가 가장 강렬한 사람을 꼽자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정무적으로는 어리석었던 싸움이 정의로웠는지, 또는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국민 각자의 판단이 다르겠으나 최소한 그의 싸움에는 개혁이라는 명분 혹은 열망이 있었다.
요즘도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각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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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을 세운다. 모서리를 뾰족하게 만든다는 사전적 의미보다는 주로 상대와 격하게 대립할 때 쓰는 표현이다. 음악으로 치면 펑크록이 그렇다. 정치인 중에 각을 세우는 이미지가 가장 강렬한 사람을 꼽자면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떠오른다. 그런데 그는 다른 대통령들이 우군으로 삼아 권력을 더 공고히 하고 슬쩍 나누어 썼던 세력들과 맞섰다.
소위 기득권이라고 불리는 집단, 이를테면 검찰, 재벌, 강남 사람들 등등과 계급장 떼고 한번 붙어보려 했다. 그런 모습은 기성세대의 질서와 좌충우돌 부딪치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펑크 로커 같았다. 무모한 시도와 더불어 아슬아슬한 사고를 치는 펑크 로커처럼, 그는 종종 자신의 위치를 위태롭게 만들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을 터. 정무적으로는 어리석었던 싸움이 정의로웠는지, 또는 나라에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는 국민 각자의 판단이 다르겠으나 최소한 그의 싸움에는 개혁이라는 명분 혹은 열망이 있었다.
요즘도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각을 세우고 있다. 이번에는 대상이 언론이라고? 아니. 언론이 아니라 MBC라는 특정 언론사다. 국가의 이익을 해치는 가짜뉴스를 생산한다는 이유로 전용기 탑승을 거부하더니, 취재진 가득한 대통령 출근길에 볼썽사나운 대거리 장면을 만들어 온 국민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각을 세우는 이유가 언론개혁을 위해서일까.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그렇다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필자는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 정권의 언론개혁에도 동의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정권이나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언론을 개혁하겠다는, 감히 그럴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고 오만하다. 정작 개혁해야 할 연금제도나 입시제도는 표가 떨어질까 봐 혹은 능력이 안 돼 손도 대지 못하는 주제에, 참 비겁하다.
덧붙여 말하자면, 개별 언론사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 징계하는 방법은 지금도 많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 등의 기관도 있고 사안이 심각한 경우 소송도 가능하다. 게다가 어느 정권이든 마음에 들지 않는 언론사도 있겠지만 우호적인 언론사들도 있기 마련이다. 정작 언론의 횡포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피해자들은 권력을 갖지 못한 일반 국민인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대통령실이 특정 언론사와 각을 세우는 모습은 비판적인 평론가를 견디지 못하는 꼰대 원로가수처럼 보인다.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는 진영이 또 있다. 야당은 여당이 아닌 검찰과 각을 세우고 있다. 그렇다면 여당은? 대통령실은 검찰 뒤로 슬쩍 빠져 관전평만 내놓고 있다. 정당제도는 여당과 야당이 치열하게 맞서야 의미가 있다. 국가의 안위를 지키고 더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해 싸우라고 여당 야당이 있는 거다. 그런데 지금 여야는 엉뚱한 적과 싸우고 있거나 참전조차 하지 않고 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등 선거철이 되면 승부의 소용돌이에 다른 논의들까지 빨려들어 간다. 바로 지금이 생산적인 담론을 위한 최적기다. 점잖게 담론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논쟁이 치열해져 싸움이 돼도 좋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이 불 보듯 뻔한 미래에 대비하려고, 근절되지 않는 사회적 참사를 막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세제나 병역특례법 개정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면 앞장서서 응원하고 싶다.
대통령실이나 여야 관계자가 이 글을 읽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비롯한 독자들도 소소하게 생각해볼 만하다. 혹여 내가 누군가와 각을 세우고 있다면 그 대상은 적절한가? 그 이유는 타당한가? 싸움 없이 평화로운 삶이라면,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재익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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