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유이상 (8) 박스 공장 인수… ‘풍년기업사’ 이름 걸고 생애 첫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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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박스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할 괜찮은 친구 있으면 좀 소개해 줄 수 있겠나. 이제 막 시작하는 공장인데 관리직 직원을 찾는 분이 있거든."
집주인은 잘 아는 인쇄소 사장이 박스공장까지 하게 돼 사람을 구하고 있다며 소개를 부탁했다.
사장님이 내게 박스공장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인수 대금으로 박스 제조 기곗값 250만원을 지불하고 나이가 많아 은퇴한 자신의 형님에게 월급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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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 나자 사장으로부터 인수 제안 받아
“주변에 박스공장에서 책임자로 일할 괜찮은 친구 있으면 좀 소개해 줄 수 있겠나. 이제 막 시작하는 공장인데 관리직 직원을 찾는 분이 있거든.”
신문 배달을 하며 서울 홍제동에서 형님 가족과 세 들어 살고 있을 때였다. 집주인은 잘 아는 인쇄소 사장이 박스공장까지 하게 돼 사람을 구하고 있다며 소개를 부탁했다. 알고 보니 인쇄소 사장은 박스공장에 인쇄물을 납품했는데 대금을 받지 못하게 돼 그 공장에서 박스 만드는 기계를 가져와 운영하게 됐다는 것이다. 고정 거래처가 있는 만큼 사업 영역을 넓혀 보고 싶었던 셈이다.
나는 지인 소개 대신 공장 관리직 직원으로의 도전을 택했다. 사실 월급은 신문 배달하며 받던 것의 3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도전을 택한 건 당시 제조업 분야였던 박스 제작에 성장 가능성을 봤기 때문이다. 1976년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 곡선은 가파르게 상승 중이었다.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시대적 상황이 제조업 분야에서 놓칠 수 없는 호기라 판단했다.
하지만 아무런 경험 없이 공장을 책임지기에 나는 많이 부족했고 사장님 역시 박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흑자를 내진 못했다. 결국 사장님은 결단을 내렸다. 박스공장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서 예상치 못했던 기회가 찾아왔다. 사장님이 내게 박스공장 인수를 제안한 것이다. 인수 조건은 두 가지였다. 인수 대금으로 박스 제조 기곗값 250만원을 지불하고 나이가 많아 은퇴한 자신의 형님에게 월급을 지급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인수자금 확보가 문제였지만 백방으로 뛰어 자금을 융통했다. 생애 첫 사업의 시작이었다.
공장을 인수하면서 회사 이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주 거래처였던 세광알미늄은 당시 최고 히트 상품 풍년압력솥을 생산하고 있었다. 나 같은 농촌 출신들은 ‘풍년’이란 단어만 떠올려도 기분이 좋아진다. 노랗게 익어 가는 가을 들판의 넉넉함이 배어 있다. 사업을 시작한 78년은 정부에서 쌀 자급 시대의 개막을 공식적으로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나의 삶도, 국민의 삶도 모두 넉넉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회사 이름을 ‘풍년기업사’로 정했다.
그해 3월 15일. 나의 첫 회사이자 풍년그린텍의 모태가 된 풍년기업사의 개업식이 열렸다. 교회에 다니지 않을 때였기에 눌린 돼지머리 고기와 막걸리, 떡을 놓고 손님들을 초대했다. 세광알미늄 회장님이셨던 고 유병헌(도림교회) 장로님도 참석해주셨다. 당시 유 장로님의 형님이 도림교회를 담임하시던 유병관 목사님이었고 장로님의 부인도 권사로 신앙생활하고 있던 터였다. 사업의 시작이 신앙의 시작과 자연스레 맞닿게 된 배경이다.
세광알미늄이라는 안정적인 거래처를 기반으로 출발하긴 했지만, 소규모 제조업체로 사업을 시작한 나로선 물건을 납품하는 입장에서 생각지 못했던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포장 박스 납품이라는 사업의 특성이 결국 사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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